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기자들이 추천하는 '여름 휴가때 볼만한 책·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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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와 기사 작성에 머리가 지끈지끈한 기자들에게도 여름휴가는 온다. 여름휴가는 과중한 업무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일 때문에 평소 즐기지 못했던 책과 영화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서점이나 영화관을 가면 마땅히 읽을 책, 볼 영화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당신에게 항상 책과 영화에 둘러싸여 있는 문화부 기자들이 ‘여름휴가 때 읽을 만한 책·영화’를 추천했다. 숨을 고를 수 있는 영화, 지금 아니면 읽지 못할 책들 중 몇 개만 골라 읽고 봐도 당신의 휴가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김기중 서울신문 기자의 초이스

‘나는 미니멀리스트, 이기주의자입니다’(미니멀리스트 시부/고향옥 옮김/홍시커뮤니케이션/256쪽/1만3000원)


저자는 2평짜리 집에서 지갑도, 냉장고도 없이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바닥에서 잔다. 1일 1식을 하고 중독성 있는 음식을 피하는 그의 생활비는 월 7만엔. 부유하게 살다가 부모가 이혼한 뒤 집안 형편이 나빠진 저자는 그렇게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책에는 노력하지 않기 위한 노력만 한다는 저자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눕기 전까지, 그의 모든 생활 속에 미니멀리즘이 녹아 있다.


이 책을 추천한 김기중 서울신문 기자는 “일상이 채우는 시간이라면, 휴가철은 비우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면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비워야 하는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미니멀리즘 관련 책은 비우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가끔 읽어봄직 하다”고 말했다. 특히 하루 수십 통, 바쁠 땐 백여 통의 이메일을 받으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천 단위를 넘어간 이메일 함을 갖고 있는 기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신준봉 중앙선데이 기자의 초이스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창비/344쪽/1만4000원)


“요즘 대세 소설가라고 할 정도로, 역시 대세 소재라고 할 수 있는 퀴어 서사를 집중적으로 다룬 소설집이다.”


이 책을 추천한 신준봉 중앙선데이 기자는 “요즘 세태에 무관심했던 분들은 충격적일 수 있을 정도로 적나라한 묘사에 무엇보다 요즘 젊은, 특히 여성 독자들이 이 소설에 열광하는 걸로 보이기 때문에 세태 변화를 발 빠르게 따라가야 하는 기자들이 꼭 읽을 만한 책”이라면서 “무척 재미있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이 책은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저자의 연작소설이다. 퀴어 소설이면서 성에 있어 가볍게 보일 수 있는 면모를 오히려 작품의 매력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그 안에 녹록지 않은 사유를 담아냈다. 말기 암 투병 중인 엄마를 간병하면서 지내다가 5년 전 뜨겁게 사랑했던 형의 편지를 받고 다시 마음이 요동치며 과거를 떠올리는 ‘영’의 이야기를 담은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등 4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이한수 조선일보 기자의 초이스

‘한국 사람 만들기’(함재봉/아산서원/450쪽/3만원)


한국 사람은 누구인가? 유태인들은 어디에 살든 유태인이고 중국 바깥에 사는 모든 중국 사람들 또한 화교라고 불리는데,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조선 사람’이라 하지 않고,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재미 교포와 재일 교포, 조선족과 고려인 사이의 공통점도 찾아보기 힘들다. 과연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한수 조선일보 기자는 “이 책은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생성 중이란 사실을 역사적 접근을 통해 치밀하게 서술한다”며 “한국인을 형성한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면서 다섯 가지 정체성을 추출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는 이념과 정서에서 서로를 적대할 정도로 갈라져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화합하여 더 큰 통합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인 통찰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며 “휴가 때 읽기 묵직한 주제일지 모르지만, 휴가 때 아니라면 또 언제 읽을 수 있겠느냐”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정승욱 세계일보 기자의 초이스

‘비운의 역사현장, 아! 경교장’((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멘토프레스/731쪽/3만원)


광복을 맞이하고 3개월 뒤인 1945년 11월23일, 김포비행장에 착륙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처음으로 조국의 밤을 맞이한 곳이 경교장(당시 죽첨장)이었다. 경교장은 그로부터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기까지 3년 7개월, 정확히 1310일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으며 남북통일운동의 본산이었고 백범 암살의 현장이었다.


