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강국’으로 불리는 일본. 전 세계에서 종이신문이 가장 잘 팔리는 나라다. 세계신문협회가 지난 2016년 공개한 ‘유료 일간지 발행부수 상위 10위’엔 일본신문 4곳이 올랐다. 1위는 910만부를 찍는 요미우리신문이었다. 2위 아사히신문(660만부), 6위 마이니치신문(316만부), 10위 니케이신문(270만부)도 순위에 자리했다.
요미우리신문이 1000만부 넘게 발행하던 201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일본 신문산업은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신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일간지들은 일주일 내내 신문을 발행하고, 1개 매체가 조간과 석간(일요일 제외)을 모두 낸다. 취재인력도 상당하다. 아사히신문의 경우 기자만 2000명이 넘을 정도다.
시장 규모에선 차이가 있지만 한국과 일본의 언론문화는 비슷한 면이 많다. 이른바 정경사(정치·경제·사회) 중심의 부서 구분이나 출입처, 기자단, 간사, 캡, 기자실 개념도 같다. ‘마와리’ 등 업계 용어도 한국과 일본에서 같은 의미로 쓰인다.
한국언론과 일본언론, 무엇이 같고 또 다를까. 지난 7월31일과 8월1일 일본 도쿄에서 아사히신문 사회부 시미즈 다이스케 기자,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 오누키 도모코 기자를 만났다. 두 신문기자의 삶을 통해 일본언론을 들여다봤다.
◇신입기자 필수코스 ‘5년간 지방근무’
일본은 서류-필기-면접 전형으로 신입기자를 선발한다. 지난 2006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한 시미즈 기자는 필기시험 통과 후 3차례 면접을 치르고 최종합격했다. 채용방식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신입 교육과정부턴 큰 차이를 보인다. 시미즈 기자는 입사하자마자 도쿄가 아닌 이바라키현, 고치현 등 지방에서 5년간 일했다. 취재기자직군 입사동기 50명도 지방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지방근무는 일본 신입기자가 거치는 필수 코스다. 주요 일간지들은 지방본사 4~5곳과 함께 43개 현(한국의 도)마다 지국을 두고 있다. 신입기자는 입사 직후 최소 5년간 지국을 돌며 근무해야 한다. 5년 정도 지나면 도쿄본사 근무를 지원할 자격이 생긴다. 상황에 따라 또는 기자의 능력에 따라 본사근무 여부가 결정된다. 시미즈 기자는 “지방에선 기자 1명이 맡아야 할 일이 많다.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스스로 선호하는 분야를 파악할 수 있다”며 “만약 사건사고에 관심이 많다면 몇 년 뒤 도쿄본사 사회부로 이동해 더 큰 사건을 취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 마이니치신문 입사 후 사이타마현과 후쿠시마현 등에서 5년 동안 근무하다 도쿄로 온 오누키 기자도 신입의 지방근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누키 기자는 “신입 땐 기본적으로 경찰출입, 스포츠담당부터 하는데 5년간 있다 보면 지방선거 또한 반드시 겪는다”며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좋아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취재영역을 찾는 시기다. 도쿄에선 기자로서 ‘본게임’을 시작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마와리에서 마와리로 이어지는 일상
주요 부서에서 근무하는 도쿄 기자들의 하루는 마와리로 시작해 마와리로 끝난다. ‘돎, 차례로 방문함’을 뜻하는 마와리(まわり)는 일본언론의 대표적인 취재방식이다.
한국언론에서 마와리란 용어는 주로 경찰서 순회취재로 쓰이지만, 일본에선 기자가 취재원의 자택에 찾아가는 걸 의미한다. 경찰 기자는 경찰간부, 정치부 기자는 정치인, 경제부 기자는 경제관료가 사는 집을 찾아가는 식이다. 마와리 앞에 아침(朝·아사), 저녁(夜·요)을 붙여 아사마와리, 요마와리로 부른다. 기자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와리를 한다. 경찰 기자라면 이른 아침 경찰서장 집 앞으로 출근했다가 취재하고 기사쓰고 마감한 뒤 저녁쯤 다시 서장 집을 찾고, 거기서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언론계에 마와리가 자리 잡은 배경엔 일본 특유의 폐쇄적인 취재문화가 깔려있다. 일본인들은 모르는 사람과의 전화통화에 부담감을 느낀다고 한다. 기자를 제외하고 명함에 개인 휴대폰 번호를 표기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주요 취재원인 경찰,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보통 메일이나 회사전화를 통해 연락하다가 친해지고 나서야 개인 전화번호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기자에겐 취재원과의 일대일 만남이 중요하다. 하나라도 더 묻고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당사자를 직접 찾아가는 것이다.
정치부에서 일했던 오누키 기자는 “정치인 집 앞엔 밤낮으로 기자들이 진을 친다”며 “캡(팀장)정도 되면 취재원들도 만나주지만 한창 현장을 뛰는 젊은 기자들에겐 직접 찾아가서 질문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외무성을 오래 출입한 그는 현역시절 차관이나 국장 뿐 아니라 과장 집까지 찾아가곤 했다. 밤 마와리를 하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부처 관계자가 한 두 마디 던져준 말이 단독기사가 될 때도 있었다.
◇과노동 문화…일과 삶 경계없어
일본 기자들의 마와리 문화는 결국 과노동을 부른다. 오누키 기자는 정치부에선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하지 못할 만큼 늘 바빴다고 했다. 그의 업무는 새벽에 시작해 새벽에 끝났다. 2008년 출산하고 이듬해 정치부로 돌아왔을 땐 걱정이 컸다. 마이니치 정치부에서 출산 뒤 복귀한 최초의 여기자였다. 생활부로 옮길까 고민도 했지만 기자로서 길이 보이지 않았다. 정치부에 남아 버텼다. “평일엔 사생활이 전혀 없었어요. 주말에도 나가야 하고. 출근 안 하는 날이라도 관련 책을 읽거나 기사준비를 해야 했으니까요. 24시간 일한 거나 마찬가지죠.”
