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격사퇴에 정론관 앞 복도 아수라장

<반기문 불출마 뒷이야기>
자신의 뜻 왜곡됐다 느낀 듯
'나쁜 놈들' 언론보도에 불만
검증 이겨낼까 의구심 들어
중도 포기 가능성 높다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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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제가 주도하여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지난 1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입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이 나오자 국회 정론관 여기저기에선 ‘헉’하는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에 나온 불출마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경제지 A기자는 “그 날 오전 반 전 총장이 4당 대표를 만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의례적 기자회견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불출마 선언을 해 놀랐다”면서 “기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캠프 관계자들도 모를 정도로 갑작스러운 발표였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있다. (뉴시스)

기자실에서 TV를 통해 정론관을 모니터링하던 기자들은 내달렸다. 배우한 한국일보 사진기자는 “TV를 보다가 ‘불출마’ 자막이 뜨니 난리가 났다”며 “총알같이 뛰어 정론관 앞 복도로 갔다. 사진기자들은 반 전 총장 표정을 봐야 하니까 몸싸움을 하면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아수라장이 됐다”고 전했다.


정론관에서 반 전 총장의 말을 받아치던 기자들도 급히 속보를 보내고 반 전 총장에게 달려들었다. 조진영 이데일리 기자는 “대여섯 문장 정도 지나가니까 기분이 이상해 속보를 준비하고 있다가 반 전 총장이 ‘뜻을 접겠다’고 말하는 순간 속보를 내보냈다”면서 “반 전 총장 특성상 멀리서 질문하면 잘 대답을 안 해주는 경향이 있어 가까이 붙어 계속 ‘언제 결정한 건지, 어떤 이유로 결정한 건지, 누구랑 상의했는지’ 등을 질문했다”고 말했다.


‘반기문 불출마, 취재 뒷이야기’를 보도한 배재만 연합뉴스 기자도 “정론관에서 공식 발표를 한 회견자는 바로 앞 복도에서 기자들로부터 일문일답 시간을 갖는 것이 보통”이라며 “질문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지만 기자들은 스스로 충격을 이겨내려는 듯 아우성치며 차가운 복도로 밀려들었다”고 했다.


예정된 지면도 대거 바뀌어야 했다. 경제지 B기자는 “1면이나 정치면에 예정된 기사가 있었는데 모두 바뀌었다”고 했고, 종합일간지 C기자는 “지면에 반 전 총장 사진까지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부랴부랴 뺐다”고 말했다. 급작스러운 발표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월간중앙이 2월 표지인물로 반 전 총장을 내세우고 타이틀을 관련 기사로 뽑는 해프닝도 있었다.


누구도 예상 못한 불출마 선언이었지만 일부 기자들은 반 전 총장이 중도 포기 선언을 할 가능성은 높았다고 분석했다. 경제지 D기자는 “주변에서 추대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이걸 견뎌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반 전 총장이 예상치 못한 비판 등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기 때문”이라며 “또 계속 권력욕이 없다는 걸 강조했는데, 자신의 생각이 왜곡된다고 느낀 것 같았다. 언론에 ‘나쁜 놈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며 오랫동안 주자로 남기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수선한 캠프 분위기도 한 요인으로 꼽혔다. 유승호 한국경제 기자는 “간혹 캠프 구성에 관한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제가 느끼기에도 캠프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면서 “갈등도 갈등이지만 귀국하는 날부터 캠프 일처리가 매끄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제지 E기자는 “반 전 총장 주변 인물들이 도움을 주기보다 본인 안위에 집중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면서 “끝까지 가긴 쉽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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