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자들이 재교육 원하지만 시스템은 '작동 불능'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3부)다시 저널리즘으로 가는 길 ④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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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성 절감하지만 현실은…
“수습교육이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실무 위주 도제식 교육에 교육여건도 회사따라 천차만별

그나마 있는 교육은…
전문성 심화 프로그램 부족하고 현장과 동떨어진 이론중심 한계

외부기관 교육땐 회사·선배 눈치

대안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미래투자라는 사측 인식전환 필요


“회사에서는 현장에 바로 투입하려고만 하지 좋은 기자로 키우려하지 않아요. 그렇게 현장에서만 구르다보면 더 좋은 기사를 쓰려는 고민보다 현실에 안주하려 하게 되고, 결국 기자가 아닌 회사원이 되어 가죠. 그런 점에서 기자 정신을 되새기는, 더 이상 회사원이 되지 않게끔 하는 재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통신사 3년차 A기자)


“요즘은 언론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고 독자들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데 여전히 기사작성이나 취재 등 기술적인 면에선 예전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사 작성법, 취재방법을 배우고 싶어요.” (종합일간지 4년차 B기자)


“독자들이 기자보다 더 똑똑해지고 있는 시대에 기자의 전문성은 필수적인 요소가 된 것 같아요.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언론 불신에도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기자의 전문성이 독자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도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변 환경을 보면 기자 전문성에 거의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아요. 전문성이 강화되면 한국 언론이 당면한 위기도 극복할 수 있고, 공동체에도 도움이 될 텐데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종합일간지 10년차 C기자)



기자 재교육은 단순히 기자의 복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공공이익의 감시자로서, 공정한 중재자로서, 공동체 규범의 수호자로서 언론이, 기자가 존재하기에 이들을 재교육하는 것은 전체 사회를 위한 일이 된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사회가 얼마나 분열과 갈등을 겪는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언론에 대한 관심과 재교육 투자는 상당히 취약한 상황이다. 10년도 더 전부터 기자들이 재교육을 갈망할 정도로 ‘기자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닌데,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한국의 언론인 2013’을 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응답은 항상 96%를 넘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실제로 재교육을 받은 기자는 2013년에야 3명 중 1명 수준이었다. 이는 기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재교육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재교육 시스템의 부재
국내 언론 환경을 들여다보면 기자들이 얼마나 재교육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수습기자 시절 받은 도제식 교육 이후엔 마땅한 교육 프로그램이 전무하고, 연차마다 부서마다 단계별 전문 교육 프로그램이 있기는커녕 대부분 선임에 의한 경험과 실무의 도제식 교육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재교육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언론사 중 기자들을 위한 전문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극히 일부에 그친다.


기자협회보가 언론사별로 재교육 프로그램 현황을 조사한 결과 KBS MBC SBS 등 방송사에선 재교육 프로그램이 잘 정착돼 있었다. SBS는 직위별 집합교육을 비롯해 직위에 관계없이 참석할 수 있는 격월 특강과 대학원 지원 제도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KBS 역시 2박3일 저널리즘 스쿨 과정을 비롯해 저널리즘, 방송기술과 관련된 온라인 강의를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일부 신문사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회사 차원에서 기자들의 재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인문교양과 외국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를 마련해둔 것은 물론 사설 학원이나 사내 스터디 모임 비용 등을 지원해 기자들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나 경향신문 국민일보 서울신문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언론사에선 기자 재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 국민일보의 경우 자체 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물론 온라인 교육이나 사설 학원 비용 지원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사내 동아리 활동 지원도 멤버가 15명 이상이 돼야 모임별로 13만원이 지원되는 수준이었다.


서울신문 역시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워크넷에서 강좌를 들을 수 있는 것 빼곤 별도의 재교육 제도가 없었다. 서울신문 D기자는 “워크넷에서 강의 듣는 건 반기별로 수강생을 모집해 자동신청을 하는 건데 고용노동부에서 돈이 나오는 거라 재교육 프로그램이라고 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그 외 자체적인 재교육 프로그램은 없다”고 말했다.


참여율도 저조했다. 서울신문에선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6개월간 워크넷을 통해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한 사람이 편집국에서 단 23명에 그쳤다. ‘휴넷’이라는 교육 업체와 제휴를 맺어 온라인 강의비를 보조해주는 경향신문에서도 올해 들어 한 달 평균 23명이 이 사이트에 수강신청을 했다. 전체 직원 491명 중 4.6%밖에 안 되는 비율이다.


경향신문 E기자는 “기자에 특화된 과목이 아니라 수강 비율이 낮다”며 “디지털 콘텐츠 제작 같은 프로그램은 회사에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는다. 매번 인사철 소원수리 때마다 재교육에 대한 요청이 있을 정도로 기자들의 재교육 열망은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교육 받을 때도 ‘눈치 보기’
마땅한 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언론사에선 한국언론진흥재단이나 방송기자연합회 같이 국내 언론 유관기관 등 외부 기관에 재교육을 의존한다. 오마이뉴스 F기자는 “자체 교육 프로그램이 없어서 그런지 외부 기관 교육을 받겠다고 하면 잘 보내준다. 필요할 때 신청해서 가는 건 눈치 안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기자들은 외부 기관에서 교육 받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한다고 했다.


