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배우들도 솔직히 잘 못 봐요. 촬영장에도 가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찍어온 것만 보고 감독님하고 제작피디님이 현장을 다 해요. 또 대표가 가면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전 필요한 거, 제 때 제 때 돈 넣어주는 걸 하고요.”
여느 드라마제작사 대표가 할 법한 말들이 이어졌다. 포부는 창대하였으나 결국 제일 하고 싶지 않은, 돈(투자) 모으는 일을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야지’라는 꿈이 ‘직원들 임금만 미지급이 안 됐으면’이라는 현실이 되더라는 고민. 드라마제작사 실크우드(주) 김승조 대표는 지난 9일 마포구 서교동 회사 사무실에서 그런 얘기들을 한참 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드라마가 참 마약 같아서…”, “매년 한두 작품 씩은 꼭 하고 싶어서 올해 또 만들려고 준비하는 작품이 있다”고 말했다.
“보도본부를 떠나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동안을 복기하며 ‘내가 올바르게 기자를 하고 있나’, ‘나는 행복한가’ 두 의문이 떠올랐죠. 일단 뉴스라는 게 답답했고요. 부서 타 직군 동료랑 재테크다 뭐다 얘길 하며 보통 직장인 고민도 해봤어요. 난 퇴직하고 뭐하지 같은, 기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질문을 해보게 된 거죠.”
다만 두 명의 동료와 지인의 네일샵 한 편 공간에서 시작한 사업이 순탄하기만 했다고 말하진 못할 것 같다. 중국시장을 겨냥, 난관 끝에 준비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두 편 제작이 ‘사드 파동’으로 전격 투자취소되는 일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0월, 제작비 62억 원의 16부작 드라마 사전제작 촬영을 마치고 현재 한·중·미·일 동시 방영을 목표로 시기 를 조율 중이다. 워너브라더스사가 투자했고, 미국 배급도 맡았다. 최근 히스패닉이 미국 주류 문화로 부상하며 비슷한 정서의 ‘한국적 로맨틱 코미디’ 시장성이 높이 평가받은 덕분이다.
“고용된 게 7명이고, 제작에 들어가면 스태프가 100명이 돼요. 돈 제때 주는 데 필사적이었어요. 그건 지킨 거 같은데 전 정말 울고 싶었어요(웃음). 벌이는 KBS 때랑 비슷한데 최저임금을 오래 받았고요. 지금은 콘텐츠를 쌓고, 회사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커요.”
기자를 관두고 김 대표는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한다. KBS기자로서 스스로 지녔던 제약을 벗어던진, 선언 같은 물건이다. 김 대표에게 “기자 그만두길 잘 한 거 같냐”고 물었다. 지난해 그의 출판사가 내놓은 KBS 드라마 ‘김과장’ 대본집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일 잘못되면 넌 뭘 잃을 것 같냐?” “직장, 4대 보험, 월급, 보너스요.” “반대로 성공하면 뭘 얻을 것 같냐?” “저요, 제 자신이요…어딘가에 접어뒀었거든요. 자존심, 자존감, 자긍심 다요.” 김승조 대표의 답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근사하게 성공한 게 아니라 선·후배들한테 좀 민망하긴 해요. 간신히 하루하루 버티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전 정말 재미나게 하고 있어요. 전 잘 나온 거 같아요. 가족과도 시간을 더 보내고 지금 행복감이 커요.”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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