정승욱 세계일보 기자는 “이 책은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대표인 김인수씨의 각별한 노력 덕분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지난 4월 책으로 엮여져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며 “김 대표는 2001년부터 2년에 걸쳐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해 도처에서 경교장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당시 자료들은 디지털 작업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수작업에 의해 자료를 모아야 했고, 한자 위주로 표기돼 있던 터라 해석 작업에 많은 고충이 따랐다”고 말했다. 정 기자는 “광복절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필독서로 손색없는 책”이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김민 동아일보 기자의 초이스

‘아름다움의 진화’(리처드 프럼/양병찬 옮김/동아시아/572쪽/2만5000원)


이 책은 ‘성선택’이라는 다윈의 잊힌 이론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누구나 <종의 기원>은 알지만 다윈의 후기 저작인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심지어 성선택의 개념조차 낯설다. 그러나 이 책은 자연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개념만 가지고는 결코 오롯이 설명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도저히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아름다움의 방식이 제각기 진화해왔다고 이야기하면서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의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민 동아일보 기자는 “미술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이 책은 아름다움, 미학에 관한 관념적 논의만 많은 가운데 실증적인 팩트로 아름다움과 예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며 “학계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날카로운 사실들로 돌파해가는 서술이 흥미진진하다. 쉬운 말로 된 번역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나윤석 서울경제신문 기자의 초이스

‘서치’(아니쉬 차간티/2018년 개봉/드라마/101분)


목요일 저녁, 딸 마고에게 부재중전화 3통이 걸려온다. 아빠 데이빗은 그 후 연락이 닿지 않는 딸이 실종됐음을 알게 되고, 경찰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단서들은 나오지 않고, 데이빗은 마고의 노트북을 통해 실종된 날 밤 마고가 향하던 곳을 추적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한다.


나윤석 서울경제 기자는 “이 영화는 더운 여름날 맥주 한잔을 벌컥벌컥 마신 것 같은 시원함을 안겨주는 스릴러”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쇼트를 영상통화 화면, CCTV 화면, TV 뉴스 등으로만 구성한 뒤 그 형식적 제약 안에서 자신만만하게 서사를 펼쳐나가는 수작이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들이 허다한 요즘, ‘101분’에 불과한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아쉽게 느껴질 만큼 흥미진진하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김경학 경향신문 기자의 초이스

‘스포트라이트’(토마스 맥카시/2016년 개봉/드라마, 스릴러/129분)


이 영화는 가톨릭교회에서 수십 년 동안 벌어진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해 200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2001년 여름, 신임 편집장으로 임명된 마티 배런은 부임 즉시 ‘스포트라이트’팀에게 30년에 걸쳐 수십 명의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지역교구 신부를 심층 취재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마침내 약 600개의 스캔들 기사를 통해 보스턴 지역에서만 약 90명의 사제들이 아동을 성추행 해왔던 사실을 폭로한다.


김경학 경향신문 기자는 “많은 분들이 스크린이나 VOD를 통해 보셨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주변에 물어보니 의외로 안 본 분들이 꽤 있었다”며 “휴가에서 복귀하기 싫겠지만, 영화 속 파이팅 넘치는 기자들을 보면 조금이라도 일이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어 선정했다. 휴가 끝자락 이 영화로 마무리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최두의 YTN 기자의 초이스

‘주전장’(미키 데자키/2019년 개봉/다큐멘터리/121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주전장>은 미키 데자키 감독의 데뷔작으로, 좀처럼 공개된 적 없었던 아베 정권의 이면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영화다. 일본군 위안부 이슈를 덮기 위해 교과서 검열, 언론 통제, 미국을 향한 선전 활동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아베 정권의 행보를 추적, 그 속에 감춰진 숨은 의도까지 밝혀낸다.


최두희 YTN 기자는 “‘주된 싸움터’를 뜻하는 영화 제목처럼 그야말로 진실 공방이 러닝타임 동안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의 주장은 물론 이 문제를 애써 부정하는 일본 우익 세력의 반박까지 가감 없이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며 “이 작품의 미덕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느 쪽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며 관객에게 주입하려 하지 않고, 온전히 관객이 판단하게끔 유도한다는 점이다.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진지하게 음미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김수정 CBS노컷뉴스 기자의 초이스

‘스탠바이, 웬디’(벤 르윈/2018년 개봉/드라마, 코미디/93분)


주인공 웬디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소녀로,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날 만큼 1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맘 놓고 풀어질 때가 있으니 바로 ‘스타트렉’을 볼 때다. 영화는 스타트렉 팬픽 공모전에 원고를 내기 위해 길을 나서는 웬디의 모습을 담는다. 늘 정해진 대로 움직였던 일상이 아니라 낯선 장소, 낯선 상황, 낯선 사람을 맞닥뜨리며 웬디는 소녀에서 어른으로 서툴지만 천천히 성장한다.


김수정 CBS노컷뉴스 기자는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강력히 들었던 생각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널리 알리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이었다”며 “덕후는 단지 시간 많은 사람이 아니라, 놀라울 만큼 한 대상에 집중하고 사소한 것까지 기억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애정을 글쓰기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더 공감이 갔다”며 “‘뭘 쓰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라는 웬디의 대사에 가장 고개가 끄덕여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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