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배우들도 솔직히 잘 못 봐요. 촬영장에도 가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찍어온 것만 보고 감독님하고 제작피디님이 현장을 다 해요. 또 대표가 가면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전 필요한 거, 제 때 제 때 돈 넣어주는 걸 하고요.”
여느 드라마제작사 대표가 할 법한 말들이 이어졌다. 포부는 창대하였으나 결국 제일 하고 싶지 않은, 돈(투자) 모으는 일을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야지’라는 꿈이 ‘직원들 임금만 미지급이 안 됐으면’이라는 현실이 되더라는 고민. 드라마제작사 실크우드(주) 김승조 대표는 지난 9일 마포구 서교동 회사 사무실에서 그런 얘기들을 한참 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드라마가 참 마약 같아서…”, “매년 한두 작품 씩은 꼭 하고 싶어서 올해 또 만들려고 준비하는 작품이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제작사 실크우드(주) 김승조 대표가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회사 사무실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모습.
“보도본부를 떠나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동안을 복기하며 ‘내가 올바르게 기자를 하고 있나’, ‘나는 행복한가’ 두 의문이 떠올랐죠. 일단 뉴스라는 게 답답했고요. 부서 타 직군 동료랑 재테크다 뭐다 얘길 하며 보통 직장인 고민도 해봤어요. 난 퇴직하고 뭐하지 같은, 기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질문을 해보게 된 거죠.”
▲김승조 대표는 2015년 12월 KBS를 퇴사하고 이듬해 동료 둘과 함께 드라마제작사를 꾸렸다. 사진은 지인의 네일샵 옆 공간에 마련한 첫 사무실 모습. (김승조 대표 제공)
다만 두 명의 동료와 지인의 네일샵 한 편 공간에서 시작한 사업이 순탄하기만 했다고 말하진 못할 것 같다. 중국시장을 겨냥, 난관 끝에 준비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두 편 제작이 ‘사드 파동’으로 전격 투자취소되는 일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0월, 제작비 62억 원의 16부작 드라마 사전제작 촬영을 마치고 현재 한·중·미·일 동시 방영을 목표로 시기 를 조율 중이다. 워너브라더스사가 투자했고, 미국 배급도 맡았다. 최근 히스패닉이 미국 주류 문화로 부상하며 비슷한 정서의 ‘한국적 로맨틱 코미디’ 시장성이 높이 평가받은 덕분이다.
“고용된 게 7명이고, 제작에 들어가면 스태프가 100명이 돼요. 돈 제때 주는 데 필사적이었어요. 그건 지킨 거 같은데 전 정말 울고 싶었어요(웃음). 벌이는 KBS 때랑 비슷한데 최저임금을 오래 받았고요. 지금은 콘텐츠를 쌓고, 회사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커요.”
▲김승조 대표는 '내 딸에게 권할 화장품'을 표방한 화장품사업을 지난해 런칭했다. 화장품회사 대표는 KBS기자를 그만둔 그가 사업가로서 갖는 세번째 직함이다. 그는 드라마대본, 소설 등을 내는 출판사 이사이기도 하다. 사진은 화장품을 놓고 동료들과 논의 중인 김 대표 모습.(김승조 대표 제공)
기자를 관두고 김 대표는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한다. KBS기자로서 스스로 지녔던 제약을 벗어던진, 선언 같은 물건이다. 김 대표에게 “기자 그만두길 잘 한 거 같냐”고 물었다. 지난해 그의 출판사가 내놓은 KBS 드라마 ‘김과장’ 대본집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일 잘못되면 넌 뭘 잃을 것 같냐?” “직장, 4대 보험, 월급, 보너스요.” “반대로 성공하면 뭘 얻을 것 같냐?” “저요, 제 자신이요…어딘가에 접어뒀었거든요. 자존심, 자존감, 자긍심 다요.” 김승조 대표의 답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근사하게 성공한 게 아니라 선·후배들한테 좀 민망하긴 해요. 간신히 하루하루 버티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전 정말 재미나게 하고 있어요. 전 잘 나온 거 같아요. 가족과도 시간을 더 보내고 지금 행복감이 커요.”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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