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기자들에게 5·18은 숙명…"진실 추적이 우리 역할"

지역언론 리포트(5) 광주‧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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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주관으로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전야제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주관으로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전야제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또다시 5월, 5·18민주화운동을 기리는 보도가 잇따랐다. 3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분노와 애도는 여전하고 가려진 진실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광주전남 기자들에게 5·18은 특별하다. 매년 써야 할 기삿거리를 뛰어넘는다. 기자들 스스로가 5·18의 당사자이자 왜곡되고 감춰진 진실을 찾아가는 주체여서다. 5월이 되면 광주 기자들이 분주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18 38주년을 앞두고 이달 초 만난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5·18 특집물과 기획 기사를 내놓느라 여념이 없었다. 광주 기자들이 자존심을 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모습이다.


이들의 보도 덕분에 우리 사회는 5·18의 실체에 한 발자국씩 다가갈 수 있었다. 수많은 증언과 증거가 언론을 통해 기록으로 남았다. 가깝게는 지난해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사실로 밝혀졌다. 최근엔 당시의 성폭행 피해 참상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대하 한겨레 광주주재 기자는 “광주 기자에게 5·18은 숙명이고 늘 지고 가야 할 짐”이라며 “선후배를 떠나 함께 취재하면서 여론을 형성해가고 있다. 젊은 기자들을 보며 저도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3년차인 김화선 전남일보 기자는 “시민들은 5·18 이전의 광주와 그 이후의 광주를 살아가고 있다. 5·18은 역사라기보다 삶이 돼버렸다”며 “시민의 삶과 직접적으로 닿아있어서 기자들에게 5·18은 다뤄야 하고 또 다룰 수밖에 없는 주제”라고 설명했다.


김용희 광주일보 기자도 “광주 언론사엔 사회부마다 5·18 담당이 있다. 5·18은 끝까지 풀어야 할 숙제”라며 “아픔을 덮고 매년 치르는 기념행사로 승화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최근 다시 진상규명으로 무게가 쏠렸다. 기자들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 검증하고 이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5·18을 취재하나

광주 기자 대부분이 5·18을 취재했거나 취재하고 있다. 하지만 38년이 흐른 만큼 세대별 체감도는 다르다. 언론사 임원급이나 퇴직한 기자들에게 5·18은 현실이었다. 실제 부모와 형제, 친구, 이웃이 1980년 5월 목숨을 잃었다. 자신이 5·18 유공자이기도 했다. 그 아래인 현직 데스크들은 선배들이 겪은 슬픔과 현실의 진상을 파악하려 했던 세대다.


노병하 전남일보 기자는 “차장인 저를 포함해 지금 현장을 뛰는 기자들은 선배들보다 5·18을 잘 모를 수도 있다”며 “그럼에도 지역 기자만이 할 수 있는 취재와 지역민의 상처를 보듬는 기사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대 차이와는 별개로 5·18을 집중적으로 취재해온 기자들은 제각각 계기를 가지고 있었다. 박성원 전남일보 사회부장에겐 미안함과 죄책감이 5·18 취재의 원동력이었다. 1980년 5월 당시 10살이던 박 부장은 도로 위에서 유리창이 깨진 버스, 노래를 크게 부르며 걸어오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이들이 거리를 행진하듯 지나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돈이며 음료수며 먹을거리를 건넸다. 그 모습이 무서웠다는 박 부장은 어린 마음에 두 손을 뒤로 숨겼다고 한다. 폭도인 줄 알았던 이들이 사실은 시민군이었단 걸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박 부장은 “오해했다는 죄송함과 부채의식을 안고 살아왔다”며 “대학에서 5·18을 배우며 더 큰 관심을 두게 됐고 기자가 된 후에도 자연스레 관련 취재를 많이 했다. 취재하다 보니 띄엄띄엄 남아 있던 1980년의 기억들이 하나둘 맞춰졌다”고 말했다.


김철원 광주MBC 기자는 부끄러움 때문에 5·18 취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5·18 종료 시점이 5월27일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고 나서부터다. 김 기자는 “5·18이 열흘간 이어진 항쟁의 기록이라는 것은 저에게 새로운 깨달음이었다”며 “광주 사람이고 광주에서 10년 가까이 기자를 하고 있는 데도 몰랐다는 부끄러움이 컸다”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선배의 기획과 데스크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이고 습관적으로 5·18을 다뤘던 그는 10년차이던 2013년부터 본격적인 취재에 뛰어들었다. 매년 5·18 기획특집 다큐멘터리를 기획·제작하면서 진실을 추적했고 의제를 제시했다.


