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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 3색, 미디어 스타트업 창업한 기자들

강아영 기자2019.01.09 15:46:49


“딱 봐도 비즈업 영상 알 수 있게 만들고 싶어”
- 창업 전문 미디어 ‘비즈업’ 유병온 대표 /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유병온 비즈업 대표가 잘 다니던 서울경제를 그만둔 건 2016년 2월이었다. 2008년 입사했으니 9년 만이었다. 퇴사 이유는 창업. 퇴사 2개월 만인 4월에 그는 ‘비즈업’을 설립했다.


애초 그가 창업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계기는 국제부 근무할 때 일어난 세월호 참사였다. 세월호 이후 한국 언론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는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막연한 문제의식을 품었고, 그러다 2주간의 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 기간 중 미국 시장의 뉴미디어 바람을 취재하며 미디어의 새로운 생존방식을 깨우치게 됐다. 이후 디지털미디어부에서 일하며 ‘썸’을 선보였지만 그는 어느 순간 결론 내렸다. 전통 미디어에서 디지털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유병온 대표는 “레거시 미디어가 지금까지 닦아놓은 토대와 뉴미디어의 토대가 너무 다른데, 레거시 미디어는 기존의 토대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아예 디지털 시대에 맞는 조직을 새롭게 꾸려 가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반은 충동적으로 사표를 썼다”고 말했다.


유 대표가 얼마나 충동적이었는지는 사표를 쓴 후에야 창업 관련 정책을 알아봤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디지털 콘텐츠 제작 방식만 알았지 사업 운영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부랴부랴 사무실 임대 등을 알아봤고, 투자받은 것도 없어 저축과 퇴직금을 합쳐 2000만원의 자본금으로 기반을 다졌다. 그렇게 4월16일 비즈업이 설립됐다. 세월호 참사 날짜와 겹친 건 우연은 아니었다. “당시 언론이 했던 실책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유 대표의 마음이 담겨 창업일이 정해졌다.


비즈업은 썸에서 데리고 있던 인턴기자 3명을 불러들여 유 대표까지 4명으로 시작됐다. 전통 미디어가 상대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분야가 창업이라 생각해, 창업을 전문적으로 다루기로 했고 비즈니스 모델은 광고, 그 중에서도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으로 맞췄다. 그러나 남의 지갑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 돈을 벌었던 건 그 해 9월. 당시 납품 단가는 영상 하나에 50만원이었다. 유 대표는 “창업할 때만 해도 직원 모두 영상 전문가가 아니라 영상 품질이 낮기 이를 데 없었다”며 “브랜디드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잘 만들어야 광고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제작 기업으로서의 역량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 실력이 50점이면 60~70점짜리 과제를 가져와 80~90점, 100점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지금은 초기에 비해 영상 단가가 20~30배 뛰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포장을 잘 해도 그 내용이 광고라 독자와의 접점을 만들기 어려웠고, 또 인풋 대비 아웃풋을 높이려면 브랜드 파워가 커져야 하는데 브랜드가 안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존을 위해 맡았던 영상 외주제작 비중이 브랜디드 콘텐츠보다 더 커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유 대표는 “2017년 매출 기준으로만 보면 영상 외주제작 대 브랜디드 콘텐츠 비중이 9대 1이었다”며 “덕분에 흑자도 났지만 그 이상의 도약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자명했다. 때문에 지난해 그 방식을 모두 버리고 0에서부터 새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브랜드 ‘아홉시’를 런칭했다”고 말했다.


유 대표가 아홉시를 통해 얻고자 한 건 비즈업만의 뚜렷한 정체성이다. 소비자들이 한 번만 봐도 어디서 만들었는지 알아챌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게 앞으로 그의 과제다. 올해 사훈도 그에 맞는 ‘Get Fame Finally’로 정했다. 지난해 ‘Get Fame’의 연장선이다. 유 대표는 “백낙청 교수님이 ‘사농공상’에서 사와 상을 동시에 해내는 게 참 어렵다고 하신 적이 있다”며 “이 일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공공성과 사기업으로서의 존재성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건 어렵지만 그것을 동시에 이뤄가는 것이 올해 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당신을 위한 넷플릭스·고전문학 길잡이”
- 리뷰 전문 미디어 ‘더 파크’ 정우성 대표 / 전 경향신문 기자


시간이 소중한 우리를 위한 취향 공동체. ‘더 파크’는 이를 표방하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추천하고 고전문학 등을 평론하는 리뷰 전문 미디어다. ‘이크종’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임익종씨와 GQ, 에스콰이어 등에서 일했던 정우성 기자가 지난해 힘을 합쳐 만든 뉴미디어 스타트업이다.


