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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사망자 1200명 이름… “이토록 무서운 지면 있었나”

경향신문 1면 통편집 호평… 모바일 시대에 돋보인 ‘지면의 힘’

김달아 기자2019.11.27 17:27:13

경향신문은 지난 21일자 1면을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문구와 함께 뒤집힌 안전모, 사망 원인이 붙은 1200명의 이름으로 채웠다. 지난해 1월1일부터 2019년 9월 말까지 고용노동부에 보고된 중대 재해 중 주요 5대 사고로 숨진 노동자들이다. 틀을 깨는 1면 편집으로 또 다른 ‘김용균’들을 추모하는 동시에, 지면이 지닌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경향신문에 호평이 쏟아졌다.


보도 당일 경향신문의 1면 통편집 지면<사진>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에서 공유 물결을 이루며 퍼져나갔다. 조승원 MBC 기자는 지난 21일 MBC 라디오 <‘이승원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출연해 “개인적으로는 경향신문 구독한 지 10년 넘은 장기구독자인데 지난 10년간 본 기사 중에 가장 돋보이는 기사였다”고 말했다. 김훈 작가는 25일자 경향신문 1면에 실린 특별기고에서 “오랫동안 종이신문 제작에 종사했지만 이처럼 무서운 지면을 본 적이 없다. ‘김○○(53·떨어짐)’처럼 활자 7~8개로 한 인생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1천2백번을 이어나갔다. 이 죽음들은 한 개별적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나락으로 밀려 넣어지는 익명의 흐름처럼 보였다”고 평했다.


지난 21일 경향신문은 2~3면에 걸쳐 산업재해로 사망한 이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구체적으로 되짚었다. 고용노동부에 보고된 2016년~올해 9월 말 중대재해 발생 현황을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하고,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지난해~올해 9월 말 발생한 사고성 사망 재해에 대해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한 조사 의견서 전량(총 1305건에 1355명)을 확보해 전수 분석한 결과다.


경향신문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러나 통계는 추상적이다. 왜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었는지 잘 알려지지도 않을뿐더러, 보도되더라도 금세 잊혀진다”며 “매일 ‘김용균’이 있었고, 내일도 ‘김용균’이 있을 것이지만 한국 사회는 노동자의 죽음에 무감각해졌다”고 진단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하루 평균 2.47명의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경향신문은 1면 통편집과 함께 이들의 죽음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중대 재해 보고를 ‘산업재해 아카이브’로 재구성해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구현했다. 사고 유형, 연령대, 사고형태별로 분류해서 볼 수 있고 각 재해자의 상세 재해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다.


기획·취재를 전담한 황경상 경향신문 기자는 “지면 기사를 디지털로 확장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인터랙티브를 활용한 산업재해 아카이브 구축이 목적이었다”며 “결과적으로 지면에도 기사를 싣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황 기자를 비롯해 기획에 참여한 기자들은 모두 디지털부서인 뉴콘텐츠팀, 모바일팀 소속이다. 황 기자는 “현재 모바일팀인 김지환 기자가 노동부, 청와대 등을 출입한 경험을 살려 관련 자료를 확보했고 함께 현장취재도 하며 콘텐츠를 만들었다”면서 “1면 편집 아이디어는 편집국 차원의 논의 과정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지면 편집에 관여한 오창민 경향신문 디지털뉴스편집장은 “기자들이 자료 입수부터 취재, 데이터 정리와 입력, 인터랙티브 구현까지 고생해서 만든 작품을 지면에는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있었다”며 “안타까운 죽음들, 노동자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기업문화, 비정한 자본주의를 다룬 기사이기 때문에 장식은 최대한 빼고 드라이하게 가자는 데 의견이 모여 1면을 산재 사망자들의 이름으로 채웠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이 선보인 1면 편집과 기획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접한 김훈 작가는 경향신문의 요청에 흔쾌히 특별기고문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 간다>를 보내왔다고 한다. 김지환 경향신문 기자는 “보도 이후, 다음달 김용균씨 사망 1주기 행사를 준비하는 김혜진 활동가를 통해 김훈 선생과 연락이 닿아 글까지 받게 됐다”면서 “반향이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을 보여주고 들려줌으로써 독자들이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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