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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적대의 상징' 확성기 철거

[5월2일 신문 1면 사진으로 본 오늘]

강아영 기자2018.05.02 10:18:05

남북이 1일 최전방 지역에 설치된 대남·대북 확성기 방송시설 철거에 돌입했다.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따라 적대행위 중단 조치 이행을 시작한 것이다. 이날 다수의 신문은 확성기 철거 모습을 1면 사진으로 전했다.


5월2일자 경향신문 1면 사진 캡처.

▲5월2일자 경향신문 1면 사진 캡처.

경향신문은 남북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시설을 철거한 1일 경기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본 황해북도 개풍군 한 마을의 탈곡장 건물을 1면 사진으로 전했다. 경향신문은 “이 탈곡장에는 지난달 15일 인공기가 걸리고 대남방송을 위한 방송차량 스피커가 설치됐었다”며 “지난달 25일에는 인공기가 내려가고 스피커도 닫혀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5월2일자 동아일보 1면 사진 캡처.

▲5월2일자 동아일보 1면 사진 캡처.


동아일보는 육군 9사단 교하중대 교하소초 장병들이 1일 경기 파주시 민간인통제구역 내 설치된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는 모습을 1면 사진으로 전했다. 동아일보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판문점 선언에 따라 군은 이날 최전방 지역의 대북 확성기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며 “군 관계자는 ‘북한군도 전방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는 동향이 파악됐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5월2일자 세계일보 1면 사진 캡처.

▲5월2일자 세계일보 1면 사진 캡처.


세계일보도 동일한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세계일보는 “1962년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에 대응해 국군은 1963년 5월1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며 “1972년 7·4공동성명을 계기로 남북은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으나 1980년 9월 북한의 방송 재개에 따라 국군도 다시 시작했다. 이후 천안함 사건,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사건, 남북 8·25 합의, 4차 핵실험이 이어지면서 방송과 중단을 반복했다”고 보도했다.


5월2일자 한국일보 1면 사진 캡처.

▲5월2일자 한국일보 1면 사진 캡처.


한국일보는 판문점을 배경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진을 1면에 연달아 실었다. 한국일보는 “남북 정상회담 무대였던 판문점이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유력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의 집’이 유력 후보로 급부상한 데엔 문 대통령의 중재노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5월2일자 조선일보 1면 사진 캡처.

▲5월2일자 조선일보 1면 사진 캡처.


조선일보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30일 밤 TV 생방송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이 2015년 국제 핵 합의를 어기고 핵무기 개발을 계속해 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이스라엘 정보 당국이 입수했다”며 CD 183장과 무게 500kg 분량의 문서 등 자료를 공개하고 있는 모습을 1면 사진으로 전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1월 이란 수도 테헤란의 슈러버드 지역에 있는 한 비밀창고에 한 무리의 비밀요원들이 한밤중 이 창고를 급습했다. 그들은 창고를 뒤져 CD와 문서를 빼내왔고 그로부터 3개월쯤 흐른 지난달 30일 CD와 문서가 이스라엘 TV 방송에 등장했다”며 “네타냐후 총리는 그 앞에 서서 ‘이란은 거짓말을 했다’며 열변을 토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모사드는 2015년 서방과 이란이 ‘핵 협정’을 맺은 이후에도 이란의 핵개발 증거를 찾으려고 애쓰던 중  2016년 2월 이 창고를 발견하고 집중 감시해 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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