정우성 대표는 본래 경향신문 기자였다. 2006년 공채 45기로 입사한 그는 레이디경향에서 1년 반 만에 GQ로 이직했다. 정우성 대표는 “GQ에서 8년 정도 일하며 96권을 만들었고 에스콰이어로 이직한 후에도 1년 반을 일하며 19권을 만들었다”며 “그런데 어느 순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판이 변하는데 기성 언론은 도구만 바뀔 뿐 하는 일이 똑같다는 생각,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은데 그걸 할 수 없고 나와서 더 많은 걸 하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와 더 파크를 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메디아티가 투자한 4000만원은 더 파크의 초기 자본금이 됐다. 정 대표는 이 돈으로 사무실 보증금을 마련하고 컴퓨터 등 기자재를 샀다. 영상 편집 기술을 배우는 한편 잡지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미디어가 주력할 분야를 리뷰로 잡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리뷰 분야는 크게 넷플릭스, 고전문학, 리뷰 세 가지로 나눠졌다. 정 대표는 “TV를 안 본 지 너무 오래됐다. 안 보려고 안 본 게 아니라 볼 시간이 없어 못 보게 돼 버렸다”며 “생활이 불규칙적이니 익종이나 저나 ‘본방이 내가 보는 시간인’ 넷플릭스를 많이 보게 됐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훌륭하다 해도 메인에 뜨는 건 제한적이라는 생각에 좋은 콘텐츠를 추천하는 존재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우리가 하게 됐다”고 했다.


게다가 넷플릭스 콘텐츠는 극장에서 내려가면 끝인 영화보다 휘발성이 덜 했다. 언제 어느 때고 볼 수 있는 데다 작품성이 높은 점도 정 대표의 마음을 끌었다. 정 대표는 “고전문학도 그런 맥락에서 다루게 됐다”며 “신간도 언젠가는 다루겠지만 우선 고전문학 리뷰를 쌓아가자, 나중에 힘이 생길 것 같다는 게 우리 판단이었다. 대신 세 번째 리뷰 영역에서 자동차, 테크, 술, 음식 등 분야를 다양하게 열어뒀다”고 말했다.


더 파크는 이렇게 만든 콘텐츠를 뉴미디어에서 발행할 수 있는 모든 형식으로 유통하고 있다. 에세이, 만화뿐만 아니라 영상과 오디오로도 콘텐츠를 배포한다. 월요일엔 영상, 수·금엔 오디오, 화엔 만화, 목엔 에세이를 내보내는 식이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정 대표는 “영상은 3분 정도 길이로 만화를 가미해 짧게 내보내는데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을 팟캐스트로 유인하기 위함”이라며 “오디오 역시 준비 시간은 넷플릭스를 보거나 책을 읽는 시간 정도고, 스크립트 없이 녹음에 들어가 45분 정도 얘기해 그걸 30~35분 정도로 편집한다. 그걸 들은 후에도 궁금증이 인다면 에세이를 보도록 한다”고 말했다. 


더 파크에 꾸준한 매니아층이 있는 건 이 지점이다. 한 콘텐츠를 다양한 볼륨으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 함량에 대한 기준과 자부심이 있어서다. 최근 청와대나 SK텔레콤 ‘옥수수’ 등과의 협업도 그렇기에 가능했다. 정 대표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10년 가까이 일러스트레이터와 기자로 살아남으면서 가진 우리만의 앵글을 살려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어느 정도 날을 세워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이는 양날의 칼이다. 우리가 아니면 못 하는 콘텐츠는 다른 면에선 확장가능성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기자나 에디터가 바뀌어도 시스템이 굴러가는 언론사와 달리 더 파크는 구성원의 대체가 불가능하다.