주 요인은 ‘과다한 업무량’이었다. 업무가 많은 탓에 따로 시간을 빼 외부 기관 교육에 참석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동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인 2013’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1.7%가 ‘기회가 있어도 업무가 많아서 참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경제지 G기자는 “언론재단 교육에 관심이 많은데 주로 근무 시간에 교육이 이뤄진다”며 “출입처 일정을 빼거나 다른 기자에게 부탁하고 교육에 참여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D기자도 “외부 기관 교육은 아무나 듣는 게 아니다. 10년차 정도는 돼야 교육 받을 여유가 있다”며 “젊은 기자들은 업무부담이 커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런 양상은 지역으로 갈수록 심화되는 모양새다. 지역일간지 H기자는 “신입기자 교육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회사 차원에서도 이후 별다른 교육이 없었고 언론재단에서 하는 지역 순회 교육조차 바쁜 일정 탓에 참석해 본 적이 없다”며 “지역 기자들에게는 재교육이 언감생심”이라고 했다.


부산일보 I기자는 “IRE 컨퍼런스 등에 참가하고 싶어 알아봤는데 사전 교육이 몇 주에 걸쳐 화·목요일에 진행되더라. 적어도 목·금요일이라도 되면 양해를 구하고서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정 조정이 불가능하다고 해 결국엔 가지 못 했다”며 “지역 언론사에서 일하는 입장에선 여러 재교육 기회가 배제되는 것 같아 갑갑함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재교육 기회를 얻어도 회사 ‘눈치’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는 기자들이 허다하다. 종합일간지 J기자는 “교육은 물론이고 대학원 다니는 것도 눈치 주는 데스크들이 많다”며 “업무에 도움을 주는 공부인데도 ‘그 시간에 기사를 쓰지 왜 공부를 하냐’고 대놓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대학원 다니면서도 숨기는 기자들이 많다”고 했다.

현실성·적합성 떨어지는 재교육
문제는 또 있다. 재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기에 적합한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재교육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언론재단 프로그램조차 대부분 몇 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교육이 이루어져 관련 분야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2014년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한 ‘저널리즘의 신뢰 회복: 언론인 재교육 시스템 구축과 비영리 저널리즘 활성화 방안’ 세미나에서도 이런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발제자로 나선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익재단에서 시행하는 재교육은 교육과정이 단기에 그치는 것은 물론 전문성 심화 프로그램이 부재하다”며 “대학에서 진행하는 재교육 프로그램도 현장과 괴리가 크고 이론 중심 교육이라는 한계가 있다. 개별 언론사가 시행하는 프로그램은 협소한 강사진, 혹은 기업 논리에 따른 저널리즘 공익성 훼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활용 등 최신 트렌드 교육은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종합일간지 K기자는 “언론재단에서 데이터 저널리즘을 잘 배우고 와도 당장 언론사에서 쓰는 시스템은 오래된 것이다 보니 적용을 못 한다”며 “배운 것과 현실이 연계가 안 되는 거다. 결국 한 번 써먹지 못한 채 몇 달을 보내다 그대로 까먹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저널리즘 윤리와 관련된 별도의 재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아쉬운 요인 중 하나다. H기자는 “재교육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새로운 각성의 기회이기도 하지 않나. 좀 더 정신적이고 의식적인 교육을 통해 저널리즘을 잃지 않는 기자를 만들어야 하는 것 같다”면서 “그런데 별도의 저널리즘 윤리 관련 교육이 있는 걸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안은 어디에 있나
“재교육은 기자 혼자 발품 팔아서 될 일이 아니다. 적절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종합일간지 L기자는 기자 재교육의 대안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회사나 언론 유관기관이 마련해야 한다”며 “그런 교육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환경도 조성돼야 재교육이 좀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방송사 M기자도 “지역의 경우 언론재단에서 무슨 교육을 하는지조차 모른다. 홍보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며 “회사 차원에서도 교육을 마냥 노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개인과 조직의 미래 역량을 위한 투자라 생각하는 등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장기 프로그램 마련과 재교육에 관한 회사의 인식 전환은 기자들에게 절실한 문제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언론재단의 중기 전문화 교육과정인 KPF 디플로마에 참여했던 N기자는 그 두 가지 면에서 수혜를 입었다고 볼 수 있는 사례다.


N기자는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재교육을 권장했고, 마침 적절한 과정이 있어 신청하게 됐다”며 “국내 심층교육과 해외 탐방교육을 거치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기자들끼리 자기 고민을 나누고 새로운 생각들을 접하는 등 많은 것을 배웠다. 교육 이후에도 관심 있게 관련 분야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아예 장기적인 재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언론재단에서 시도하고 있는 저널리즘 스쿨 설립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언론재단은 2014년 ‘저널리즘 스쿨 설립을 위한 계획 수립 연구’ 보고서를 발간하며 현업 언론인에 특화된 재교육 과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올해 초엔 이를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안을 만들어 2018년 국고 예산 일부를 지원받기 위한 사업 심사를 받았지만 문체부 내의 국고보조사업 적격성심사에서 탈락했다. 언론재단에선 법적인 문제 등을 푸는 게 쉽지 않아 기존의 연수 프로그램을 확대하면서 장기적으로 사업을 풀어가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재단 한 관계자는 “현재 언론 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축은 저널리즘에 있다”며 “저널리즘은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부분도 포함되기 때문에 저널리즘 스쿨 같은 체계화된 교육 과정이 기자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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