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로봇기자가 퓰리처상을 받는 날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신문방송학 박사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

1920년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처음으로 이름이 소개된 이후 로봇을 보는 인류 정서는 ‘공포’와 ‘희망’의 엇갈림이었다. 공상과학 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 3원칙’에도 로봇이 이끄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혼재된 인식이 반영돼 있다.


로봇은 언론에도 위협과 기대가 뒤섞인 야누스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압도하면서부터다. 지난해 1월 발표된 ‘유엔 미래보고서 2045’는 30년 후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할 직업군으로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과 함께 기자를 꼽았다.


구글은 최근 1억5000만 유로(약 1850억원) 규모 펀드를 기반으로 하는 2차 ‘디지털 뉴스 이니셔티브(DNI)’를 발표했다. ‘기술과 혁신을 통한 언론 지원’을 목표로 한 구글의 대언론 프로젝트다. 구글은 축적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미디어 영역에 진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로봇들은 이미 언론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알고리즘 솔루션 업체 내러티브 사이언스와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는 AP통신 등을 통해 매일 로봇기자가 생산한 수백 건의 뉴스를 공급한다. ‘아마존닷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2013년 인수한 워싱턴포스트는 디지털 전략을 통해 경영위기를 벗어난 뒤 가장 적극적으로 로봇기자를 활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로봇기자 헬리오그래프(Heliograf)는 ‘2016 리우올림픽’에 투입돼 개별 경기 결과에 대한 신속한 기사로 정평을 얻은 후 요즘은 정치 현장에서 선거 기사까지 쏟아내고 있다.


로봇기자의 전공은 ‘데이터 저널리즘’이다. 온라인에서 범람하는 빅데이터 속에서 빠르게 정보의 신호를 포착하고 대용량의 데이터를 분석해 기사를 쓰는 일이다. 중국 광저우에 본사를 둔 지역 일간지 ‘서던 메트로폴리스 데일리’에서 24시간 근무하는 로봇기자 샤오 난(Xian Nan)은 지역 봄 축제에 관한 300자 짜리 기사를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순간’에 써낸다. 한국에서도 로봇기자가 쓴 증권 시황기사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일각에선 로봇에 의한 기사작성은 기자들을 단순 노동에서 해방시켜 관점이 있는 해설이나 심층적인 분석 기사에 집중하도록 지원하는 ‘보완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언론사는 기자를 고용하는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수많은 고객별 맞춤 뉴스를 생산할 수 있으며, 독자들은 관심 있는 뉴스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다. 하지만 이는 기술에 관한 근시안적 무지이자 기대 섞인 전망에 지나지 않는다. 


수백만 가지 수가 가능한 반상에서 인공지능이 바둑 천재를 일방적으로 누른 순간 위협은 현실화됐다. 2014년 3월 공개된 스웨덴의 클러월 교수의 연구 결과는 ‘로봇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방증하고 있다. 그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로봇과 인간 기자가 작성한 뉴스에 대한 독자 인식을 조사한 결과, 독자들은 총 12개 뉴스 평가항목 중 신뢰도, 객관성, 유익함 등 7개 항목에서 기자보다 로봇이 쓴 기사가 더 우수한 것으로 평가했다. 로봇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보 전달자로서의 역할에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단순한 데이터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벗어나 언론의 관점이나 비판 기능까지 모방하는 로봇기자의 출현은 예고된 미래다. 구글의 로봇기자가 퓰리처상을 받을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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