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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별 52시간제 합의안 보니… 대부분 월단위 정산 ‘선택근로제’

근로시간 단축 시행은 했지만
기자들, 현실서 숱한 난관 맞닥뜨려

김달아 기자2019.11.06 16:26:03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해 2월 국회를 통과한 이후 언론계는 분주하게 움직여왔다.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해온 언론 현장에서 개정된 법 취지에 따라 근로시간 단축을 논의하고 관련 제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해 7월 가장 먼저 300인 이상 신문·통신사에 ‘주 52시간 상한 근로제’(52시간제)가 도입될 당시 토요일자를 전격 폐지한 서울신문을 비롯해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은 일찌감치 노사 합의를 이뤘다. 지난달 방송사가 52시간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내년부터 50~299인 언론사도 시행을 앞두면서 노사 합의안을 마련해 실제 적용하거나 시범 운영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나온 언론사별 52시간제 합의안을 들여다보면 각각 세부 내용엔 차이가 있지만 대다수가 유연근로시간제 중 ‘선택적 근로시간제’(선택근로제)를 적용했다. 이는 근로시간을 1주일이 아니라 한 달 단위로 정산하고, 이 기간 주당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제도다.


KBS는 보도국 정치부, 사회부 등 일부 부서에서만 선택근로제를 적용하고 CBS와 YTN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시행 중이다. YTN의 경우 시간외근무수당을 월 단위가 아닌 1일(8시간) 단위로 정산하는 데 합의해 선택근로제 도입시 발생하는 부작용을 방지했다. 선택근로제 하에선 근무시간처럼 수당도 월 단위로 계산돼 사후 지급되기 때문에, 며칠 연속 연장근로를 했더라도 정산기준 기간인 1달 동안 의무근로시간을 채우지 않았다면 수당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맹점을 짚은 것이다.


권민석 전국언론노조 YTN지부 사무국장은 “전 부서에 선택근로제를 도입하는 대신 월 단위 수당 정산 등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그동안 용인해왔던 오전 8~9시, 오후 6~7시 무료 노동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고 각종 수당도 소폭 인상했다”고 말했다.


노사 협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한겨레도 선택근로제를 기본 방향으로 잡았다. 이와 함께 각 단위의 특성과 구성원 희망에 따라 유연근로제를 도입할 수 있게 했다. 길윤형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지부장은 협의 과정에서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공짜 노동이 발생하고 노노 갈등이 있을 수 있는 재량근로제 최소화, 실제 근로시간 감소, 회사의 지급 능력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1월 적용을 앞둔 언론사 가운데 세계일보는 모든 기자 전원을 대상으로 출퇴근 시간을 조사해 52시간 초과 근무 여부를 분석하는 단계다. 세부 조항을 만들고 이를 확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뉴스1은 올해부터 미리 재량근로제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뉴시스는 주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유연근로제 내 여러 제도를 혼합한 자체 규정을 마련, 4일부터 한 달간 시범 운영한 뒤 구성원 표결에 붙일 예정이다.


조성봉 전국언론노조 뉴시스지부장은 “다양한 제도를 섞어 뉴시스형 근무체계를 만들어가는 상황”이라며 “‘기자에게 출근은 있어도 퇴근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노동이 만연하다. 근무시간을 줄이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방향이 목표”라고 밝혔다.


여러 언론사가 제도를 마련하고, 언론계 전반에 일과 삶의 균형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은 듯 보이지만 여전히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근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더라도 그 이상 입력할 수 없도록 한 출퇴근 기록 프로그램부터 직간접적으로 ‘공짜 노동’을 강요하는 상사나 사내 분위기, 대체휴가 사용의 현실적인 어려움 등이 법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 언론사 A 기자는 “회사에선 초과근로하면 수당 신청 대신 대체휴가를 사용하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매번 휴가를 쓰지 못할 때가 많다”며 “업무 시스템에는 휴가라고 올렸지만 실제로는 일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매체의 B 기자 역시 “물론 일한 만큼 쉬면 좋겠지만 부서 인원이 한정돼 있으니 누구 한 명 빠지면 다른 사람이 메워야하는 구조”라며 “최대한 맞춰보려고 하는데도 업무 특성상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언론사의 C 기자도 “52시간제 합의안을 만든 노조나 회사는 명확하게 하자는 건데 정작 얼굴 보며 일하는 데스크가 윗선의 눈치를 보느라 퇴근 이후, 주말에 한두 시간 일한 건 수당 신청하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며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런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현장에선 여전히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와 반대로 종합일간지 주요 부서의 D 부장은 “후배들은 대체로 52시간을 지키는데 데스크들은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편법으로 52시간 일한 것처럼 올린다”며 “편집국 간부는 오래 일하는 게 당연한 문화라서 나도 52시간 하고 싶다는 이야기조차 꺼내지도 못 한다”고 말했다.


앞서 52시간제를 도입한 언론사들은 이 같은 문제를 파악·보완하기 위해 상시 모니터링을 진행하거나 재협상도 고려하고 있다. 한대광 전국언론노조 전국신문노조협의회 의장(경향신문 노조위원장)은 “언론노조 지부들 차원에서 언론사별 52시간 합의안을 분석해 하나의 자료로 만들고,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면 간담회 등도 개최해보려고 한다”며 “경향신문 노조의 경우 52시간제 도입 이후 불편한 것들을 파악해 재협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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