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떠나지만 환경전문기자의 길 계속 걷겠다"

32년 기자생활 정년퇴임 조홍섭 한겨레 기자

  • 페이스북
  • 트위치

▲지난달 28일 정년퇴임한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기자의 32년은 한국 환경운동의 32년이다.’ 지난달 28일 정년퇴임한 그를 한겨레는 이렇게 지칭했다. 그는 1985년 과학동아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1988년 한겨레 창간멤버로 합류한 후 줄곧 환경·과학 분야의 취재기자로 활동한 환경전문기자 1세대다.


환경운동의 역사적 순간에 항상 있었다고 할 정도로 그는 수많은 현장을 뛰어다녔다. 기억에 남는 취재 경험을 물을 때도 “두 가지 정도가 생각난다”고 하더니 곧 환경운동의 역사를 줄줄이 읊었다. 화성 매향리 미군 공군사격장 문제를 시작으로 공해문제, 비행기 소음, 새만금 간척사업, 원전개발 사업, 핵폐기물 처분, 4대강 사업 등등 그는 생각나지 않는 취재현장이 없다고 했다. 또 그만큼 가슴 아픈 현장이 많았다고 했다.


“평창 올림픽을 위해 한창 산악개발을 했을 때 가리왕산에 현장 조사를 나간 적이 있어요. 알파인 스키장 건설 예정지라 곧 파괴될 곳이었는데 어느 나무가 어떤 열매를 맺는지 그런 걸 조사하고 있었죠. 그런데 작은 개울가 옆에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들메나무를 발견한 겁니다. 세 아름도 더 돼 보이는 엄청난 나무였죠. 후에 그곳을 한 번 더 갔는데 그 나무가 어디 있는지 잘 못 찾겠더라고요. 숲의 기상이 대단했는데 나무들이 다 잘려서 보잘 것 없어졌기 때문이었죠. 겨우 그 나무를 찾아 같이 간 사람들과 함께 위령제를 올렸습니다. 비단 여기뿐만 아니라 풍요로웠던 갯벌, 아름다웠던 강가 등이 개발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습을 수도 없이 봤어요.”


▲2012년 8월18일 평창 겨울올림픽 활강스키장 건설예정지인 가리왕산 하봉에서 조홍섭 기자가 베어질 예정인 물박달나무 거목을 껴안아 보고 있다.


사실 환경전문기자는 특이한 존재다. 객관성과 중립성을 갖고 보도하는 일반적 기자와 달리 상당수가 환경론자이기 때문이다. 조 기자는 “환경 분야에서 중립성을 지키고자 한다면 어느덧 환경을 파괴시키는 쪽을 편들게 된다”면서 “보도자료를 내는 쪽은 항상 가해자다. 보도자료를 낼 수 없는 농민이나 자연 그 자체, 즉 약자의 입장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약자의 편을 들기 위해선 “몸을 적시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업자나 정책 당국자의 세련된 논리나 탄탄한 자료와 부딪히기 위해선 직접 발로 뛰며 해당 정책이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취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수치라는 게 애초부터 믿을 만하지 않습니다. 그저 참고용 정도죠. 오염물질이 기준치보다 적다고 과연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요? 숫자를 맹신하면 좋은 환경기자가 못 됩니다. 숫자를 의심하고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이면에 뭐가 있는지 신경 쓰고, 직접 주민들을 취재하는 것. 어려운 일이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해로운 기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2008년 11월13일 환경부의 첫 비무장지대 안 생태조사 결과 브리핑에 참가하기 위해 출입한 남방한계선에서 조홍섭 기자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최근 그는 부쩍 환경 문제에 관심 갖는 후배들이 늘어 기쁘다고 했다. 예전엔 환경 담당이 되면 ‘물 먹었다’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이제는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환경 분야가 결코 좁지 않다고 했다. 예컨대 동물 복지나 로컬 푸드, 가축 문제 등도 모두 환경과 연관 있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 환경부처 출입기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생태, 원자력, 도시계획 등 환경 전 분야에 관심을 가져온 터다.


“맨 처음 환경에 관심을 가졌던 1970~80년대에는 이슈가 공해문제에 국한돼 있었죠. 그러다 ‘환경’이라는 말이 199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쓰이면서 영역이 확장됩니다. 개념도 많이 바뀌었는데, 당시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했다면 이후 기후변화 등에선 그 구도가 불명확해졌죠. 사회적으로만 해결할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영역까지 환경 문제가 도달했습니다.”


조 기자 역시 ‘에너지 자린고비’라 불릴 정도로 개인의 영역에서 환경 보호를 실천하고 있다. 그가 참고하라고 했던 2008년 기사를 보면 그의 평소 생활 방식이 잘 드러난다. 33평 아파트 기준으로 한 해 중 가장 추운 1월 난방비가 1만원대, 2월은 3000원이 채 안 될 정도로 에너지를 절약한다. 도보로 통근한 지도 5년, 이제 웬만한 거리는 걷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2008년 12월 서울 대방동의 자택 아파트에서 조홍섭 기자가 겨울철 에너지 절약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한겨레 곽윤섭 기자)

“환경문제는 개인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단순히 차를 안 타는 수준이 아니라 건강도 좋아지고 생각도 달라지는 등 긍정적 요인도 많고요. 비록 직장에선 퇴임했지만 개인으로서, 작가로서의 인생은 계속될 수 있잖아요. 앞으로도 환경과 관련된 글들을 꾸준히 쓰면서 환경 분야 취재는 계속 할 겁니다.”


▲2016년 4월16일 제주도에서 조홍섭 기자가 지질공원을 취재하고 있다. 그는 요즘 자연사 취재에 푹 빠져 있다.(한겨레 곽윤섭 기자)

강아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