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기자를 보고 싶다

[컴퓨터를 켜며] 김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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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 맞죠?” 19대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던 지난 9일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기자가 아닌 이들이 협회에 전화하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다. 제보하고 싶거나 기자를 비판 혹은 비난하려거나.


자신을 유치원 교사로 소개한 여성은 “너무 화나는 일을 겪었다”며 기자협회에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기자에게 불만이 있는 건가?’ 수화기를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예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연은 이랬다. 교사가 다니는 유치원에 한 유아 교재개발 업체가 찾아와 홍보용 교재를 내밀었다. 그는 동료 교사들과 둘러앉아 교재를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한국 기자를 폄하하는 영상으로 수업해야 한대요. 제대로 교육하지 않고, 배우지 못하면 기자처럼 한심한 사람이 된다면서요. 그런데 이렇게 가르치면 아직 기자라는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 있거든요. 교사로서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기자협회가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문제의 영상은 온라인에서 이른바 ‘한국 기자의 국제적 망신’으로도 불린다. 지난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회의를 주최한 데 대해 감사를 표하며 마지막 질문 기회를 한국 기자들에게 줬다. 하지만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몇 차례 더 질문을 요청했지만 침묵은 계속됐다. 결국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 넘어갔다.

이 사건으로 한국 기자는 ‘질문하지 않는다’는 오명을 썼다. ‘한국 기자가 많지 않았다’ ‘예정에 없는 질문 기회였다’ 등 여러 변명이 나왔으나 비판 여론을 덮진 못했다. 지금도 그날 일은 한국식 교육의 부정적 사례로 종종 등장한다.

자업자득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우리 기자들 스스로 편견과 굴욕을 만들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기자들이 보여준 모습이 대표적이다. 질문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질문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청와대가 짜놓은 기자회견 각본 속에서 기자의 의무이자 시민의 알 권리를 외면했다. 여론의 뭇매에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만 댔다.

이제 잃어버린 질문권을 찾을 때다. 우리는 매일 취재원을 만나 질문을 하고 또 하지 않는가.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도 그렇게 하면 된다. 첫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달게 받을 수 있다. 이번엔 짜인 대본이나 정해진 시간, 자기 할 말만 하고 홱 돌아서는 사람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질문권을 손에 쥘 기회는 오롯이 기자들에게 달려 있다. 더는 환경을 탓할 수 없다. 대선 다음날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느낀 어색함이 반가운 이유다. 하루아침에 180도 달라진 기자회견 분위기에서 희망을 봤다면 과한 긍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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