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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매체 부진 속에서 돋보인 ‘펭수’의 가능성

[EBS 캐릭터 ‘펭수’ 인기비결]
‘유아·성인’ 시청자 이분법 탈피
EBS ‘보니하니’ 코너 출연하다
독립 편성 후 SNS서 스타덤에
독특한 문법 구사하는 캐릭터

기성매체의 유·무형 자산 활용
2030세대에 EBS 영향력 전파
타사와 ‘콜라보’하며 영토 확장

최승영 기자2019.11.06 17:55:26

기성매체가 유튜브와 OTT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흐름 속에서 EBS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의 성과가 주목받고 있다. ‘펭수’라는 캐릭터의 선전을 넘어 레거시미디어가 자신의 한계이자 가능성인 브랜드 등 유·무형 자산을 영리하게 활용한 사례로서다. 특히 ‘지상파 콘텐츠’에 뉴미디어 문법을 적극 수용하고, 타 부서·회사와 각종 ‘콜라보’ 진행을 할 수 있었던 ‘제작 자율성’에 이목이 쏠린다.


EBS 어린이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이하 펭TV)는 요즘 대세다. ‘생방송 톡!톡!보니하니’의 한 코너였다가 독립 편성된 프로그램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인기를 얻고 있다. 5일 현재 유튜브 채널 펭TV의 구독자수는 약 41만2000명이며, 프로그램 캐릭터 ‘펭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수는 10만1000여명에 달한다. 타 방송사 TV·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펭수’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가 되는 상황이다. 앞서 ‘뽀로로’의 성과가 있었지만 ‘교육방송’ EBS의 캐릭터나 콘텐츠에 2030세대까지 열광한 적은 드물었다. 최근 지상파 등 기성매체의 성과에 이 정도 반응이 나온 경우 자체가 없었다.


펭TV의 인기 중심에는 ‘펭수’란 독보적인 캐릭터가 있지만 특히 레거시 미디어가 자신의 유·무형 자산을 활용한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김태현 일요신문 기자는 “유튜브에선 BJ 등의 캐릭터 중요도가 9할은 된다”면서도 “펭수 하나만으로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 기대하지 않았던 EBS에서 ‘B급 정서’ 캐릭터를 만났고, 다른 EBS 캐릭터와 콜라보를 통해 마치 마블 ‘어벤져스’에 등장한 스파이더맨의 별도 영화처럼, 세계관에 자연스레 녹아든 캐릭터로서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했다.


EBS ‘자이언트 펭TV’ ‘펭수’ 사인회가 지난달 26일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점에서 열렸다. 서울에 이은 두번째 사인회에는 유아와 초등학생은 물론 2040직장인까지, 사전 온라인 추첨을 거친 250명이 참여했다. /EBS제공

▲EBS ‘자이언트 펭TV’ ‘펭수’ 사인회가 지난달 26일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점에서 열렸다. 서울에 이은 두번째 사인회에는 유아와 초등학생은 물론 2040직장인까지, 사전 온라인 추첨을 거친 250명이 참여했다. /EBS제공


실제 펭TV 제작진은 “키: 210cm, 성별: 없음, 나이:10살, 거주지: EBS소품실, 직업: 최고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EBS 연습생”처럼 매우 공을 들여 자이언트펭귄 캐릭터를 설정했다. 하지만 EBS 김명중 사장의 이름을 막 부르는 펭수 캐릭터는 현 인기의 시발점인 ‘EBS 아이돌 육상대회’ 이후 대중에 인식됐다고 보는 것이 맞다. ‘뚝딱이’, ‘뿡뿡이’, ‘짜잔형’, ‘뽀로로’ 등 현 2030세대가 경험을 공유한 ‘EBS 자산’들을 동원, 상호 간 입사년도에 민감해하거나 계주대회에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며 ‘펭수’ 캐릭터를 완성시킨 것이다. 미디어기업인 EBS의 가능성이자 한계인 어린이 프로그램 캐릭터들은 전형적인 ‘교육방송’ 브랜드를 기분 좋게 배반하는 방식으로 이용됐고, 일종의 ‘EBS 유니버스(Universe)’를 구축하는 바탕이 됐다. 이는 현재 모두가 “펭수는 정말 펭귄”으로 반응하는 형태로 공감되고 있다.


