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해직언론인들 명예회복 더이상 미뤄선 안돼"

'80 해직을 말한다' 토론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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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는 언론을 장악하면 천하를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언론인 대거 구속, 800명에 이르는 언론인 강제해직, 그리고 언론 통폐합 등을 단행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민심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는 사실을 몰랐다.”(김동선 전 기자협회보 기자가 88년 언론청문회에서 한 말)

 

그때 광주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내가 기자라는 사실이었다. 당시 나는 기사 한 줄 보도할 수 없는 거세된 무정란 기자였다. 마음 놓고 취재수첩에 메모도 못했다. ‘보도할 수 있느냐는 악에 받친 시민들의 핀잔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오홍근 전 중앙일보 기자가 프레시안에 쓴 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획세미나, 80 해직을 말하다'에서 발제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획세미나, 80 해직을 말하다'에서 발제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지난 19808월 언론인들을 상대로 무더기 해고가 잇따랐다. 정부가 직접 정화대상으로 선정한 사람과 언론사에서 가려낸 사람을 합치면 총 933. 그해 11월에는 대대적인 언론사 통폐합이 단행됐고, 300명 이상의 언론인들이 또 길거리에 내몰렸다. 이들 80년대 해직언론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생을 치렀지만, 이후 재취업 대상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 언론계에서 이들에 대한 국가적 사과와 함께 배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80 해직을 말한다> 세미나에서는 당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과 및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토론이 이뤄졌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의 일부 개정안과 ‘1980년 해직언론인의 배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안등을 대표 발의한 민병두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참석해 피해 언론인에 대한 명예회복과 국가적 배상을 법제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한국의 민주화는 언론의 민주화와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오늘 이 자리를 통해 80년의 참극을 조명하고 현장에 대한 증언과 실천의 뜻깊음을 새삼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 의원 또한 아직 우리 사회가 80년의 연장에 있고 아직도 정리해야할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과거의 언론인 문제에 대한 해결이 되지 않고서는 당시 신군부의 만행도 정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와 김준범, 유숙열, 고승우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윤덕한 전 경향신문 기자, 손석춘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등은 1980년 당시 무참히 이뤄진 검열과 치열했던 언론인들의 투쟁 과정을 증언했고,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 등과 관련해 논의했다.

 

윤덕한 전 경향신문 기자는 광주 항쟁 당시 거의 전 언론사 기자들은 제작거부를 했지만 실제로 많은 언론사에서 제작거부가 선언적인 수준에만 그치고 실제로 지면에 반영이 되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윤 전 기자는 특히 경향신문은 정권 홍보의 총대를 메고 다른 언론사의 정부 비판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올리며 기자들이 얼굴을 못 들고 다녔다. 그런데 박정희 피살 후 권력에 대한 저항정신이 되살아났고 그게 제작거부로 이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고승우 대표는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는 광주항쟁 당시 신군부에 반기를 든 언론에 대한 통제, 탄압을 내란 범죄 수준에서 자행했다. 이로 인한 언론의 상처는 건국 후 최대였다는 평가를 받았다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1980년 언론투쟁을 광주 항쟁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문제에 대해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박사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되는 9월 발족할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80년 언론학살 진상이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우리 사회에서는 문제점을 정파성의 잣대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며 “80년 해직언론인들의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당시 투쟁과 학살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고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던 투쟁이 1980해직 기자들의 기자정신이었다면, 오늘날 그건 자본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진실을 보도하고 노동과 민중을 배제하거나 억압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에 맞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이어야 옳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자로는 <1980년 언론 투쟁과 한국 민주화 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현이섭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와 최성민 방송독립포럼 공동대표, 이원섭 전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표완수 시사IN 대표, 윤재걸 전 동아일보 기자 등이 논의를 이어갔다.

 

“527일 광주가 무자비하게 진압되고 나서, 그때는 젊은 기자들 기가 많이 꺾일 당시였다. 중앙일보마저 다시 제작에 들어가고 주저앉게 됐다. 당시 경향신문에서는 대학생 운동을 하는 학생회장들의 수배 사진을 사회면에 싣기까지 했다. 편집국장에 가서 이게 기사냐 광고지라고 했더니 광고비를 받고 광고면에 실으라는 말을 하더라. 결국 사표를 냈다.”

 

당시 경향의 기자였던 표 대표는 남영동에서 고문 당한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집에 있는데 2명의 치안본부 사람들이 찾아와 얼굴에 검은 천을 씌워서 끌고 갔다. 당시 직감적으로 남영동으로 간다는 것을 예감했다고 증언했다. 표 대표는 이틀 넘게 잠을 안 재우고 구타가 이어졌다당시의 비민주, 야만성은 언제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우리가 경계를 늦추면 다시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원섭 전 교수는 당시 암흑의 시기에 언론투쟁조차 없으면 어땠을지, 언론인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광주 민주항쟁동안 목숨을 잃고 평생 고생하신 분에 비하면 해직을 나란히 놓을 수 있는 것이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지만, 당시 직간접적으로 저항한 언론인들이라는 데 대해 역사에 올바르게 기록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석한 정규성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언론자유 수호를 외쳤던 우리의 훌륭한 선배님들은 당시 신군부에 의해 거리에 내몰렸다. 불의에 항거했던 선배님들은 어느덧 백발의 어르신이 되셨지만 평생 해직기자의 아픔으로 살아오셨다. 벌써 40년의 세월이 흘렀다해직언론인에 대한 국가 보상과 명예회복은 아직 미완성이다. 해직된 수많은 여러 선배 언론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힘을 다해 돕겠다고 밝혔다.

 

김환균 전국언론노조위원장도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언론인들을 해고한 건, 비판의 입을 막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잠재적 비평자들을 옭아매기 위한 거라고 생각한다선배님들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이뤄져야 하고 이게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첫발일 뿐이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 그 일은 어떤 정권에 있어서도 일어나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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