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선 기자, '브런치'선 익명 작가… 그들의 슬기로운 취미생활

글쓰기 플랫폼서 작가 등단… 익명·실명으로 '나만의 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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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보다 재밌는 글을 쓰고 싶었던 A 기자는 지난해 ‘브런치’를 시작했다. 카카오가 지난 2015년 서비스를 시작한 브런치는 글 좀 쓴다는 이들이 모이는 글쓰기 플랫폼이다. 활동 계획과 몇 편의 글을 심사받아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그는 운동하는 이야기, 일상의 생각들을 이 공간에 남기고 있다.


“웃긴 글, 편하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를 브런치에서 푼달까요. 회사명이나 실명을 밝혀야 한다면 이렇게는 못 쓸 것 같아요. 기사에 담기 어려운 신변잡기식 글이라서요. 최근엔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아 에세이집 출간도 하게 됐어요.”


A 기자처럼 브런치에서 나만의 글을 쓰는 기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픈 초기와 같은 열풍은 사그라졌지만 브런치는 여전히 매력적인 플랫폼이다. 깔끔하고 간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책 출간을 지원하는 공모전 등으로 어필하고 있다.   


여기서 신분을 밝힌 기자들은 기사에 싣지 못한 내용이나 취재 뒷이야기를 다루고, 업무 전문성을 쌓기 위해 브런치를 활용하곤 한다. 초기부터 참여한 고승혁 JTBC 기자는 “당시 정치부에서 스트레이트 위주로 기사를 쓰면서 미처 담지 못한 얘기들을 브런치로 풀어냈다”며 “글 하나의 조회수가 수십만인 것도 있을 만큼 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브런치에서 일상과 언론에 대한 글을 쓰는 종합일간지 B 기자는 기자들이 개인 플랫폼을 늘리는 추세에서 유튜브와 함께 브런치가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브런치에선 데스크를 설득하는 과정 없이 기자가 능동적으로 글감을 선정하거나 다양한 실험도 할 수 있다”며 “조회수와 유입경로가 한눈에 보이니까 수용자 중심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지난 몇 년간 언론사들은 브런치와 비슷한 개인 블로그를 기자들에게 제공하면서 기사 형식을 벗어난 글쓰기를 장려해왔다. 이런 류의 글이 디지털에서 먹힌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부담을 느끼거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바이라인이 그대로 노출되는 블로그 글은 기사와 다름없었다. 개인 페이스북도 사실상 업무 영역으로 변한 지 오래다.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은 기자들은 브런치에서만큼은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행이나 뉴미디어를 다루는 이성주 MBC 기자가 그런 경우다. 이 기자는 “바이라인을 달고 쓰는 글에는 언론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가 들어있다. 기자라는 이름값은 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와 회사가 준 것”이라며 “개인적인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과 이 글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브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용운 이데일리 기자도 브런치에서 익명으로 활동하며 글 쓰는 재미를 느낀다. 김 기자는 “매일 글을 쓰는 직업이지만 내 글을 쓰면서 자아를 실현하고 있다”면서 “글 쓰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기자라는 계급장 떼고 평가받다 보면 긴장감이 생기고 자극도 받는다”고 말했다. 독신으로 사는 이야기를 연재 중인 그는 에세이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브런치 출판 공모전(브런치북 프로젝트)으로 지난해 책을 펴낸 박윤선 서울경제신문 기자는 “디지털 플랫폼에 개인적인 글을 쓰려니 처음엔 어색하고 겁이 나기도 했다”며 “막상 브런치를 해보니 많은 독자가 제 생각에 공감을 해준다는 것 자체가 힐링이다. 저 스스로 글쓰기를 즐길 수 있도록 평범한 일상 이야기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구독자가 1만4000여명에 달하는 인기 작가, 손화신 오마이뉴스 기자는 “글 쓰는 게 좋아 기자가 됐고 내 글을 쓰고 싶어 브런치를 하고 있다”면서 “기사와 브런치 글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브런치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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