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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광고 중단과 ‘언론 길들이기’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2017.10.11 15:42:22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삼성의 최대 위기다.” 9월 말 삼성뇌물사건 항소심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에 만난 삼성 관계자는 탄식을 쏟아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뇌물사건 1심에서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삼성이 경영승계 작업을 하면서 정부 도움을 얻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 수백억원의 뇌물을 주었다고 인정했다.


“삼성 스스로 발등을 찍은 것인데, 누굴 탓하겠나?” 기자의 지적에 삼성 관계자는 “무슨 뜻이냐?”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승계 작업의 핵심으로 꼽힌다. 당시 시장에서는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에 유리한 불공정합병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삼성은 무시했다. 이 부회장이 직접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만나 합병찬성을 부탁할 정도로 총력전을 폈다. 대다수 언론도 삼성에 동조하며 국민연금을 압박했다.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이후 한 경제신문은 사설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당연한 선택이다”고 찬사를 보냈다. 다른 언론도 대부분 비슷했다. 한겨레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이라고 보도한 언론은 드물었다.


하지만 촛불정국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삼성과 박근혜 정부 간 정경유착의 실상과 국민연금 책임자들의 불법행동이 속속 확인되자 국민은 크게 분노했다. 대다수 언론도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으로 국민의 노후자금에 수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불과 1년 반 전 국익을 위해서라도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언론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언론이 합병에 찬성한 것은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삼성이 막대한 광고를 앞세워 ‘언론 길들이기’를 했기 때문 아닌가?” 만약 언론이 삼성 눈치를 보지 않았다면 삼성물산 불공정합병의 위험성을 제대로 지적했을 것이다. 삼성도 다수의 여론을 무시하면서 합병을 강행하는 데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나아가 승계 작업에 대한 도움을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제공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니 이재용 부회장의 실형선고는 삼성의 자승자박이다.” 기자의 설명에 삼성 관계자는 “그렇게 볼 수도 있는가”라며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삼성이 2월 말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이후 일부 언론에 대한 광고 집행을 사실상 중단하고 있는 사실이 기자협회보, 미디어오늘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대상 언론은 한겨레, JTBC, 중앙일보, SBS다. 모두들 촛불정국 이후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삼성의 정경유착 실상을 앞장서 보도한 매체들이다. 삼성이 이들 언론에 사실상 광고를 중단한 이유는 자명하다. 삼성에 불리한 보도를 하면 광고를 주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모든 언론에 보낸 것이다. 그러니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뜻이다.


어떤 언론에 얼마만큼의 광고를 할지 판단하는 것은 기업의 자유다. 하지만 삼성의 광고 중단은 삼성물산 합병사태의 교훈을 망각하고 또 다시 ‘언론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은 진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다. 최악의 헌정유린 사태의 진상파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민주언론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삼성의 눈치를 보며 진실보도를 두려워하는 언론만 살아남는다면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대기업 광고주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민주언론을 만드는 것은 1차적으로 언론인의 책임이다. 하지만 민주언론도 사회와 역사의 산물이다. 국민의 깊은 관심이 없다면 민주언론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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