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잘못된 사회적 통념 성폭력 보도에 반영"

기협, 여성가족부 주최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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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여성 권익증진과 아동·여성폭력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언론의 역할’ 세미나가 22일 제주 서귀포 KAL호텔에서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열렸다.

아동학대와 성폭력 보도로 인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언론인이 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한편 피해자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해결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22일 한국기자협회가 여성가족부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제주 서귀포 KAL호텔에서 주최한 ‘아동·여성 권익증진과 아동·여성폭력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언론의 역할’ 세미나에서는 아동·여성 전문가들이 참여해 아동학대 예방과 아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언, 성폭력 보도로 인한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언론의 역할 등을 강의했다.


발제자로 나선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경환 변호사는 성폭력 보도와 관련해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문제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문제 △우발적 범행으로 묘사하는 문제 △‘폭력’이 아닌 ‘성’에 집중하는 문제 △적나라한 디테일을 보도하는 문제 등을 지적하며 “잘못된 사회적 통념들이 넓게 퍼져 있어 기자들도 무의식적으로 이를 성폭력 보도에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언론은 성폭력 보도를 할 때 가해자가 얼마나 사이코패스인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에 집중해 국민적 공분을 야기한다. 그 반향으로 사형이나 물리적 거세 등 엄벌주의적인 제도들이 거론된다”면서 “그러나 언론이 관심 가지는 이런 성폭력 사건들은 전체 사회 성폭력의 10%도 안 된다. 데이트 성폭력, 직장 성폭력, 성인 성폭력 등 대부분의 성폭력들은 그 반대급부로 판사가 유죄를 선고하기에 부담을 가져 무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에 책임을 지우는 언론의 행태도 지적됐다. 이 변호사는 “언론 보도를 보면 피해자가 ‘짧은 치마’를 입었다는 사실을 굳이 알려주거나 ‘여성분들 조심하셔야겠습니다’라는 투의 보도들이 있다. 성폭력이 스스로 조심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것이라고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면서 “피해자들에게 회피 행동을 강요해 여성을 남성 의존적으로 만든다. 이로 인해 성폭력 대처능력이 떨어져 임기응변으로 피할 수 있는 범죄들도 겁에 질려 회피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경환 변호사는 '성폭력 보도 언론의 2차 피해 사례 연구'를 주제로 강의했다.


이 변호사는 성폭력이 참을 수 없는 성욕에 의해 우발적으로 일어난다는 투의 보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폭력 가해자들은 대부분 범죄를 저지를 시간과 공간을 물색하고 제압할 수 있는 상대를 찾으며 증거 인멸, 협박 방법 등을 모두 고려한 후 범죄를 저지른다”면서 “언론이 단순 ‘성욕’에 의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다고 묘사하는 것은 잘못이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이 성폭력 보도에서 폭력보다 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변호사는 “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의 문제”라면서 “하지만 신문, 방송 등은 재연화면이나 그림 등을 통해 성폭력 상황을 선정적으로 접근한다. 미국 언론과 비교해 봤을 때 우리나라의 성폭력 보도는 기사제목과 부제목, 프레임 등에서 사실이나 정보 전달보다 선정적 보도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지나치게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도 문제라고 봤다. 그는 “나주 성폭력 사건의 경우 위성사진을 비롯해 집 내부를 3D로 구현해 피해자의 집이 어디인지 특정 짓게 만들었다”며 “이런 적나라한 디테일이 사건 보도에 꼭 필요한지, 그러한 디테일 때문에 피해자가 더 고통 받을 여지가 있는지 등을 기자들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기사마다 말미에 ‘이 기사는 인권보도준칙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기준을 준수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쓰게 한다면 기자들이 한 번 더 기사를 스크리닝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보도 가이드라인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적용할 사람이 필요하다. 기자들이 가슴 깊이 공감하고 피해자의 아픔을 느낀다면 허울 좋은 가이드라인이 변화를 가져올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아동학대 관련 발제자로 나선 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복지연구팀장도 아동의 사회적 보호 필요성과 아동학대 예방대책, 아동보호체계의 실태와 문제점, 아동보호체계 개선을 위한 정책과제 등에 대해 강연했다.


세미나 말미에는 송지혜 시사인 기자,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등 토론자들이 참여해 아동학대·성폭력 보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본질을 한 번 되새기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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