정 대표는 “3월부터는 저 혼자 만드는 콘텐츠를 올릴 계획”이라며 “작화가 최소화된 긴 분량의 동영상을 생각 중이다. 콘텐츠의 확장, 또 커뮤니티 생성이 올해의 목표”라고 말했다. 



“도전은 몸값 제일 높을때 해야하는 것”
- 글로벌 웹툰 제작사 ‘엠젯패밀리’ 안정훈 CFO /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서울 지하철 5호선과 6호선이 다니는 공덕역 2번 출구에서 약 500m를 걸어가면 서울창업허브가 나온다. 이곳은 창업기업, 창업 유관기관들이 모여 소통하고 교류하는 곳으로, ‘엠젯패밀리’는 이 건물 6층 19호실에 자리 잡고 있다.


엠젯패밀리는 안정훈 전 매일경제 기자가 김태원 대표 등과 함께 차린 글로벌 웹툰 제작사다. 공동설립자이자 CFO(최고재무관리자)인 안 전 기자는 매일경제에 다니던 시절 휴직 후 북경대 MBA 과정을 밟으며 창업의 꿈을 꿨다.


안정훈 CFO는 “드넓은 중국 시장을 보며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사내벤처에 도전했는데 내 아이템이 선정되진 않았다”며 “기자 생활도 즐겁고 만족스러웠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2017년 3월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해 엠젯패밀리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그는 60세, 혹은 65세에 찾아올 정년에 미리 대비하고 싶었다. 정년보다는 더 오래 살 것 같은데 그때서야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장 일을 잘 할 수 있고, 몸값이 가장 높을 때 도전하는 것이 맞다고 그는 생각했다. 안 CFO는 “물리적으로 40세라는 나이가 정점이라고 생각했다. 40이 넘어가면 체력도, 가치도 떨어질 것 같았다”며 “그나마 내가 가장 쓸모 있을 때 도전하자는 생각이었다. 매일경제에 있기 전에도 삼성물산에서 무역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엉덩이가 가벼웠던 것도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친 짓”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특히 돈 버는 방법을 찾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겉으로 멋있어 보이지만 내실이 없고, 될 것 같다가도 막상 해보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았다.


안 CFO는 “남들은 매출 10억원을 쉽게 달성하는 것 같은데 현실은 100만원 벌기도 힘들었다”며 “1년 동안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엔 중국 마케팅 사업을 했는데 잘 안 됐고 우리끼리 대화를 나누다 접점이 만화를 좋아하는 거여서 한국에 있는 웹툰을 중국에 수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현재 엠젯패밀리는 콰이칸, 텐센트, 칸만화 등 중국 CP 및 플랫폼과 협력해 한국 웹툰을 수출하고 있다. 또 중국 웹툰을 수입해 한국에 연재하는 데도 중점을 두고 있는데, 현재까지 10곳이 넘는 중국 제작사와 계약을 맺었고 올해 20~30곳까지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엠젯패밀리가 수입한 ‘정령사:나타르 전기’ 등은 카카오페이지에서 소년만화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안 CFO는 “국내 웹툰시장이 커져 유료 결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덕분에 웹툰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며 “중국으로 파는 만화들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출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매출이 7~8억원 정도 될 것 같은데 올해는 20~30억원을 찍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4명의 창업자로만 구성됐던 인력에도 변화가 생겼다. 2명이 새로 들어왔고 조만간 1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그동안 해외영업부터 작품관리, 번역까지 도맡았다면 이제 번역도, 디자인도 전문 인력이 담당할 방침이다.  


올해 엠젯패밀리는 한국의 스토리와 중국의 그림 기술력을 접목해 글로벌 합작 웹툰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은 이야기에 강하고 중국은 풍부한 인력을 기반으로 한 작화가 뛰어난데 그 두 가지를 합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안 CFO는 “작화를 맡길 곳은 이미 찾았고 현재 좋은 스토리를 선별하고 있다”며 “작업 환경이 어렵겠지만 된다면 한중 플랫폼에 동시 연재도 가능할 것이다. 수출·수입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제작한 웹툰이 성공해 중국, 더 나아가 동남아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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