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위에 선 새 정권의 법인세 인상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신문방송학 박사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

법인세의 기원은 17세기 제국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업 활동은 국가 권력의 허가 아래 독점적 사업을 영위하는 특권이었다. 예를 들어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격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정부 특허를 통해 무역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이에 따른 급부인 ‘허가세’나 ‘특권세’는 현대 법인세의 근거가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완전경쟁 환경에 놓여 있는 현 기업 상황에서 법인세는 애당초 당위성을 갖기 어렵다.


법인이 과세 대상인지 여부는 또 다른 논란거리다. 법인 이윤은 장기적으로 모두 주주들에게 귀속된다. 법인은 자연인이 아니며 사실상 수입배분의 통로로 활용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소위 ‘법인의제설’이다. 결국 배당분은 법인 단계에서 한번 법인세를 부과받고, 개인(주주) 단계에서 또다시 소득세가 징수된다. 재정학에서 ‘이중 과세’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법인세 인상이 예고됐다. 고용과 복지정책 재원 마련을 위해 유력 대선후보들이 법인세 인상을 핵심 공약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법인세 인상의 명분은 ‘조세 형평’이다. 조세 형평의 배경에는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자리 잡고 있다. 회사는 대주주의 조세도피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법인세와 소득세 간 최고세율 차이가 크기 때문에 대주주는 이익을 기업 내부에 유보한 채 실질적 재산권을 행사하며 부를 증식하고 있다는 견해다.


하지만 법인세야 말로 그 자체로 조세 형평성에 직접 반하며, 가장 비효율적인 세목이다. 이중과세 문제가 대표적이다. 조세 분야에서 수직적 공정의 실현은 수평적 공정을 전제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세목의 공정성을 확보한 뒤 소득 간 부담의 형평을 조정하는 게 조세의 기본이요 원칙이다.


조세 형평은 명분일 뿐 인상론의 본질은 ‘조세 저항’에 있다. 복지나 고용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선 재원 확보가 필수다. 부가가치세나 소득세는 올리기 어렵다. 국민들의 저항 때문이다. 그래서 법인세가 ‘동네북’처럼 등장한다. 법인에게는 투표권이나 집회·결사의 자유가 없어서다. 이런 맥락에서 법인세 인상론은 행정 편의적 발상이며 포퓰리즘의 또 다른 얼굴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법인세 인상의 부작용이 의외로 클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법인세 인상 부담의 대부분은 근로자(노동)나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게 정설이다. ‘법인세 인상→법인부문의 자본 수익률 감소→자본 해외유출→국내 자본량 감소→자본의 상대가격 상승→노동에 대한 수요 감소’란 악순환 고리를 통해서다. 부가세나 소득세처럼 직접적이 아니라 법인을 통한 간접적인 효과란 사실만 다를 뿐이다. 이 경우 법인세 인상 부담을 대주주에게 집중한다는 당초 ‘조세 형평’의 목표는 실종되고 만다. 오히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국내 상품과 수입 상품 간에 완전한 대체성이 없다면 자본은 법인세 부담을 전가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최근 국제적 추세 속에 논거를 잃어가고 있다. 세계 각국이 법인 세율을 경쟁적으로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자본시장에서 더 많은 자본을 유치해 고용을 늘리고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각국의 노력이다.


이처럼 법인세제 개편은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과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손쉽다고 곶감 빼먹듯 쓸 카드는 아니다. 새 정부가 법인세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