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처럼 쓴 '묻지마' 수식어, 뜻은 제대로 알고 쓰나요

불특정 사건 기사때 흔히 쓰지만
독자는 범행 대상의 문제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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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을 통해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언론 보도가 다시금 도마에 오르고 있다. ‘묻지마 범죄’란 관행적인 용어로 사건성격을 규정하는 상당수 보도에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달라진 시대와 독자 요구사항에 발맞춘 언론들의 보도관행 개선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내 최대 뉴스 플랫폼인 네이버에서 ‘진주 아파트 살인’으로 검색 시 지난 17일부터 22일까지 관련 뉴스 수는 총 2379건이었다. 하루 평균 400여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상당수 뉴스엔 ‘묻지마’란 단어가 포함된 채였다. 사건발생일인 17일 218개, 18일 156개, 19일 98개, 20일 11개, 21일 24개, 22일 20개 기사에 포함, 조사기간 총 527개 뉴스에서 ‘묻지마’란 단어가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진주서 ‘묻지마 살인사건’ 발생해 5명 사망, 4명 중상, 2명 부상(1보)>처럼 기사 제목 혹은 본문에서 사건의 동기나 성격을 규정하는 방식이 다수였다.


언론의 ‘묻지마’ 네이밍은 최근 유사 성격의 사건 발발 때마다 독자들로부터 비판받아왔다. 여성, 노인 등 명백히 약자를 대상으로 삼아 이뤄졌는데 어떻게 묻지마 범죄냐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이번 ‘진주 사건’에서도 피의자가 ‘덩치 큰 남자는 외면했다’는 보도를 근거로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매체비평지 편집장을 역임한 김민하 저술가는 “‘묻지마’는 동기를 특정할 수 없는 사건을 표현하려고 만든 말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묻지마’를 범행대상의 문제로 해석한다. 기성언론 불신 연장선에서 수용자가 단어 뜻을 임의로 구성해 이처럼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다. 애초 언론도 관용어를 마음대로 써온 만큼 독자와 시대변화를 반영한 분명한 의미의 단어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 2013년 대검찰청이 발행한 ‘묻지마 범죄에 대한 외국사례 및 대처방안 연구(2013년)’ 등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용어는 범행동기가 명확지 않거나 범행 대상에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 등 불특정성이 두드러진 사건을 통용하던 것이 상용화된 것이다. 학술적으로 합의된 개념이 아니다. 포털 네이버 검색과 앞선 보고서를 종합하면 1990년~2000년대에도 ‘묻지마 투자’, ‘묻지마 관광’ 등 표현이 국내 언론보도에 사용됐다. 특히 이상동기 범죄를 지칭하는 맥락으론 2002년 10월9일 동아일보의 국제 기사 <‘묻지마 저격’…美 스나이퍼 연쇄살인 공포 확산> 보도가 1호다. 국내 사건 기사로는 2003년 2월12일 한겨레신문 <달리는 차량에 ‘묻지마 총격’>이 처음이다.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던 해당 용어는 지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기점을 맞는다. ‘묻지마 살인’이라는 언론과 경찰당국에 비판이 잇따랐다. 그동안 문제되지 않았던 관행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됐다. 이재훈 한겨레신문 24시팀장은 “범행동기가 없는 범죄는 없다. 전형적인 동기가 잘 드러나지 않아 사회 구조문제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를 파악하기 난망할 때 동기를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게 아닐까. 해당용어가 오히려 구조 문제를 가릴 수 있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증대된 수용자들이 언론을 외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당장 이슈가 됐을 땐 경찰발표를 따르는 게 불가피하지만 지속 관심을 갖고 구조 문제로 옮겨가도록 길게 준비해 기사를 써야하는 시대가 됐다”고 덧붙였다.


인터넷매체 한 기자는 “모든 언론사에서 속보가 중요해졌다지만 여전히 통신사 보도를 그대로 참고하는 곳이 많다. 연합뉴스 등 통신사에서 쓰는 1보가 좀 더 신중히 사건 명명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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