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언론농단 차고 넘친다

재임 내내 언론과 불통관계
사사건건 공영방송 보도개입
비판언론에 무차별 소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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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은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습니다.”


지난 10일 탄핵심판 선고에서 결정문을 읽은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세 차례에 걸쳐 ‘언론’이라는 글자를 입에 담았다. 그 중 두 번은 재임기간 언론을 농단했다는 내용이었고, 한 번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언론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데서 나왔다.


세계일보 사장 해임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부족했지만 언론 자유를 침해한 다른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박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언론과 ‘불통’했고, 사사건건 언론에 ‘개입’했으며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사와 기자는 소송 등으로 ‘통제’했다. 그게 부메랑이 되어 박 전 대통령은 언론 보도를 계기로 탄핵됐다. 기실 박 전 대통령은 언론농단만으로도 이미 탄핵 감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언론과 ‘불통’했고, 사사건건 언론에 ‘개입’했으며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사와 기자는 소송 등으로 ‘통제’했다. 사진은 지난 1월25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정규재TV’ 운영자인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 (뉴시스)


불통 한때 박 전 대통령 하면 가장 먼 저 떠오르는 단어는 ‘불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한 지 316일 만에 첫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 고작 다섯 차례의 대국민담화를 가졌다.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적은 횟수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할 때마다 질문지 사전 유출, 전년도 내용 재탕 등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첫 번째 신년기자회견에선 시종일관 머리를 숙여가며 참모진이 써준 대본을 읽었고, 매번 짜 맞추기식 질문과 답변으로 일방적 담화를 진행했으며 정작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각종 현안에 대해선 회피했다.


게이트가 터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박 전 대통령은 세 차례 대국민담화를 가졌지만 기자들의 질의를 허용하지 않았고 지난 1월엔 급작스럽게 출입기자 간담회를 하겠다고 통보하더니 기자들의 노트북과 카메라 소지는 금지했다. 또 지난 1월25일엔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언론 인터뷰를 보수 성향의 ‘정규재TV’와 단독으로 하며 시종일관 변명의 말을 쏟아내고 게이트의 본질을 흐렸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은 해외 순방 등을 통해 프로파간다를 쏟아냈을 뿐 진실은 말하지 않았다”며 “언론을 통해 여론을 청취하기보다 자기 의사만을 고집하려 했다”고 말했다.

개입 “방송의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이루겠다”며 후보 시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 전 대통령은 막상 당선되자 노골적으로 공영방송에 개입했다. 지난해 11월17일 전국언론노조가 공개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에는 청와대가 KBS 이사와 사장 임명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메모들이 다수 발견됐다. 이 외에도 박 전 대통령은 방송문화진흥회와 KBS이사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대다수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극우 뉴라이트나 선거캠프 인사를 임명했고,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등 민간영역인 유료방송에도 ‘낙하산’을 내려 보냈다.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CNN 캡처)

박 전 대통령은 인사에 그치지 않고 청와대 비서관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보도에 개입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은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기사를 빼라 넣어라 지시했고, 지난해 국정조사에선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청와대의 보도 자제·회유 압력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양문석 전 방통위 상임위원도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을 통해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KBS·MBC·YTN·연합뉴스 등에 숱하게 전화해 보도 방향과 기사 항의, 인사개입, 심지어 ‘패널 첨삭’ 등의 흔적을 덕지덕지 남겼다”고 폭로했다.

통제 박 전 대통령은 개입에 그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언론사를 통제하려 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시사저널과 일요신문을 언급하며 “끝까지 밝혀내야. 본때를 보여야. 열성과 근성으로 발본색원”하라는 주문을 했다고 쓰여 있다. 비망록에는 JTBC 심의제재, 채널A 프로그램 폐지, YTN 해직자 사찰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


실제 박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와 청와대 관계자를 비판하는 기사에는 명예훼손에 따른 민·형사상 고소·고발이 꾸준히 이어졌다. 본보가 지난해 11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청와대가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건수는 당시 언론에 알려진 것만 17건이었다.


특히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언론엔 보복이 잇따랐다. 2014년 정유라씨 아시안 게임 선발 특혜를 보도한 시사저널은 세무조사는 물론 가판 판매망까지 경찰수사를 받았고 그 해 11월 십상시 국정 농단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는 통일교 재단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는 “박근혜라는 사람은 언론 자유의 개념이 없다. 불통과 개입, 통제에서 보듯이 언론이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면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 자유’를 넘어서서 ‘언론 독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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