김 기자는 “부끄러움이 발단이 됐지만 나도 모르면 다른 이들도 모르지 않을까, 함께 5·18을 공부하자는 심정으로 기획보도를 하고 있다”며 “늘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취재한다”고 말했다.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지난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한 유족이 슬픔을 추스리고 있다. (뉴시스)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지난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한 유족이 슬픔을 추스리고 있다. (뉴시스)



“기자들, 5·18 공부해야”

광주 기자들이 그간 해온 보도와 달리 ‘5·18 북한군 개입설’ 등 왜곡된 정보가 사실인 양 퍼졌다. ‘보상도 받았는데 그만하면 되지 않느냐’는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지역민들에겐 슬픔이자 자랑인 5·18이 밖에서 비난받는 걸 보면 기자들도 자존심이 상한다고 한다. 이럴수록 지역 기자들이 더 분발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류성호 KBS광주 기자는 “진상을 규명하려면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미국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이 중요한데 매년 취재하다보니 단편적인 진실만 찾게 되는 것 같다”며 “기자들에겐 작은 사실도 기사가 되지만 그걸 반복적으로 보는 독자·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류 기자는 지엽적인 부분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보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상당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14년차인 그는 “이미 지나간 얘기를 새로운 사실이라고 보도하고 단독을 붙이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의도적이라기보다 공부가 안돼서인 것 같은데 지역뿐 아니라 중앙언론 보도에서도 꽤 있다. 최소한 기본적인 지식을 쌓고 5·18을 취재해야 의미 있는 보도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성원 부장도 같은 의견이었다. 자신도 ‘광주 기자는 5·18 전문가여야 한다’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항상 잊지 않는다고 했다. 박 부장은 “취재원 대부분이 5·18 당사자인데 취재기자가 엉뚱한 소리를 하면 어떻겠나. 철저한 공부가 필요하다”며 “공부 안 한 티가 나는 기사를 보면 같은 기자로서 창피할 수밖에 없다. 5·18 보도는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취재기자뿐 아니라 데스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광주 기자들의 사명감과 부끄러움

광주 기자들이 5·18을 취재하며 자부심 혹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사명감이 있어서다. 이들에게 5·18은 기자로 사는 내내 짊어져야 할 존재다. 아직도 기자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 지난 3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오는 9월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도 앞뒀다. 그토록 외쳐온 진상규명의 첫발을 38년 만에 뗀 셈이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감시하고 이를 역사로 기록하는 일도 기자들의 몫이다.


안관옥 한겨레 광주주재 기자는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도, 진실을 규명하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늘 죄송하고 부끄럽다”며 “바쁘게 살다가 5월만 되면 5·18을 보도하고 다시 돌아가는 제 모습이 또 한 번 부끄럽다”고 말했다.


안 기자는 “그럼에도 5월이 오면 떨어졌던 에너지를 다시 채우고 기자로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며 “진실은 하나인데 지금까지 너무 많은 2차 자료가 나왔다. 1차 자료를 충실하게 추적하고 보도하는 것이 진실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광주 기자들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김철원 기자는 “5·18은 광주 기자로서 인생을 걸고 취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지역민으로서는 자존심을 지키고 자부심을 느끼는 주제다. 진상 규명과 함께 5·18이 폄훼되고 조롱당하지 않도록 5·18의 역사를 전국으로 알리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노병하 기자는 광주 언론사 사회부 사건팀이 5·18 기사를 쓰지 않는 날을 기다린다. 노 기자는 “모든 진상이 밝혀지고 지역민들의 억울함이 풀리는 때가 된다면 지금 같은 기사를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며 “그땐 매년 5월을 슬픔이나 울분이 아니라 축제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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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언론사 4곳, 최근 2년새 사주 바뀌었다는데…


광주전남 지역에서 최근 2년새 사주가 바뀐 언론사가 4곳이다. 1990년 광주에서 생활정보신문을 처음 발간한 사랑방미디어가 지난해 3월 무등일보와 뉴시스 광주전남본부를 인수했다. 그해 5월엔 중흥건설이 남도일보의 사주가 됐고 이달 초엔 전남매일이 지역에 기반을 둔 건설사 골드클래스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이같은 변화 속에 가장 큰 기대를 모은 건 기자들의 처우 개선이다. 그간 광주전남 신문사 여러 곳이 경영난을 겪으며 기자들의 임금을 삭감했다. 사주가 바뀐 이후 이들 언론사의 임금은 실제로 상승했다. 김옥경 무등일보 기자는 “지난해 인수 직후 무등일보 임금이 지역지 가운데 가장 높았을 정도로 처우 개선이 큰 폭으로 이뤄졌다”며 “이후 사주가 바뀐 타신문사도 임금이 올랐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좋은 결론을 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애란 전남매일 기자는 “당장 직원 복지가 좋아졌다. 아직 급여는 오르지 않았지만 다들 기대감이 크다”며 “과거 모기업의 워크아웃 이후 너무 열악한 임금을 받아왔기 때문에 회사 재정비가 마무리되면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처우개선뿐 아니라 한 지붕 아래 통신사·신문사의 융합 시도도 이목을 끈다. 뉴시스 광주전남본부와 무등일보는 각자의 사이트와 지면 외에도 그룹 별도의 온라인 플랫폼 ‘사랑방 뉴스룸’에서 콘텐츠를 서비스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언론사 기자들이 함께 취재 뒷이야기 등을 다루는 ‘정치톡’ 콘텐츠와 공동 기획 기사 등도 선보였다.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본부장은 “한 기업이 언론사를 인수한 데 그치지 않고 통신과 신문, 생활정보지가 융합한 뉴스룸을 운영하면서 미래 언론 모델을 꾸려나가는 단계”라며 “사랑방 뉴스룸은 지역의 포털을 지향한다. 지역 언론의 새로운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김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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