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 400억원 빚진 북한, 어떻게 갚을까?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YTN 기자·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 교육 석사전공

▲최원석 YTN 기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북한은 핀란드에 갚아야 할 빚이 수백억원이다. 40년 된 거래대금이다. 1974년 핀란드로부터 펄프와 제지 생산설비를 사고는 비용을 절반도 내지 않았다. 핀란드 정부에 2600만 유로, 민간 기업에 갚아야 할 채무가 600만 유로 규모다. 현재 한화 400억원 가량이다.


최근 핀란드 공영방송 윌레(YLE)는 “북한이 핀란드에 진 빚을 잊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평양에서 북한 외무성 북유럽 대표 박윤식을 인터뷰했다. 박윤식은 북한 내 북유럽 관계를 담당하는 최고위직 공무원이다. 박윤식은 한국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핀란드가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주길 바란다”며 “양국이 협력하면 해결책을 찾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북한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주장도 했다. 원론적인 답변이었지만 핀란드 윌레 입장에선 굉장히 드문 인터뷰였다. 북한이 1998년 헬싱키에 있던 대사관을 폐쇄한 이후 줄곧 중국을 통한 간접적인 접촉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만 핀란드는 북한의 기약 없는 약속에 크게 기대하진 않는 모양새다. 윌레는 정부 자료를 토대로 북한이 40년이나 미룬 수백억원대 채무를 값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1977년 11월 핀란드는 평양에 무역사절단을 보내 북한으로부터 대금을 일부라도 받아내려 했지만, 북한의 지급거부로 허탕만 치고 돌아온 경험이 있다. 게다가 1990년대 대기근을 거친 뒤 북한 경제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만큼, 빚을 받아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핀란드 정부의 판단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 같은 채무관계 때문일까. 핀란드는 실질적인 무역거래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UN을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이어가고 있다. 이를테면 지난 2013년부터 평안북도 정주 지역 농장에 감자 생산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감자는 핀란드인의 주식재료다. 핀란드는 이 사업을 통해 북한 주민 19만명에게 식량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부 핀란드인은 북한이 또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감자나 열심히 키우라”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사실 액수로 치면 이웃나라 스웨덴이 북한으로부터 못 받은 돈은 훨씬 더 많다. 1970년대 초 핀란드와 비슷한 시기에 북한과 교류를 시작한 스웨덴은 1974년 전후 ‘볼보’ 승용차 1000여 대를 판매하고도 돈을 받지 못했다. 지난 5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당시 6억 스웨덴 크로네였던 미지급 대금이 이자와 물가상승으로 27억 스웨덴 크로네(한화 3477억원)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핀란드 윌레와 더불어 스웨덴 공영방송 SVT도 북한 측에 과거 채무에 대해 공식적으로 질문했고 “채무상환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는 답변을 얻었다는 뉴스를 전했다.


북한이 북유럽 국가들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건 ‘무단 취식’ 뿐만이 아니다. 북한은 외교행낭을 동원한 ‘밀수 외화벌이’로도 악명이 높다. 1976년 10월 북한 외교관들은 북유럽에서 마약과 보드카, 담배를 대규모로 밀수하다 걸린 일이 있다. 당시 국내 언론사들도 특파원들을 헬싱키에 파견해 취재할 정도로 시끄러웠던 스캔들이다.


예전기사를 찾아보니 경향신문 노영일 기자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만 마약 147kg, 밀수 담배 190만 개비와 술 4900병이 적발됐다”고, 동아일보 김일수 기자는 “동베를린주재 북한대사관 김학철 대좌가 핀란드인 마약 밀수단 거물인 ‘헤이키 히레’와 접선해 각국에 마약을 공급했다고 한다”며 현지 소식을 전했다.


이 일로 당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5개국 담당 북한 외교관과 직원 17명이 집단으로 추방당했다. 유례없는 일이었지만 북유럽 국가들은 이런 큰 사고를 친 북한과 무작정 교류를 끊을 수 없었다. 앞서 말한 1970년대 중반 거액의 채무관계 때문이었다.


지난 2009년에도 러시아 주재 북한 외무성 직원 두 명이 핀란드를 거쳐 스웨덴으로 담배를 밀수하려다 붙잡혔다. 북한은 밀수라도 해서 빚을 꼭 갚으려는 걸까. 대북제재로 부족해진 외화벌이를 북유럽을 통해 다시 해보려 한다는 분석도 가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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