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목록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왜곡·무지 뒤섞이자… 통계가 거짓을 말했다

‘입맛에 맞는 통계’ 자의적으로 골라 오용·왜곡보도하는 언론

강아영 기자2018.09.12 16:05:37

일러스트=송준영 기자

▲일러스트=송준영 기자



숫자는 거짓말을 한다. 최근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를 둘러싼 뜨거운 공방에서, 또 한 차례 도마에 올랐던 자영업자 폐업률 논란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숫자는 순수하고, 그 숫자로 이루어진 통계는 진실하고 객관적이라는 신화가 존재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것이 미신일 뿐이라고 말한다. 통계가 남용되고 오용되는 사례는 ‘최근’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며 그 경향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정밀성 떨어지는 통계 사용
통계를 왜곡하는 주체는 크게 통계의 생산자와 그 결과물의 해석자 두 부류로 나뉜다. 언론은 대개 통계를 해석하는 후자에 해당하는데 △통계를 잘못 이해, 해석해 활용하거나 △통계적 유의미성이 불확실한 가공 통계를 쓰며 △입맛에 맞는 통계만을 자의적으로 골라 인용하는 식으로 통계를 오용·왜곡한다.


통계를 잘못 이해하거나 해석한 채 기사에 활용하는 경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달 22일 문화일보가 1면에 보도했던 <‘고졸이하 근로자 28만명 ↓’…文정부만 줄었다> 기사가 한 예다. 이 기사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추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의도와는 달리 취업취약계층의 고용 참사라는 역설적 현상을 초래했다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통계 지표를 활용한다. 바로 정부 출범 이후 14개월 사이에 진행된 교육 정도 및 종사자별 취업자 수 변화 지표다. 문화일보는 이 중 고졸 이하 취업자의 증감을 분석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모두 고졸 이하 취업자가 증가했지만 오로지 문재인 정부만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여기엔 오류가 있다. 취업자 수의 경우 계절요인에 따라 변동하는 특징이 있어 전년 동월 또는 전년 동기와 비교를 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의 경우 2017년 5월과 2018년 7월을 단순 비교해 증감을 계산한 것이다. 역대 정부의 고졸 이하 취업자 수 증감도 출범 첫해 2월과 그 다음해 4월을 비교한 것으로 문재인 정부와 시기적 기준이 달랐다. 그럼 위의 기준을 2월과 5월로 놓고 계산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대부분의 정부가 출범한 2월을 기준으로 그 다음해 2월까지 고졸 이하 취업자 수를 산출하면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김대중, 이명박 정부도 취업자 수가 감소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5월을 기준으로 봐도 그렇다. 이명박 정부 역시 이 기준에선 2009년 5월 고졸 이하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에 비해 46만2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온다. 문재인 정부보다 더 큰 수치로, 기준을 조금만 달리해도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통계적 유의미성이 불확실한 가공 통계를 쓰는 경우 역시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내내 수많은 언론에서 쓰였던 ‘사실상 백수’ 지표가 한 예다. 연합뉴스가 지난해 1월23일 <‘사실상 백수’ 450만명…자력형 취준생 8년 만에 최대 증가>라는 제목으로 최초 보도한 이 지표는 실업자와 취업자, 비경제활동인구라는 세 가지 분류항목에서 백수로 볼 수 있을만한 지표들을 더해 사실상 백수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다. 즉, 취업자 중에서 18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자를 추출하고 비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취업 학원·기관 통학자, 취업준비생, 쉬었음 인구를 뽑아 이를 실업자와 합산해 만든 지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의적으로 만든 이런 지표가 국제기준에 맞지 않으며 정밀성과 엄밀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빈현준 통계청 사회통계국 고용통계과장은 “사실상 백수라는 건 일을 하고 싶은데 못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노동시장 적 측면에서 노동을 더 공급하고 싶은데 수요 측의 원인에 의해 공급을 못하는 사람들이 해당된다”며 “이 기사에 나온 사실상의 백수는 일견 개연성은 있어 보이지만 그 사람들 모두 노동공급 의욕이 있을 거라고 단정해 적절치 않다. 예를 들어 초단시간 근로자 중에서 주부 등 특정한 사람들은 노동을 더 하고 싶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통계청에선 설문을 하며 더 노동을 공급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고 이를 따로 보조지표로 뽑아 확장실업자를 만든다”고 말했다. 당시 통계청이 추산한 보조지표에 따르면 사실상 백수는 309만5000명이었다.

