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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보도로 누군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 잊어선 안 된다”

2018 사건기자-인권·생명 존중 세미나

강아영 기자2018.09.14 08:55:57

13일 제주 서귀포 칼호텔에서 한국기자협회, 국가인권위원회, 중앙자살예방센터 주최로 ‘인권·생명 존중 세미나’가 열렸다.

“누가 볼까 겁나고, 낯이 뜨거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한국 저널리즘 역사에 최악의 자살 보도 사례로 두고두고 입길에 오르내리더라도 할 말이 없는 장면이었다.”

 

연합뉴스TV 공채 2기 기자들이 지난 7월24일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사망 소식을 생중계한 자사 보도를 비판하며 낸 성명이다. 자살보도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언론이 자살 예방에 나서야 한다며 ‘자살보도 권고기준’이 제정된 지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잘못된 자살보도는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다.

 

13일 제주 서귀포 칼호텔에서 한국기자협회, 국가인권위원회, 중앙자살예방센터 주최로 열린 ‘2018 사건기자-인권·생명 존중 세미나’에선 이러한 언론의 자살 보도 실태를 반성하는 한편 언론이 자살 보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자살보도의 문제점과 자살보도권고기준 3.0’을 주제로 발표한 권영철 CBS 대기자는 “신문과 방송 등 전통 매체의 자살 관련 보도는 상당히 개선되고 있다. 제목에서 ‘자살’이라고 표현하는 보도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고, 자살의 방법이나 수단을 제목으로 뽑는 보도도 크게 줄었다”며 “그렇지만 아직도 멀었다. 샤이니 종현 사건 보도에서 도구를 언급하지 않은 방송사는 찾기 어려울 정도였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노회찬 의원 사건에서는 TV조선과 연합뉴스TV가 운구차량을 쫓아가면서 생중계를 하고 창문이 열려진 아파트 내부를 찍었다”고 비판했다.

 

권 대기자는 “기존 언론매체에 수많은 인터넷 언론이 생겼고 SNS와 1인 미디어도 확산되면서 이른바 ‘클릭전쟁’ 때문에 포털 사이트에서 주요 검색어가 생성되면 그게 자살이건 스포츠건 관련 기사를 쏟아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자살보도권고기준도 말 그대로 권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실천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쓴 기사로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 누군가가 내 이웃일 수도 있고 나와 가까운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새로 개정한 자살보도권고기준 3.0을 소개했다.

 

전문과 5가지 원칙, 그리고 세부실천내용으로 구성된 자살보도권고기준 3.0은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을 사용하고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으며 △자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은 모방자살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유의해서 사용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권 대기자는 “기존 권고기준의 9가지 원칙이 중복되거나 명료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자살 관련 보도의 유통이 모바일로 점차 옮겨가면서 미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자살보도권고기준을 개정하기로 했다”며 “개정 과정에 처음으로 경찰청 형사과장이 참여했다. 경찰이 자살예방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앞으로는 변사사건이 발생할 시 쉽게 자살로 단정하거나 추정하지 않게 될 것이고 자살원인을 단순화하지 않을 것이며, 자살 방법과 경위, 유서도 쉽게 유출되지 않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13일 제주 서귀포 칼호텔에서 한국기자협회, 국가인권위원회, 중앙자살예방센터 주최로 열린 ‘인권·생명 존중 세미나’에서 권영철 CBS 대기자가 발표를 하고 있다.

세미나에선 지난 7월3~18일 16일간 일반인 602명과 기자 350명을 대상으로 한 자살보도권고기준 인식조사 결과도 소개됐다.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자살보도를 다루는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를 줄이고 실효성 있는 자살보도권고기준 개정을 위해 인식조사를 했다”며 “조사 결과 자살보도권고기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반인, 기자 두 집단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요성에는 동의했다”고 전했다.

 

조사결과에선 일반인의 81%, 기자의 88%가 자살보도권고기준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다만 권고기준에 대한 관심도 측면에선 65%인 기자와 달리 일반인은 25%로 상대적으로 낮은 관심을 나타냈다. 일반인과 기자는 자살률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자살보도 행태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나타냈는데 일반인은 자살도구나 방법이 자살률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 반면 기자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신 부센터장은 “영상기자들의 경우 기사에서 선정적인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사용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응답이 높았다”며 “나이가 있는 국장, 차장급은 자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했지만 권고기준을 지키면서 자살 보도를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고 반면 일선 기자들은 권고기준을 지키면서 쓰는 게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매체별로는 지상파 방송사 기자들이 자살 보도를 심각하게 인식했고 권고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됐던 제주 난민 문제와 난민인권에 대한 발표도 진행됐다. ‘제주 난민사안을 통해 본 난민인권의 이해’를 주제로 발표한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올해 4~5월 제주도에 약 550명이 넘는 예멘 사람들이 입국했다”며 “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옥에 가까운 나라’인 예멘을 탈출해 말레이시아로 급하게 피난했다가 직항이 개설되면서 제주도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갑작스럽게 낯선 이들이 제주에 오자 많은 어려움과 문제점이 발생했다”며 “난민법 시행 5주년이지만 최근 정부의 대응은 한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멘 난민신청자들에 대해선 현재 제주출입국에서 난민 심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난민신청절차에 대한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난민심사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심사의 투명성과 공정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적체되는 긴 심사기간 동안 난민신청자들은 알아서 살아내야 하는 생존의 극한 상황에 놓인다”며 “제주의 예멘 난민신청자들의 경우에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생계비는 일체 지원되지 않았다. 이들이 바늘구멍을 통과해 난민인정을 받아도 사회에 적응하고 정착하기 위한 큰 그림은 설계되지 않고, 사회보장제도로 연계하는 과정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제주 예멘 난민 이슈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시민사회의 반응을 보면 난민정책은 여전히 구멍이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으며 한국 사회는 이제야 준비를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다”며 “누구에게나 당연하고 소중한 ‘인권’이라는 것이 이 사회에서도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 되기를, 가볍게 침해되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13일 제주 서귀포 칼호텔에서 한국기자협회, 국가인권위원회, 중앙자살예방센터 주최로 ‘인권·생명 존중 세미나’가 열렸다.

<예멘인 난민 입국 최초 보도 및 연속보도>로 지난 7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좌동철 제주신보 정치부장도 예멘 난민들이 시아파 무장반군이라거나 성폭력 주범이라는 인식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좌동철 부장은 “예멘 난민들의 SNS에 이슬람 테러단체들과 연관된 게시물이 있었고 법무부가 예멘 난민들의 SNS를 확인하겠다고 밝힌 이후 이 게시물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예멘인들의 SNS 게시물에 총기류 소지와 마약으로 분류되는 ‘카트’를 섭취하는 사진이 있었는데 총기는 내전 때문에 가정마다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카트’의 경우에도 배고픔을 잊게 해주는 성분이 있어 중동 일부 빈국에서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 상당수 국민들이 카트를 섭취한다”고 설명했다.

 

세미나 마지막 세션에선 소병철 법무연수원 석좌교수가 인권감수성에 대한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 소병철 교수는 “최근 트렌드를 보면 우리 사회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약자들의 항변권이 응집해 폭발했고 ‘블라인드’ 앱 등 내부고발 통로가 다양해졌으며 이성적 해법보다 사람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정서적 접근, 즉 위로와 공감이 우선시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은 대중문화를 통해 인권감수성을 고양해야 한다. 또 감성의 스피커로 이성적 설득을 해야 소통과 실행이 신속하게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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