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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잘려도 괜찮아…김장겸·고대영 끝까지 버티지 못할 것”

5년만에 파업 마주한 ‘2012년 파업 세대’
MBC 이동경·손령 기자, KBS 신지혜·최준혁 기자

김달아 기자2017.09.13 16:19:36


2012년 1월 MBC 총파업 돌입 이틀째, 공채 44기의 첫 출근날이었다. 회사는 텅 비어 있었고 선배들은 일손을 놓은 채 공정방송 사수를 외치고 있었다. 당시 막내였던 44기는 수습 3개월을 마친 직후 파업에 동참했다. 그해 3월 KBS 공채 38기도 탈수습 한 달 만에 파업을 시작했다.


170일(MBC), 95일(KBS) 동안 이어진 파업은 구성원들의 예상과 다르게 패배로 끝났다. 지난 11일 만난 MBC 이동경·손령 기자, KBS 신지혜·최준혁 기자는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자주 한숨을 쉬었고 울컥해 했다.


이들은 입사 후 5년 동안 파업이 남긴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기자라는 자부심보다 ‘기레기’가 익숙한 세대가 됐다. 인터뷰 내내 참담, 무기력, 무능, 원통함, 위기감, 처절, 자기합리화 같이 무거운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우리보다 더 힘들었던 선배, 동료들이 많다”며 미안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입사하자마자 맞닥뜨렸던 2012년 파업 당시엔 부채의식이나 고뇌가 크지 않았다. 최 기자는 “보도국에서 일한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 낙하산 사장을 몰아내야 한다는 원초적인 생각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당연히 이길 줄 알았다. 손 기자는 “신입들은 노조에 가입하면 해고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우리는 잘려도 괜찮다면서 파업에 동참했다”며 “구성원들이 이렇게 나가라고 하는데 사장이 끝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5년이 흘러 다시 연대파업에 돌입한 이들의 심경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부당하게 보도국을 떠나는 선배들을 직접 목격했고 보도참사의 장본인이 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최순실 게이트, 취재 현장에서 자괴감을 느꼈다. 공영방송 기자라는 역할을 할 수 없었고,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선배들도 겪어보지 못할 만큼 심각한 일들이 지난 5년 사이 벌어졌다. 이번에 실패하면 오랜 시간 일어서지 못할 것이란 위기감이 크다.”(신지혜)

-2012년 파업을 중단하고 복귀할 때 어떤 기분이었나.
신지혜=“춤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선배가 ‘공연 못 할 것 같다. 파업 접을 것 같다’고 했다. 충격적이었고 혼란스러웠다. 김인규 사장이 내려오지 않았는데 왜 우리가 파업을 중단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복귀하니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부장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왔어? 일해’라고 하더라. 우리가 싸워온 흔적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최준혁 KBS 기자

최준혁=“한 달 전까지만 해도 파업 기금이 떨어져 간다는 소식에 십시일반 해서 다시 한 번 해보자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런 변화 없이 돌아가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동경=“기자로서 제대로 활동하기 전부터 파업에 참여했는데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보도국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게 속상하고 원통했다. 회사가 파업 중반부터 대체인력을 뽑아왔기 때문에 같이 싸우지 않았던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손령=“예전에 MBC가 파업했을 때 시청자로서 ‘파업이 끝나면 엄청난 보도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런데 막상 파업이 끝난 이후 조간신문에 나온 것만 방송해 실망한 적이 있다. 이번엔 내가 MBC 구성원으로 파업했는데, 시청자들도 그때 나 같은 기분을 느끼겠다고 생각하니까 민망했다.”


2012년 이후 MBC와 KBS는 파업을 주도한 기자, PD들을 해고하고 징계했다.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자사 보도를 비판한 기자들은 인사위에 회부됐고 보도국 밖으로 밀려났다. 빈자리는 다른 이들로 채워졌다. 보도국에 남아 있었던 네 기자는 선배들을 떠나보내며 부채감을 느꼈다. ‘나는 왜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후회도 남았다.


-지난 5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이동경=“인사권을 쥔 사람들은 웃으면서 ‘게시판에 글 써. 인사 내줄게’라는 말을 서슴없이 뱉었다. 그 속에서 나는 왜 맞붙지 못했을까 고민도 많았다. 아직 리포트도 제대로 못 하는데 기회를 잃으면 좋은 날이 온다 해도 제대로 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얼마 전 한 선배가 ‘너희가 나보다 기자를 더 오래 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선 마음이 무거웠다.”


