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PD가 징역형 구형받은 까닭은

사장 출근저지 시위 이유
징역 6월~1년6개월 구형
잡포스팅 비매칭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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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감이 교차했다. 우선 가족에게 뭐라 얘기하지? 길환영과 고대영 사장은 얼마나 좋아할까…. 최후진술을 하는 동안, 3년 전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권오훈 전 언론노조 KBS본부장이 지난달 28일 KBS 양대노조의 총파업 현장에서 말한 내용이다.


지난 2014년 5월 당시 김시곤 보도국장은 청와대가 KBS에 압력을 행사했고, 길환영 사장이 보도에 사사건건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KBS 구성원들은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출근저지 시위 등을 벌였다. 보도본부 부장단의 일괄 사퇴, KBS기자협회의 제작거부 등 사장 퇴진 움직임이 잇따라 나오던 시기였다.


▲검찰이 지난 2014년 5월 길환영 전 KBS사장 퇴진 투쟁에 나섰던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에게 지난달 20일 1심 결심 공판에서 징역 6월~1년6월까지 구형했다. 사진은 징역형을 구형받은 (왼쪽부터) 김성일, 정홍규, 함철, 권오훈, 이진성, 최선욱, 강나루, 이경호 KBS 구성원들의 모습.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지난달 2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권 전 본부장과 함철 부위원장 등 8명에게 검찰이 징역 6월에서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업무방해와 재물손괴 등 혐의였다. 2014년 5월19일 당시 길환영 사장의 출근을 막고, 이 과정에서 승용차를 손괴한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선고에서 금고형 이상을 받을 경우 이들은 KBS에서 면직 처분된다. 오는 23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함철 전 부위원장은 3일 기자협회보와 통화에서 “검찰이 공영방송사를 둘러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며 “언론탄압과 무분별한 장악이 탄핵까지 이른 것인데 이를 인정치 않고 불가피한 불상사에만 주목해 구형을 한 건 시대에 뒤떨어지고 사회정의에도 위반된다”고 비판했다.


권 전 본부장은 “청와대와 KBS의 관계, 거기서 (보도통제 등에) 핵심 역할을 한 사장 퇴진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 상황이었다”며 “이번 구형이 지난 10년 간 KBS본부 공정방송 투쟁의 정당성을 결코 꺾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징역형을 받은 KBS 한 구성원은 “방법적으론 자중할 필요가 있었지만 큰 틀에서 나섰던 행동은 후회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도) 같이 할 거 같다”며 “(항소를 거듭하면) 결국 몇 년은 걸리는 힘든 시간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KBS 구성원은 “검사가 구형과정에서 ‘회사가 이례적으로 엄벌을 요구한다’고 말했다”면서 “현 경영진을 겨냥한 노조활동이 많아 지금 경영진 입장에서도 내심 본보기처럼 고려하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했다.


아울러 지난 2월 논란 속에 본격 시행에 들어간 ‘잡포스팅’을 두고도 기자·PD 등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KBS 관계자에 따르면 최종적으로 매칭이 되지 못한 취재기자와 PD의 수는 각 3명씩이다. 이들은 6일부터 기존 소속 부서에서 제외돼 2주간 연수원에서 ‘역량강화’ 교육을 받는다. 이후 회사 직권 등의 방식으로 원하지 않는 부서, 지역에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고대영 KBS사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잡포스팅’ 시행과 관련 “직원들이 도전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개발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내부에서는 여전히 문제제기가 나온다. 특히 이번 ‘역량강화’ 교육에는 26년차 홍 모 기자가 포함되면서 취지에 대한 의구심까지 나온다. 그는 여러 단체로부터 기자상만 20번 넘게 받은 베테랑이다. 홍 기자는 지난달 21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암만 생각해봐도 제가 저성과자였던 부분을 찾기 힘들었다”며 “서로 다른 생각들이 모여 더 큰 경쟁력을 만드는 곳이 언론사라 믿었는데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량을 키워서 보내는 부서로 가서 열심히 일하겠다…제가 생각이 달라질 것 같진 않아서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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