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 앗아간 김장겸의 적반하장식 궤변

고용노동부 출석해 조사 받아
"부당 행위 없었다" 혐의 부인
정치권 상대로 구명운동 정황
간부들 보직 던지고 파업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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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겸 MBC 사장이 말문을 열었다. “공영언론의 수장으로서 언론자유와 방송독립을 어떻게 지킬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MBC를 망가뜨린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그가 어이없게도 ‘언론자유, 방송독립’을 입 밖으로 꺼냈다.


5일 오전 9시48분 서울 마포구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출석한 김 사장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준비해온 멘트는 거침없었다. 그는 “취임 6개월밖에 안 된 사장이 정권의 편인, 사실상 무소불위의 언론노조를 상대로 무슨 부당노동행위를 했겠느냐”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모습을 드러낸 김장겸 MBC 사장. MBC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조사 요구에 수차례 불응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 4일만에 자진출석했다. (뉴시스)

MBC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는 고용노동부의 출석 요구에 수차례 불응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 나흘 만에 입을 연 것이다. 김 사장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일 방송의날 시상식에 참석했던 그는 자신의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행사장을 떠난 뒤 두문불출했다. 3일 후 MBC 구성원 2000여명이 총파업을 시작한 날에는 새벽에 기습적으로 출근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을 격려하고 미소 띤 얼굴로 ‘인증샷’을 남겼다.


김 사장은 “당당히 조사받고 가겠다”고 밝혔지만 그를 둘러싼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 언론노조 MBC본부의 신청을 받아들여 한 달 동안 진행한 MBC 특별근로감독 조사 과정에서 최저임금·퇴직금 일부 미지급, 근로계약서 미교부 등 노동법 위반 사항을 추가로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사장의 처벌 수위가 예상보다 높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MBC본부는 5일 “김장겸의 범죄 행각은 6개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장 이전에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시절부터 누적돼 온 것”이라며 “그는 일찌감치 MBC의 실세로 군림하며 수많은 부당노동행위를 실무에서 총괄 지위했다”고 비판했다. 실제 김 사장이 2011년 정치부장부터 2013년 보도국장, 2015년 보도본부장, 2017년 2월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하는 동안 MBC에서 발생한 언론인의 해고, 부당전보 등 중징계 사례만 50여건에 달한다.


▲지난 4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상암 MBC 앞 광장에서 출정식을 열고 김 사장 퇴진과 MBC 정상화를 외치며 이날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뉴시스)

정치권을 상대로 자신의 구명운동을 벌인 정황도 김 사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겨레는 4일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김 사장 쪽이 지난달 국민의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안철수 대표(당시 후보)에게 “혹시 MBC가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연락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MBC 출신인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CPBC 라디오방송 <열린세상 오늘 김성덕입니다>에서 “김 사장이 자유한국당 관계자를 만나서 ‘내가 무너지면 자유한국당도 무너진다. 내가 보수의 마지막 보루다. 그러니까 나를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밝혔다.


서부지청에 나타난 김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가 MBC 안전관리부 직원들에게 제지당한 이동경 MBC 기자는 “김 사장은 노조가 정치권과 유착했다고 말해왔는데 (김 의원의 발언을 보면) 사장이야말로 실제 정치권과 결탁했다는 증거가 나온 것 아닌가”라며 “파업 중이지만 블랙리스트, 사장 면접 과정에서 노조원 배제 발언 등 직접 묻고 싶은 게 많아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말했다.


MBC본부는 김 사장의 퇴진과 MBC 정상화를 위해 총파업이라는 마지막 카드까지 꺼내 든 상황이다. 2012년 170일간의 파업 이후 5년만이다. 앞서 지난달 24~29일 치러진 조합원 투표에서 역대 최고의 찬성률(93.2%)로 파업이 가결됐다.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이 4일 파업 출정식에서 “1987년 노조 결성 이후 하락했던 조합원 수가 최전성기의 2000명을 돌파했다”고 밝힐 만큼 이번 파업의 기세가 뜨겁다.


사측은 “노조가 정치파업을 하고 있다. 정파(방송송출 중단)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업무복귀를 종용하고 있지만 김 사장이 임명한 간부들마저 보직을 던지고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체제의 핵심 인사인 법무실장이 사표를 냈다가 반려되는 등 현재까지 MBC 본사 소속 전체 보직자 160명(국장 33명, 부국장 34명, 부장 93명) 가운데 60명이 사퇴했거나 의사를 밝혔다. MBC본부 관계자는 “보직사퇴 인원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내 분위기에서 사실상 김 사장을 자리에 앉힌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이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재판을 받는 것도 그의 입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5일 김 사장과 함께 김재철 전 MBC 사장까지 조사를 마친 서부지청은 곧 MBC 부당노동행위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고 혐의가 드러난 관련자들을 검찰에 기소·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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