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망망대해에 가라앉았다. 육지에서 3000km 거리. 가도 뭐가 나올 거란 보장이 없었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워낙 멀고 워낙 비싼 곳이기도 했다. ‘통밥’을 굴려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안 가고 싶었다. 다만 실종선원 가족의 부탁 하나를 거절치 못했다. “PD님이 가주시면 안 돼요?” 김영미 PD(시사IN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는 그래서 갔다. 67일간 남미 3개국 등을 돌며 스텔라데이지호를 취재했다. 200자 원고지 77매 분량의 취재기가 나왔다.
“못 간단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 말씀은 드렸어요. 나만 가고 나머진 안 갔고 그러지 마시고 우리 언론이 가는 걸로 이해해주시라고. 진짜 하나도 (새 팩트가) 안 나올 수 있다고 하고 갔어요. 면피만 하려 했어요. 길어야 한 달? 한 달 지나고 가족분이 부탁하시더라고요. ‘더 알아내서 오셔야 해요.’ 못 나오죠.”
배 추적은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지난해 늦여름 우루과이에 도착했다. 황당했다. 아무도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해 몰랐다. 현지 기자들도 그랬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프랑스까지 비행기만 총 17번을 갈아타는 취재일정은 막막함의 연속이었다. 남미의 치안 상태도 걱정이었다. 갱단이 집중된 항구 주변은 특히 사정이 좋지 않았다. ‘전선 없는 전쟁터’ 같았다. 긴장을 놓지 못했다. 브라질 리오에선 3층에 숙소를 잡았다가 다음날 11층으로 숙소를 옮기는 일도 있었다. 밤새 총소리가 너무 가까이 들려 “빗맞아도 죽겠다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시사IN의 지원, 귀국 후 방송으로 보전된 금액을 제외하더라도 약 7000만 원의 자비가 들었다. 적금을 깨서 분쟁지역을 취재하고 다큐를 만든 게 그가 걸어온 길이다.
배는 세계 곳곳에 있었다. 그는 흔들리거나 가라앉는 배를 찾아 올라탔다. 그곳 여자와 아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결혼 후 5년 만인 2000년“아들과 먹고 살려고” 일을 시작했다. 프리랜서 PD로 동티모르 다큐를 만들었고, 1년 반 가량 아침방송 PD일을 했다. 모든 걸 정리하고 이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 시리아, 소말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등 분쟁지역을 찾았다. 다큐를 만들고, 기사를 썼다. ‘분쟁지역 전문 PD’로 불리게 된 과정이다. 몇 번의 유혹이 있었지만 그는 언론사 입사를 거부한 채 느슨하게 시사IN에 몸담고 있다.
“전쟁터는 정말 약육강식이에요. 그들이 제일 약한 사람들이고 전 그냥 사람 이야길 좇은 거고요…언론인이 회사원 역할을 하긴 힘들다고 생각해요. 언론은 이윤을 남기면 안 되는데 회사는 이윤을 남겨야 하고 거기서 상충해요. 어렵게 프리랜서를 고집하고 있어요. 대신 재고 따질 게 줄어요. 국민이 알아야 하는 거냐 했을 때 답이 심플해져요.”
배는 차가운 바다에 있다. 실종선원 가족은 차가운 광화문 광장에서 수색과 침몰 원인 규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선박 블랙박스를 확보해야 하지만 국회는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정부의 노력 역시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PD가 남미 취재 시 우루과이 국방부에 요구한 관련 사진은 기관 간 소송 국면에 접어들었다.
“너무 운이 없었어요. 너무 멀었고, 특수 직업이었어요. 사람 수도 적었고 바로 대선 정국이 됐어요. 구조 상황이 안 되는 나라에 둘러져 있었어요. 그런데 국가는 국민을 기억해야 돼요. 미군은 6·25때 만 명이 얼어 죽은 장진호 사건 유해를 하나라도 더 데려오려고 해요. 망망대해에 돈 들이는 게 실효성이 없다? 그건 자본의 논리지 인도주의가 아니죠. 한 사람이 빠졌어도 국가가 최선을 다 해주길 바라는 거예요.”
※ 김영미 PD는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실을 찾아서>(가칭) 단행본과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스토리펀딩을 진행 중입니다. 해당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8571
※67일간의 취재 후 나온 스텔라데이지호 추적기는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0827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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