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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언론사 미투’엔 침묵하는가

조사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가해자 처벌마저 ‘솜방망이’

김달아 기자2018.03.06 22:23:21

연극·뮤지컬 일반 관객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MeToo)운동을 지지하는 '연극뮤지컬관객 #WithYou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연극·뮤지컬 일반 관객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MeToo)운동을 지지하는 '연극뮤지컬관객 #WithYou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 Too)’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을 공개한 이후 문화예술계와 종교계, 정계 등 사회 전반에서 “나도 당했다”는 외침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언론은 이를 앞다퉈 보도하며 미투 운동을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계에도 성폭력을 겪으며 속앓이 하는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일간지 A 기자는 “밖으로 터지진 않았지만 모든 언론사에 크고 작은 성폭력 사건이 있었을 것”이라며 “저질러 놓고 이런 행동이나 발언이 문제가 될 줄 몰랐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밝혔지만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경징계로 그친다고 털어놨다.

 

선배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던 B 기자는 “잊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버텨왔는데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보고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며 “미투 기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시도 때도 없이 울컥해서 일도 손에 안 잡힌다. 가해자는 너무 잘살고 있는데 나만 피해자로 남게 될 것 같아 두렵고 힘들다”고 울분을 토했다. 성추행, 성희롱을 수차례 겪었다는 일간지 C 기자는 “한 번은 용기를 내서 문제를 공론화했고 가해자는 사내 인사위에 올랐지만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며 “그 뒤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피해가 있어도 말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기자들은 언론계의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구조와 남성중심 문화가 피해자들을 더욱 나서지 못하게 만든다고 입을 모았다. 동종업계 치부를 기사화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루는 관행도 문제로 언급됐다.

 

방송사 D 기자는 “여기자가 많아졌지만 아직도 결정권자 대부분이 남성이고 일하는 문화 자체가 남성중심적이다. 여기자들이 피해 사실을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어려운 구조”라며 “대기업, 공기업에서 벌어졌다면 ‘단독’ 달고 내보냈을 성추행 사건이 언론사에서 벌어지면 같은 업계라고 쉬쉬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소문이 빨리 퍼지는 업계 특성 탓에 피해자들은 문제 제기를 주저한다. 지라시 형태의 ‘받은글’이 일상인 기자사회에선 이 같은 피해 사실도 하나의 보고 거리가 된다. 또 다른 방송사 E 기자는 “출입처 동료가 술자리에서 피해를 당했는데 삽시간에 소문이 났었다”며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 성추문 주인공인 것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했다. 내가 피해자였어도 입을 닫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A 기자도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연락했더니 이미 그 사건을 다 알고 있었다”며 “윗선 몇 분께만 보고했는데 그렇게 퍼질 줄은 몰랐다. 내겐 큰 상처인데 다들 쉽게 여기는 것 같아 힘들었다”고 했다.

 

사내 성폭력 사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언론사 행태도 2차 피해가 될 수 있다. 2012년 KBS에서 같은 팀 기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전직 리서치 담당 직원 E씨의 폭로글에서도 언급된 부분이다. E씨는 “회사 상부에서는 이 일을 알고 있었지만 사건 해결에 대한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며 “직접 피해 내용과 2차 가해를 겪은 일을 제 마음속에서 절대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2013년 한 방송사에선 성추행 전력이 있는 기자가 런던특파원에 선발됐다가 내부 반발로 철회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해당 기자는 2016년에 또다시 특파원 발령을 받았다. 지난해 말 한 종합일간지에선 여기자 1명이 선배 기자 2명을 상대로 성폭력 피해를 호소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2명은 인사위에 회부됐지만 각각 서면 징계, 판단 유보를 받는 데 그쳤다.

 

미투 운동이 일어난 이후 언론사들은 보다 강도 높은 처벌을 내리고 있다. 이달 들어 YTN은 가해자로 지목된 PD를 사건 발생 3년 만에 해고했고, MBC도 성추행 혐의를 받은 기자와 영상편집자에 대해 해고를 포함한 중징계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방송사 F 기자는 “강력한 처벌처럼 회사가 계속해서 ‘누구나 이런 행동을 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며 “성폭력 사건 대응 시스템을 만들고 명확한 조치를 해야 조직문화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여성 간부인 G 기자도 “회사의 강력한 제재와 함께 사내 성폭력은 선후배가 다 같이 나서 해결할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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