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부장급 기자가 퇴사하며 남긴 글…

"실적 만능주의 아래 인권과 노동권 침해 사례 발생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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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출판국 한 부장급 기자가 회사를 그만두며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이 동아 내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실적 만능주의 아래 간부들이 직원의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그의 글에 적잖은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있어서다.


A 기자는 지난 5일 사내게시판에 “그저 상식과 합리에 어긋나는 일이 바로잡히고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글을 올렸다. 그는 “강준만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정치권력보다 시장권력이 더 무서운 통제장치로 등장한 이후 한국 언론은 적자생존의 경쟁체제로 접어들었다. 의로움과 이로움의 경계에서 갈등하던 기자들 중 상당수가 후자 쪽으로 넘어갔다”며 “사내 분위기도 투향과 전향을 권장한다. 기자직으로 팀장을 거쳤던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의는 시대를 초월해 인간 본성에 들어맞는 가치라고 믿기 때문”이라며 “옳고 그름에 대한 경계선이 무너지면 조직 윤리가 붕괴하고 나아가 회사의 참된 발전을 가로막는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경영은, 노동에 대한 존중이 모자란 경영은 사원의 행복이나 보람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라고 전했다.


A 기자는 지난해 5월 중징계를 받았던 B 임원이 원직으로 복귀한 것을 한 사례로 들었다. B 임원은 영업실적 압박으로 한 직원이 투신하고 다른 직원들까지 집단 탄원서를 내는 등 고충을 호소하자 지난해 5월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지만 3개월 뒤 원직으로 복귀했다. A 기자는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라는 인사 상식에 어긋난 조치였기 때문에 노조가 경영진에 우려를 전달했지만 그 해 연말 인사에서도 바로잡히지 않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그의 공과 과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세상일에는 정도와 경우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을 쥐어짜는 재주로 실적을 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다”며 ‘아무리 시급하고 중대한 경영논리라도 사람 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당시 직원들의 탄원서 문구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오는 7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다. 이를 계기로 비인간적 경영 리더십에 대한 정밀 진단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숫자경영과 인간경영이 균형을 이루면 좋겠다. 더불어 실적 만능주의를 내세워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더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또 “건강한 조직에서는 상의하달과 하의상달이 조화를 이룬다”며 “공정보도위원회와 편집제작협의회 등 공식기구를 통해 불합리한 제작구조나 콘텐츠의 질적 문제에 대한 자유롭고 건설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언론기업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는 길”이라고 밝혔다.


한편 글을 쓴 A 기자는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회사를 떠난 처지에 글이 외부로 알려져 당혹스럽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남아 있는 동료들이나 회사를 위한 마지막 소임이라는 생각에 제 오래된 생각을 올린 것이다. 제 글이 사내에서 작은 불씨라도 돼 동아일보가 한 차원 더 나은 단계로 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한다. 동아의 경영 문제나 언론사로서의 길을 다 같이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하고, 공론화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표를 낸 배경에 대해선 “기자생활을 충분히 오래 했고, 새로운 삶을 도모하고 싶어 사표를 냈다"며 "글의 내용과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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