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휴직 47% 급증… 아빠 기자에겐 기삿 속 얘기

[13개 신문·통신사 4년 현황 조사]
한겨레·국민·경향 등 많은 편이지만 민간부문 '스탠다드'도 못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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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육아휴직 1년새 47% 급증>, <“이젠 아빠도 육아휴직”…남성 공무원 신청 늘어>, <육군 남성 육아휴직 3년만에 3.5배 늘어> 등등.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 육아휴직자 실태를 조명한 일부 언론보도 제목이다. 직종을 불문하고 아빠 육아휴직이 증가하는 사회 분위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뉴스를 전하는 언론사에선 남성 육아휴직자가 많이 나오고 있을까?


기자협회보가 종합일간지 8개, 통신사 1개, 경제지 4개사 등 총 13개 신문·통신사의 지난 4년간 육아휴직 현황을 파악한 결과 이 기간 조사 매체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15.8%(316명 중 50명)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육아휴직자(9만9199명) 중 남성이 1만7662명(17.8%)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들 매체의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은 16.1%(87명 중 14명)로, 민간부문 ‘스탠다드’에도 못 미쳤다. 주요 매체 대상 조사인 만큼 이하 언론사는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 매체 중 남성 육아휴직자가 없는 곳이 확인됐다. 동아는 2017~2019년 매년 10명 내외 여성 육아휴직자가 나왔지만 남성은 없었다. 2016년 이전까진 총 3명이 있었지만 육아휴직 후 2명이 개인사정을 들어 퇴사했다. 아직까지 남성 육아휴직자가 나오지 않은 매체도 있다. 매일경제, 서울경제, 한국경제는 조사기간은 물론 회사 역사상 ‘아빠 육아휴직자’가 없었다.


김정숙 여사가 지난 3일 오후 경기 용인시 종합가족센터에서 ‘몸으로 소통하는 부자’ 프로그램에 참가한 육아 아빠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김정숙 여사가 지난 3일 오후 경기 용인시 종합가족센터에서 ‘몸으로 소통하는 부자’ 프로그램에 참가한 육아 아빠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매체에 따라 남성 육아휴직자 편차는 컸다. 지난 4년 간 매체별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0%~40% 범위였다. 한겨레가 40%(35명 중 14명)로 가장 많았고, 국민(28.6%)·경향(26.9%)·서울(26.1%)이 뒤를 이었다. 이들 매체는 올해 4~5월까지 1명 이상의 남성 육아휴직자를 냈다. 특히 한겨레 4명, 경향 3명, 국민·한국 각 2명씩 나온 수치가 눈에 띈다.


남성 육아휴직이 저조한 언론사에선 여성 직원과 동등하지 못한 제도 등을 이유로 꼽는다. 예컨대 동아에선 남성이 육아휴직을 신청할 경우 ‘배우자의 질병, 맞벌이 등 구체적인 증빙서류를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을 따라야 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육아휴직을 두고 남녀구분을 하지 않는 것과 달리 신청요건에 차등이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 노조 관계자는 “육아휴직 후 바로 퇴직한 선배들이 있어 사내 시선이 곱지 않다. 선례가 좋지 않아 부담감 때문에 신청자 자체가 없다”면서 “추가로 제출해야 하는 자료까지 있으니 더욱 위축된다는 목소리가 많아 바꿔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동아 노사는 최근 2019년 단체협약 협상에서 이를 개선코자 했지만 임·단협과 유연근로제 시행안이 연계된 회사안이 노조 대의원총회에서 부결돼 처리하지 못했다.


전례가 없는 언론사에선 ‘남성 1호 육아휴직자’란 시선에 느끼는 부담이 높은 장벽이 되고 있다. 경제지 한 노조위원장은 “제도도 있고 회사에서 막진 않는다. 노조에서도 적극 쓰라고 하지만 쓰는 이가 없다. 1번이 된다는 부담이 큰 것”이라며 “여직원이 육아휴직 쓰기도 쉽지 않았는데 몇 년이 지나며 이젠 다 채워 쓰는 분위기다. 남직원도 선례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남성 육아휴직 저조는 비단 언론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통상 부부 중 남편 봉급이 더 높은 영향도 있겠지만 사회 분위기가 기존 고정된 성역할에 더 우호적이란 점이 이유일 것이다. 회사별 차이는 있지만 남녀 모두 조직에서 일정 불이익은 감수하고 육아휴직을 쓰는 게 현재라 해도 남성에겐 ‘부양자’로서 사회적 편견이 좀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사 육아휴직 현실 역시 이런 자장 밖에 있지 않다.


육아휴직 중인 종합일간지 한 남성 기자는 “스스로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1년 쉬면 감 떨어진다’, ‘취재원이 사라진다’는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복귀하면 좋아하는 부서가 아니라 빈자리에 들어간다. 인사상 불이익은 아니어도 원하지 않는 곳에 가면 화가 나지 않겠나. 저야 승진 욕심이 없어 (휴직을) 썼지만 다 그러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구성원 의지 차원을 넘어 언론사가 회사를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조직으로 적극 바꿔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근원은 직원 충원 등 육아휴직 전후를 고려한 인력 운영 개선이다. 이번 조사에서 온전한 연간 데이터가 모인 2016~2018년 기간 회사별 전체 임직원(2019년 기준) 중 육아휴직자 비율은 연평균 불과 1%대였다.


언론사 중견차 한 기자는 “현재 제도는 마련됐고 사람들이 문화에 적응이 덜 된 상황이라 본다. 활성화 후엔 또 다른 제도 요구가 나와 한걸음 나아가는 반복이 되지 않겠나”라며 “지금 보면 아이들 어린 시절은 참 짧구나 싶다. 쓸 생각도 못하고 기자 생활을 했는데 그걸 놓친 게 아쉽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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