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없는 소비자 불신, 고민하는 진보언론

'한경오' 프레임 급격히 대두…독자와 소통에서 답 찾아야

“진보언론이 문재인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 것 같아 두렵다.” 최근 불거진 진보언론 비판 여론에 공감하고 있다는 20대 임용고시 준비생은 “일부 기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진보언론이 어용 언론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에 입각해 비판할 지점만 비판했으면 좋겠다”며 “사소한 것들로 문재인 정부를 깎아내리고 이를 비판하는 집단을 ‘문빠’로 매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이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진보언론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고, 대선 기간에도 문재인을 지나치게 비판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와 함께 최근 불거진 사태에서 드러난 일부 기자들의 권위주의적, 계몽주의적 태도에도 큰 반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에는 최근 연달아 트윗이나 보도, 표지 사진 등을 놓고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일명 ‘한경오’ 프레임이 대두되며 비판 여론이 인 것이다. 지난 12일엔 경향신문 트위터 계정이 문 대통령의 하루를 설명하며 ‘밥도 혼자 퍼서 먹었다’고 표현해 문제가 됐고, 13일엔 오마이뉴스의 대통령 부부 이사 관련 기사에서 김정숙‘씨’ 호칭이 도마에 올랐다.


▲최근 일명 '한경오' 프레임이 대두되며 트윗이나 보도, 표지 사진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사진은 경향신문의 트윗(왼쪽부터 시계방향), 길윤형 한겨레21 편집장의 글, 오마이뉴스의 대통령 부부 이사 관련 기사.

14일엔 한겨레21 표지 사진이 논란이 됐다. 대선 기간 문 대통령 표지 사진을 실은 적이 없던 한겨레21이 ‘마지못해 권위주의적으로 보이는’ 문 대통령 사진을 실었다는 것이 비판의 이유였다. 거기에 직전 한겨레21 편집장이었던 안수찬 기자가 페이스북에 ‘덤벼라 문빠들’이라는 글을 남겨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다. 


전례가 없는 독자들의 집단행동에 진보언론은 고민에 빠졌다. 소통 확대 등 대안 마련에 나섰지만 여의치가 않은 형국이다. ‘노무현에 대한 트라우마’와 함께 ‘소비자로서의 불만’이 분출된 독자들은 진보언론에 대한 불신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절독운동, 광고주 불매운동 움직임에 일부 커뮤니티에선 한겨레의 지분을 장악해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를 해임하고 데스크를 비롯해 ‘기레기’들을 청소한 후 정론지를 만들자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왔다.


언론사들은 논란이 거세지자 해당 기자를 비롯해 회사 명의로 사과문을 올렸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6일 해명글을 올리고 그래도 비판이 가라앉지 않자 17일 사과문을 썼다. 한겨레도 16일 사과문을 올리는 한편 이제훈 편집국장과 길윤형 한겨레21 편집장이 각각 15일과 22일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 분발하겠다”는 글을 전했다.


▲길윤형 한겨레21 편집장의 글

그러나 이번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큰 불은 진화되는 양상이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들이 제목에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문’이라고만 표현해도 문제로 삼거나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기를 맞아 다시 서거 당시의 진보언론 보도들을 끄집어내 비판하는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자들의 엘리트주의 적인 면모도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주장 모두를 수용할 수는 없겠지만 “독자와 싸울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결국 진보언론이 나서서 변화된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 기자였던 안치용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언론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권력과 거리두기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독자가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싸워야 할 건 싸워야 한다”면서도 “다만 진보언론이든, 보수언론이든, 결국은 그들이 권력화하며 스스로 기득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게 본질적 문제점이다. 시대정신이 과거엔 언론계에 종사하는 일부 지식인들에게 계시로 나타났다면, 지금은 민주시민들과 대화하고 토론해 부단하게 진화하는 ‘소통의 거버넌스’로 나타나게 됐다”고 말했다.


때문에 독자들과의 소통을 좀 더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시됐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외국 진보언론의 돌파구는 독자들의 참여공간을 늘리는 것이다. 한겨레의 ‘왜냐면’ 같은 코너를 더욱 넓혀 자사 비판도 실어주는 등 밖의 공격을 내부화해 오히려 이들을 진성 독자로 강화시켜야 한다”며 “SNS와 공존·공생할 수 있는 열린 편집과, 소통하는 기자들의 자세가 정착되지 않으면 진보언론은 이 정부 내내 독자들에게 시달리면서 위상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도 “권력은 이미 개인에게 넘어갔고 저널리즘을 대하는 자세나 콘텐츠 만드는 방식이 모두 바뀌어야 하는 사회가 됐다”며 “기자들도 독자와의 연결성 속에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언론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성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프레시안 기자였던 김하영 이야기경영연구소 편집장은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 결말을 맞으면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공과 과의 평가가 제대로 안 됐듯이 진보언론에 대해서도 정부 포지션이 바뀌었을 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성찰이 잘 안 된 것 같다”며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이참에 진보언론 구성원들이 과거 보도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등을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겨레는 이번 사태와 관련, 23일 공지를 띄우고 관련 TF를 만들어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점검키로 했다. 김진철 한겨레 미래전략부장은 “TF를 통해 대사회적 소통, 독자들과의 소통이 미흡했다는 반성 차원에서 독자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재정립할 것”이라며 “또 기존의 진보언론, 민주언론 등의 포지셔닝으로는 아무리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기 때문에 앞으로 한겨레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지 등을 TF를 통해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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