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의사보다 더 많은 생명 구할 수 있어"

<2016 사건기자 세미나>
신중한 언론보도 자살률 감소시켜
사내교육에 인권교육 의무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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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로 자살률이 감소할 수 있을까? 있다. 그렇다면 언론보도로 인권의식을 높이는 것도 가능한가? 가능하다.


지난 23일 한국기자협회, 국가인권위원회, 중앙자살예방센터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제주 KAL호텔에서 공동 주최한 ‘2016 사건기자 세미나’에서는 언론보도로 생명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권의식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발제자로 나선 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교수는 “언론이 자살을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자살을 조장하는 부정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도, 혹은 자살을 예방하거나 감소시키는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베르테르 효과’처럼 언론이 자살을 증가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오페라 마술피리의 ‘파파게노’와 같이 언론이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2016 인권, 생명존중 워크숍’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두번째 섹션 ‘인권가이드라인의 언론현장 적용 방안 모색’과 관련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권영철 CBS 선임기자도 “아직까지 언론보도는 자살의 수법을 너무나 구체적으로 명시하거나 헤드라인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는 등 자살을 확산시킬 수 있는 보도를 한다”면서 “내가 쓴 자살기사로 인해 누군가가 자살을 결행했다면 여러분의 심정이 어떻겠나. 자살기사를 쓰지 않는다고 우리 사회가 나빠지거나 국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핀란드와 오스트리아는 언론이 자살보도를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자살률을 대폭 낮춘 경험이 있다”면서 “우리나라와 처지는 다르지만 언론이 자살보도에 신중하면 할수록 자살 빈도를 낮출 수 있다. 언론인들은 의사들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수종 언론중재위원회 기사심의팀장 역시 “자살관련 보도의 기준은 ‘신중함’”이라면서 “신중함이 의미하는 바는 원칙적으로 자살보도는 자제해야 하며, 자세히 보도하지 말고 정확하게 보도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의 자살사건은 가급적 보도를 자제하고 자살방법이나 장소, 사진 등을 게재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인권을 높이기 위해 기자들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치중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는 “기자들이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적소수자들을 이르는 말), 탈북자, 청소년, 군인, 정신질환자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그들의 인권을 막연히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발제를 맡은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언론보도로 확산되는 혐오표현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연구위원은 “인종, 민족, 종교, 성별 등의 차이에 기인해 차별, 적대, 증오, 폭력 등을 유발시키는 표현을 ‘헤이트 스피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차별적이거나 편파적인 보도들이 종종 있다”면서 “1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16.5%가 언론에서 혐오표현을 가장 많이 접한다고 했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거나 특정 지역 주민들의 피해의식을 부추길 수 있는 선정적 보도 등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언론 현장에서 인권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제자로 나선 김향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운영팀장은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인권보도준칙을 만들었지만 이를 알고 있는 기자나 인권보도준칙을 게시하고 있는 홈페이지는 전무한 실정”이라면서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경우 신입기자, 중견기자 뿐만 아니라 편집자 및 의사결정 지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해 모든 언론인들에게 동등한 인권훈련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또 인권교육을 위해 자격검증, 경력 또는 승진 기준, 인센티브 제공 등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정책적 대안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홍보팀장은 “교육을 하면 기자는 충분히 공감하고 해보려고 하지만 막상 소속된 언론사나 취재현장으로 돌아가면 알고 있어도 마음대로 적용할 수 없다”면서 “언론사의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더불어 사내 교육 커리큘럼에 인권교육이 의무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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