◇통계 지표도 자의적 해석
입맛에 맞는 통계를 자의적으로 골라 인용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소득주도성장 논란이 심화되며 기사에 자주 인용되고 있는 고용 관련 지표도 그 중 하나다. 지난달 발표된 통계청의 7월 고용동향 중 가장 강조된 건 취업자 증가폭이 5000명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대다수의 기사들은 2010년 1월 이후 8년 6개월 만에 최악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조선일보는 지난달 31일 온라인판에 보도한 <경기하강 ‘굉음’ 한국경제…주요 경제지표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 ‘추락’> 기사에서 박근혜 정부 집권 2년차였던 2014년 1~7월과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인 2018년 1~7월의 취업자 수 증감을 그래프로 보여주며 문재인 정부 때 취업자 수 증가폭이 크게 줄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인구증가 규모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취업자 증가 규모만을 보고 고용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을 내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통계청 역시 지난 6월 고용동향을 발표하며 인구가 급변하는 국면에선 분모의 변화가 함께 반영되는 고용률, 실업률 등의 비율지표를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권고했다.  


종합일간지 경제부장을 지낸 한 기자는 “고용사정을 보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실업률, 둘째는 고용률, 셋째는 취업자 수 증감”이라며 “우리나라는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이고 그 변동을 통해 고용사정을 잘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고용률을 오랫동안 중요한 지표로 봤고, 취업자 수 증감은 인구 동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보조적으로 활용했다. 그런데 최근 취업자 수 증감으로만 눈을 돌리는 경향이 보인다. 고용 사정이 나빠졌다는 걸 쉽게 보여줄 수 있어 그런 것 같은데 인구 변동 같은 배경은 지운 채 고용 사정이 열악하다는 지표로만 보여주는 것은 통계 지표의 악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고용률을 비교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2014년 1~7월과 2018년 1~7월의 고용률을 보면 박근혜 정부 고용률은 58.5~61.1% 수준이지만 문재인 정부 고용률은 65.8~67.0%로 내내 박근혜 정부 때보다 높았다. 다만 증감을 비교하면 박근혜 정부는 전년 동월 대비 고용률이 계속 증가했고 문재인 정부는 동일하거나 소폭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런 종합적인 지표를 해석하는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비율 지표는 0.1% 수준에서 상승하고 하락하니 잘 감이 안 와 기자들이 좀 더 직관적인 취업자 수를 많이 쓰는 것 같다”며 “다만 예전에 1년에 30~40만명 늘었던 인구가 지금은 20만명 중반대로 줄고 있다. 평균적으로 15만명 이상 차이가 나면 취업자 수 증감에 영향을 끼치고, 어느 순간에 인구가 감소되면 고용상황이 좋아져도 취업자 증가폭에 변동이 없거나 미미하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비율 지표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 오용, 무지인가 고의인가
통계의 오용과 왜곡이 이렇듯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무지와 고의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무지에 의한 오용인지, 어떤 것이 고의에 의한 왜곡인지 딱 떨어지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위에 들었던 세 가지 사례처럼 무지와 고의는 대개 뒤섞여 나타난다.


기자들은 통계의 오용과 왜곡이 일어나는 원인을 기사 생산 방식에서 찾는다. 종합일간지 한 산업부 기자는 “통계 발표 자료는 전날이나 당일 아침에 메모해놓고 기사를 작성하는데 마감 때문에 사실 통계자료를 제대로 분석하고 기사를 쓰진 않는다”며 “원 자료는 거의 못 보고 보도자료를 읽고 쓰거나 연합뉴스 기사를 참고한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통계자료는 세밀하게 들여다보지도 않고 어떤 파급력이 있을지 진지한 고민도 하지 않은 채 기사 작성의 요건처럼 갖다 붙이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경제부, 산업부 등을 담당했던 한 경제지 기자도 “통계라는 것이 굉장히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임에도 기자들이 깊게 공부하고 또 분석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라며 “게다가 많은 기사들이 사실상 ‘야마’가 잡혀서 내려온다. 청와대가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고 언론이 비판하곤 하지만 사실 기자들 역시 기사 방향에 맞는 통계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데다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지점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현실적 한계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기자들이 통계를 해석할 기본적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0년 ‘통계 보도 길잡이’를 펴냈던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표본의 대표성부터 자료가 설명하는 기간의 범위, 사용하는 질문의 특성, 지수가 어떻게 계산됐는지를 기본적으로 기자들이 이해해야 한다”며 “그게 힘들다면 적어도 표본 설계 전문가와 지표와 관련된 전문가 두 집단을 취재원으로 확보해놓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통계의 경우 사무관에게 물어보고 책자 형태로 된 승인통계 작성방법을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  
  •  
  •    
  •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