▲손령 MBC 기자

손령=“보도국에 남아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좋은 보도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이런 지시가 내려졌는데 어떻게 막아야 하나, 최대한 내 리포트만큼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 노력했다.”


최준혁=“보도국은 무기력했다. 선배들은 부당한 지시가 있으면 가서 싸우라고 하는데 선배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제가 보기엔 기사가 안 됩니다’라고 몇 번 말해보는 게 최선이었다. 그나마 덜 망가진 보도를 택하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신지혜=“좋은 선배들이 회사를 떠났다. 특히 2014년 12월 심인보 선배가 뉴스타파로 갔을 때 큰 충격이었다. 사회부에서 제 일진이었는데, 선배가 해주던 보석 같은 이야기를 더는 들을 수 없다는 게 멘붕이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일 잘하고 후배들에게 신망받던 선배들이 조직을 등지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이 꺾이는 느낌이었다.”


심인보 기자는 KBS를 떠날 당시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당분간은 KBS에서 변화의 희망을 찾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2012년 이후 또다시 돌입했던 2014년 파업으로 사장은 바뀌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지난 8일 열린 ‘돌마고’ 집회에서 “언론에 또다시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아서 총파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동경=“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진실을 전하지 못했다. 보도자료에 나온 숫자를 전달받아서 읊은 것뿐이었다. 부적절한 구조를 최대 구출 작전인 것처럼 묘사했다. 국민을 속였다. 아버님의 말씀이 비수처럼 꽂혔다.”


▲신지혜 KBS 기자

신지혜=“현장을 취재하면서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줬다. 당시에는 상황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회사 때문에, 정권 때문에 라고 핑계를 댔던 것 같다. 이번 파업을 하면서 스스로도 달라지겠다고 다짐했다.”


최준혁=“참사 당일 제가 했던 ‘육해공 총동원 구조작전’ 리포트가 지금도 적폐보도로 회자된다. 당시 보도지시를 받은 거였다. 공식 자료가 발표되지 않았다고 문제제기하니까 데스크는 ‘지금 이 상황에서 팩트 확인을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그게 부메랑이 돼서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그때 왜 더 반박하지 않고 싸우지 못했는지 자괴감이 든다.”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공영방송 기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최준혁=“게이트가 시작되고 특검이 종료되는 날까지 법조팀에 있었다. 지난해 10월2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비리가 있다면 철저히 수사해서 엄벌하도록 하라’는 워딩이 나오기 전까지 기사를 쓸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낙종의 연속이었다. 발생기사만 처리하는데도 벅찼다. 인력이 추가됐는데 모두 법조를 출입한 적 없는 어린 연차였다. 우리 회사에도 법조 베테랑 선배들 많은데. ‘취재하지 말라는 거구나’ 생각했다. 특종하겠다는 욕심보다 이상한 리포트만 안 나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것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파업에 들어가면서 반성의 글을 써볼까 고민했지만 그것마저도 용기가 없었다.”


-다시 5년 후 보도국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
최준혁=“‘그 선배랑 같이 일했는데 정말 재밌었지 짜릿했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제가 겪어보지 못했던 예전의 KBS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땐 1년차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이길 바란다.”


신지혜=“보도국 문화라는 것 자체가 사라진 것 같다. 열띠게 토론하고 술 마시며 푸는 분위기가 자리 잡아서 후배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저도 그걸 느끼고 싶다. KBS 뉴스룸이란 공간에서 지금 같은 이유로 다시 파업하고 싶지 않다.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한다는 태생적인 한계는 있지만,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조직이 탄탄해졌으면 한다.”


▲이동경 MBC 기자

이동경=“파업이 끝나면 철저하게 반성문을 써야 한다. 그래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예전 MBC는 ‘시키지 않아도 일했고, 치열했다’고 한다. 선배들은 그런 시기를 보내왔다. 지금 있는 후배 3명과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에게 “나는 시키지 않아도 했고 치열했다”고 이야기할 거리가 없다. 파업 이후 보도국은 치열함과 능동성을 자기 경험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


손령=“KBS는 2014년 길환영 사장 해임 이후 사장이 공석이었을 때 보도가 제일 좋았다고 하지 않나. MBC도 마찬가지일 거다. 내부에서도 노력하겠지만 보도국 밖에서 압력을 넣을 수 없는 환경이 되길 바란다. 좋은 보도로 시민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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