마와리를 하지 않는 기자들도 삶과 업무의 경계가 모호하다. 경찰서에 상주하지 않고 그때그때 벌어지는 사건사고, 기획기사 등을 담당하는 사회부 유군(遊軍) 시미즈 기자도 그렇다. 아사히신문 도쿄본사 사회부 120명 가운데 20명이 그와 같은 유군기자다.
보통 오전 9시에 출근하는 시미즈 기자는 밤 10시가 돼서야 퇴근한다. 취재가 늦어지거나 저녁 일정이 있다면 새벽에 퇴근하는 것도 예삿일이다. 업무시간은 명확하지 않다. 퇴근한다고 업무가 끝나는 것도, 출근한다고 하루종일 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매일 오후 5시쯤 3살난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와 재운 뒤 다시 일하러 간다.
“개인 생활과 기자 업무를 명확하게 구분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래도 쉴 때는 확실히 쉬려고 합니다. 단 아무 일도 없을 때만요. 사회부니까 사건이 발생하면 언제든 일터로 나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한 달 간 초과근무를 159시간이나 한 NHK 기자가 과로사하는 일이 있었다. 도쿄도의회 선거와 참의원 선거를 취재했던 기자는 사망 당시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발견됐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우에다 료이치 NHK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일하는 방식을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처럼 일본에서도 지난 6월 ‘일하는 방식 개혁법’이 제정됐다. 초과근무 시간에 상한을 두는 등 일본의 장시간 노동문화를 개선할 여지가 생겼다. 오누키 기자는 “언론계에도 노동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개념이 들어왔다. 다만 아직 언론사 차원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은 없다”며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겠지만 과노동 문제는 일본 언론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디지털 위기감 생겨나…“유료기사에 자부심”
디지털 강화 움직임은 일본 언론계에 일고 있는 또 하나의 변화다. 신문 발행부수는 매년 줄어들고, 스마트폰이나 PC에서 뉴스를 보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업계에 위기감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1월 교도통신을 인용해 연합뉴스 등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 ‘신문통신조사회’가 2017년 11월 일본인 성인남녀 3169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스마트폰·PC 등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한다’는 응답이 71.4%로 나타났다. 조간신문은 68.5%(복수 응답 가능)였다. 연합뉴스는 “조간신문보다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는 응답이 많은 것은 조사회가 2010년 같은 항목을 넣어 조사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라며 “조간을 읽는다는 응답은 2008년 90%로 최고를 기록했지만 이후 감소로 전환하며 올해는 68.5%에 그쳤다”고 전했다. 다만 같은 조사에서 매체별 신뢰도(100점 만점)는 신문(68.7%)이 인터넷(51.4%)을 크게 웃돌았다.
일본신문의 고민은 점차 깊어지겠지만, 포털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데다 디지털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한국언론 생태계와는 다른 상황이다. 일본 주요 신문사들은 야후재팬 같은 포털사이트에 기사를 하루 4~5건만 내보낸다. 신문사 홈페이지에서도 단신 일부를 제외하면 구독료를 내야 기사 전문을 읽을 수 있다. 일간지 한 달 구독료는 조·석간을 합해 4만원(4037엔) 정도다.
시미즈 기자는 “출처가 불확실한 가짜뉴스, 취재를 통해 밝혀낸 사실이 아닌 기자의 생각을 기사처럼 쓰는 인터넷 매체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 기사는 대부분 무료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아사히신문은 유료지만 그에 맞게 제대로 된 보도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무료 뉴스보다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쓰는 우리의 기사가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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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까이’라는 말, 일본어 사전에도 없다
“이 기사 야마가 뭐야.” “우라까이해서 반까이라도 해.”
한국기자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야마, 우라까이, 반까이, 마와리, 하리꼬미, 나와바리 등 한국 언론계엔 일본어로 된 용어가 많다. 지난 7월말~8월초 일본에서 만난 현지 기자들에게 이런 용어가 실제 쓰이는지 물었다. 다들 ‘놀랍다’,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한국에서 기사의 중심 내용을 의미하는 ‘야마’는 일본어로 ‘산’(山)을 뜻한다. 정작 일본 기자들은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과거 소설의 구성단계인 ‘절정’의 한 표현으로 쓰였다고 한다. 하리꼬미(はりこみ)는 사전적 의미대로 ‘잠복’일 뿐이다. 일본엔 신입기자들이 경찰서에서 숙식하는 문화가 없다. 취재하며 만난 한 일본 기자는 “기자가 왜 경찰서에서 자느냐”고 되물었다.
‘우라까이’는 일본어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비슷한 발음으로 ‘우라가에스’(うらがえす, 뒤집다)가 있긴 하지만 두 단어 모두 일본 언론계에선 쓰지 않는다. ‘반까이’(ばんかい)는 ‘만회’란 의미로 사용된다.
지난 3월까지 5년간 서울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오누키 도모코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은 “‘기사에 야마를 잡아야 한다’는 문장에서 ‘야마’가 일본어라고 생각하는 일본기자들은 없을 것”이라며 “특히 ‘나와바리’는 조직폭력단의 영역이나 동물의 영역 표시를 설명할 때 쓴다. 한국기자들이 취재분야를 나와바리라고 표현하는 걸 일본사람들이 안다면 모두 깜짝 놀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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