그간 배제됐던 시장을 발굴해 타깃으로 삼고 콘텐츠에 유튜브 문법을 적극 수용하는 등 유연한 행보 역시 유념할 지점으로 꼽힌다. 이승한 TV평론가는 “지상파 채널은 감스트나 도티처럼 거물이 된 사람을 출연시켜왔는데 이는 통합 플랫폼으로서 위상을 강조하고 유튜브 방송인 몸값을 높이는 데 불과했지 유튜브 생태계 대응 능력은 아니었다”면서 “방송사가 유튜브 공간에 인상을 남기고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할 누군가를 직접 키워 유튜브 문법으로 새롭게 구축한 사례로서 펭수는 달리 보인다”고 했다.


펭TV는 ‘유아’ 또는 ‘성인’으로 극명히 구분된 현 EBS 시청층에 대한 고민에서 탄생됐다. 제작진인 이슬예나 EBS PD는 “초등학교 고학년들도 EBS는 ‘아기 때나 보는 거’고, ‘유튜브나 성인 예능프로그램을 본다’고 하더라”며 “처음부터 TV뿐 아니라 아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유튜브까지 넘나드는 포맷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설명한다. “부모가 같이 보자고 하는 어린이 프로”를 지향하며 방송 편성 역시 저녁 시간대 배치됐다. 당초 ‘유아’와 ‘로우틴’ 사이 시장을 개척하려는 시도는 2030세대 시청층까지 끌어들이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상황이다.


여기엔 ‘1인 BJ 방송’에 기반한 포맷, ‘교육방송’에선 시도할 수 없는 내용·자막 등 유튜브 문법 도입도 한몫했다. 펭TV는 EBS 어린이 프로그램 중 처음으로 더빙이 아닌 실시간 연기를 하는 캐릭터를 썼고, 최초로 ‘EBS 키즈’와 별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종합일간지 디지털 부문 한 관계자는 “펭수를 보며 ‘영상은 내가 제일 잘 알아’라는 전문가로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방송사가 크리에이터 중심 유튜브 문법에 맞췄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신문사는 특히 뉴스만 다루다보니 특정 인물의 발언이 회사 논조나 입장을 대표한다 여겨질까 인물을 내세우기 부담스러워한다. 팬덤 형성에 중요한 부분인데 차포 떼고 일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타 방송사 온·오프라인 콘텐츠에 출연해 자유롭게 ‘콜라보’를 진행하는 등 ‘젊은 구성원’의 제작 자율성이 보장되는 분위기는 펭TV 근간에 자리한 성과 요인이다. 팀 전원이 35세 이하인 제작진은 사내에선 교육뉴스부 기자, 사외에선 MBC, SBS와 협업을 진행한 바 있다. 팀 단위 자율성이 큰 장벽 없이 회사 간 콘텐츠 교류로 곧장 이어지는 구조다. 펭TV와 콜라보를 진행한 스브스뉴스 ‘문명특급’ 홍민지 PD는 “펭TV PD에게 ‘우리 안방 내주는 대신 우리도 가게 해달라’고 트레이드를 했고 큰 지체 없이 결정돼 EBS 탐방을 하고 왔다. 한 간부분이 저희 채널에 나온 펭수 잘 봤다고 하시는데 그게 참 신선했다”며 “친구처럼 1인칭화가 되는 유튜브에선 어느 정도 캐릭터가 잡힌 둘이 만나면 시너지가 가능하다. 실제 EBS ‘펭수’와 스브스뉴스 ‘재재’가 만난 댓글에선 구독자들끼리 만나 즐거워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타 매체와 콜라보를 새 창작물 유형으로 보고 있다. 단일 방송사가 만들 수 있는 소스는 줄고 폐지 못할 프로그램도 많은데 마블처럼 모이면 그 자체가 확장성을 갖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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