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구성원, 칼바람 맞으며 240시간 참회록

새노조 릴레이발언 547명 참여..."향후 투쟁의 큰 동력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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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희가 광주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습니다. 전혀 불평 없이 잘 따라와주신 조합원 여러분 항상 감사드리고요. 사랑한다는 말씀 자주 못 드려서 죄송하고요.” 

 

“와아! 괜찮다!”


“조합원에게 어제 공지하면서 늦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제가 오늘 지각을 했습니다. 그 이유가 와이프한테 깨워달라고 했는데 좀 절 늦게 깨웠습니다. 나오면서 와이프한테 투정을 부리고 나왔는데 파업 기간 가장 고생한 와이프, 가족들…오면서 반성 많이 했습니다. 정말 미안하고요. 파업 끝나면 맛있는 거 사줄게!”

 

“맛있는 걸로 안 된다! 와아!”
“끝까지 우리 힘냅시다. 파이팅!”


15일 오전 11시59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 열흘 간 이어져 온 KBS구성원들의 ‘24시간 릴레이 발언’ 마지막 발언자 박남용 언론노조 KBS본부 광주전남지부장(2012년 입사, PD)이 말했다. 수백 명의 선·후배, 동료들은 그를 에워싼 채 답했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열망하며 지난 5일 시작된 KBS구성원들의 ‘필리버스터’는 240시간을 꼬박 채우고 이날 마무리됐다. 1분의 휴식도 없이 진행돼 온 릴레이 발언에는 총파업 참석자, 즉 공영방송사 기자, PD 등 547명이 참석했다.


KBS구성원들이 열흘 간 이어온 필리버스터 마지막 발언자의 발언을 다른 구성원들이 보고 있다.

▲KBS구성원들이 열흘 간 이어온 필리버스터 마지막 발언자의 발언을 다른 구성원들이 보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새노조)는 이날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기자회견에서 “KBS인 릴레이 발언을 240시간이 지난 오늘 막을 내린다”며 “체감 온도 영하 20도의 강추위와 매서운 칼바람도 KBS를 다시 살리고자 하는 우리 조합원들의 열정과 사기를 꺾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초 우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KBS 비리이사들을 즉각 해임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릴레이 발언을 시작했다. 하지만 릴레이 발언은 어느새 지난 ‘9년의 KBS’에 대한 반성과 속죄의 참회록이 됐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정오 시작된 릴레이 발언에는 본사와 지역, 고연차와 저연차, 맡고 있는 역할 등을 가리지 않고 많은 KBS인이 참여했다. KBS종사자 534명, 파업을 지지하는 언론학자와 시민 13명 등이 동상 앞 마련된 간이 연단에서 시간을 채워줬다.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하고, 참회의 노래를 부르고, 성명을 낭독하고, 108배로 사죄의식을 진행하는 등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반성과 사죄의 발언을 이어갔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24시간 릴레이 발언 종료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24시간 릴레이 발언 종료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들은 뜨거운 호응으로 이를 맞아줬다. 이들의 발언 전 과정은 유튜브 라이브로 24시간 중계됐는데 15일 종료 시점 기준 유튜브 영상 ‘좋아요’ 추천은 약 4000건, 댓글은 1만1000여 개, 누적 조회수는 69000회에 달했다. 직접 광화문 현장을 찾아 핫팩과 음료수를 건네거나 지지의 ‘파이팅’을 보내주기도 했다.


새노조는 기자회견문에서 “이번 릴레이 발언은 우리 2200여 조합원들에게도 자기 각성과 함께 연대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이번 파업에서 반드시 이겨야 함을 다시금 확인하고 KBS를 어떻게 재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고도 밝혔다.


필리버스터 기간은 서울 기준 최저 영하 11도까지 기온이 내려가는 등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 참석자들은 보통 30분에서 1시간 가량 씩 발언을 했다. 한두 시간 전쯤 도착해 인근 24시간 카페에서 대기하다 자신의 차례가 되면 자신의 몫을 짊어지는 식이었다. 그렇게 이 싸움의 무거운 짐을 ‘N분의 1’ 몫씩 나눠졌다. 자신의 순서 후 인적 끊긴 광화문 광장에서 홀로 발언을 이어갈 동료들 때문에 “차마 자리를 못 뜨겠어서 한두 시간씩 더 있다가 심야버스를 탔다”는 얘기, “자려고 누웠다가 영상을 보니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서 광장으로 나갔다”는 말들이 KBS 사람들 입에서 나왔다. 이를 중계하는 보도영상 분야 인력은 줄곧 자리를 지키며 그 모습을 기록했다.

박대기 KBS기자가 지난 6일 24시간 릴레이 발언을 하는 모습. (언론노조 KBS본부 유튜브 영상 캡처)

▲박대기 KBS기자가 지난 6일 24시간 릴레이 발언을 하는 모습. (언론노조 KBS본부 유튜브 영상 캡처)


김준범 언론노조 KBS본부 대외협력국장(기자)은 “집행부가 이 행사를 기획할 때 반대와 우려가 많았다. 이 추운 날씨에 한다는 게 말이 되냐. 괜히 조합원만 고생시키는 거다. 일종의 자학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면서 “100일 넘게 파업하면서 슬픈 일도 있었고 성과도 냈지만 가장 대외적으로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남은 투쟁 일정에 강력한 동력이 될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민주당이 지난해 2~3월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히 위해 9일 간 192시간 27분 발언을 이어간 것보다 길게 이어졌다. 새노조는 “한국기록원에 기록 인증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방통위의 조속한 비리이사 해임을 촉구하며 6일간 단식 투쟁에 들어갔던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릴레이 발언을 이어온 이곳 광화문 광장은 지난 겨울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겠다는 국민들이 함께 모여서 적폐청산을 외쳤던 바로 그 장소”라며 “적폐청산 과제를 현재 수행하고 있는 파업이기에, 실내가 아닌 강추위와 칼바람 속에서 (릴레이발언을) 흔들림 없이 해냈다는 점에서 더욱 자랑스럽다. 추운 날씨 속에서 릴레이 발언 함께 해준 2200새노조 조합원 분들 감사드리고 사랑하고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릴레이발언을 계기로 KBS를 망쳐온 이인호 이사회 체제를 해체하고 나아가 고대영 퇴진의 길을 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KBS를 어떻게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사랑받는 그런 공영방송으로 다시 세울지 다함께 모여 고민해 바로 세우는 작업에 돌입하겠다”고 덧붙였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15일 보도자료를 내고 고대영 사장 해임절차가 이처럼 진행될 것으로 관측했다. (언론노조 KBS본부 보도자료 캡처)

▲언론노조 KBS본부는 15일 보도자료를 내고 고대영 사장 해임절차가 이처럼 진행될 것으로 관측했다. (언론노조 KBS본부 보도자료 캡처)

새노조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고대영 사장 해임이 내년 1월 중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오는 22일 오전 9시 감사원으로부터 업무추진비 사적유용으로 지적받은 강규형 KBS 이사의 청문을 실시하고 26일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KBS이사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해임건의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강 이사 해임에 따른 보궐이사 선임, 이사장 교체, 사장 해임안 제출 상정 및 의결의 절차가 1월 중 마무리 될 것으로 보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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