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기자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무너뜨리려 하나"

전국기자협회 비상총회..."사드 부당지시 반발 기자 징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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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저한테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열 편 만드는 거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한 번에 회사에 안겨놓고 신변이 무사할 줄 아느냐.’ 저는 대구 기자들이 한 일은 그나마 추락해 가던 KBS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세워준 거라 생각합니다…(중략)…독립운동 하려고 모인 거 아니고 너무 당연한 일을 당연하다고 말하려고 이렇게 전국 방방곡곡에서 귀한 시간과 돈을 들여 모였습니다…(중략)…저희는 해사 행위를 한 것이 아닙니다. 저널리즘의 기본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걸 곡해하지 말고 순수하게 받아들이셔서 징계를 철회해주시고 저희 목소리를 귀를 열고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선배님들도 한 때 좋은 기자들이셨잖아요.”(이하늬 KBS대구 기자)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울산 전주 창원 청주 춘천 등 KBS지역총국 소속 기자 100여 명이 20일 서울 여의도 본사를 찾았다. '성주 사드시위 외부 세력 개입보도’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는 이유로 해당 지역기자들에 대한 특별감사를 진행, 징계 수순을 밟고 있는 사측의 움직임에 항의의사를 밝히기 위해서다. 지역총국 기자들이 단체로 상경해 자리를 가진 것은 지난 2003년 이래 13년 만에 벌어진 이례적인 일이다.


▲KBS전국기자협회 비상총회가 열린 20일 서울 여의도 KBS신관 앞 광장에서 이하늬 KBS대구 기자가 발언하는 모습.


KBS 지역총국 소속 기자들의 단체인 전국기자협회는 이날 본사 신관 앞 광장에서 ‘부당징계 시도 중단 및 제작 자율성 확보’를 위한 비상총회를 열고 사측의 전국기자협회원에 대한 징계 수순 행보와 KBS의 현실을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송현준 전국기자협회 비대위원장은 투쟁사에서 “당연히 기자들은 사실을 써야 되고 아무리 좋은 취지가 있고 의도가 있더라도 사실이 아니라면 기사로 써선 안 된다. 그게 바로 KBS가, 언론사가 많은 영향을 발휘하는 이유다. 우리가 그렇게 한 것 뿐인데 (회사는) 징계를 하겠다고 한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우리가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한다. 정말 회사의 명예를 누가 훼손했나”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송 위원장은 이정현 녹취록 파문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이 “홍보수석의 통상적인 업무”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얘기만큼 KBS의 명예를 실추시킨 게 어디있나. 명예를 생각할 거 같으면 소송을 걸고 처벌을 요구했어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최근 KBS의 신뢰도 하락 등을 거론, “사람이 없단 이유로 네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가 경찰서 바닥에 뉘이고 사건 체크하는 게 우리 지역 기자들이다. 우리 기자들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려고 그러나.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이렇게 무너뜨리려고 하나”라며 “끝까지 당당하게 우리의 주장과 옳은 얘길 한 마디 씩 한 마디 씩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비상총회는 지난달 19일 KBS ‘뉴스9’을 통해 보도된 <경찰, “성주 시위 외부 인사 참가 확인”> 리포트에서 비롯됐다. 당시 타 매체를 통해 이 같은 보도가 나가면서 보도국 편집회의에서 아이템 제작을 결정했고, 네트워크부가 대구총국에 팩트확인과 제작 지시를 내렸다. 이후 대구에선 ‘팩트 확인이 안 됐고,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본사에서는 ‘리포트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KBS의 색깔이 있는데…’라는 답이 왔다, 이에 해당 보도는 이례적으로 대구총국 취재 기자가 아닌 취재 부장이 직접 리포팅을 했다.

다음날인 20일 전국기자협회는 이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본사의 부당지시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가 일부 표현 등에 대한 사측의 항의에 성명서를 내렸다. 이후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사드 관련 보도에 대해 비판하자 KBS는 22일 <있지도 않은 ‘보도지침’거론...“언론자유 침해”>라는 아이템을 내보내기도 했다. 전국기자협회는 지난달 27일과 지난 5일 운영위 등 개최를 통해 성명 자진철회로 빚어진 논란 책임을 물어 협회장을 불신임,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고 20일 '상경 비상총회'를 결정했다. 이 사이 전국기자협회 집행부 기자들은 고대영 사장의 감사요청에 따른 특별감사를 받았다.

비상총회에는 지역총국 기자들은 물론 KBS기자협회, KBS노동조합, 언론노조 KBS본부·대구MBC지부,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관계자 등도 함께하면서 이 자리는 공영방송 KBS의 최근 행보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드러내고, 앞으로의 투쟁을 위한 연대를 다지는 기회가 됐다.


▲20일 KBS전국기자협회 비상총회에서 참석한 기자들이 '징계시도 즉각 중단'을 외치는 모습.


이현진 교섭대표 KBS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번 사태는 KBS 기자사회의 민주주의가 지금 위기에 봉착했다는 의미다. 이번 투쟁은 그 민주주의를 다시 되살리는 투쟁이 될 것”이라며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시키면 그저 만들어내는 리포트 전락기계로 전락하고 말 거다. 반드시 이번 투쟁에서 이겨야 할 첫 번째 이유”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동료, 전국기협의 동료, 위기에 처한 동료를 구하는 투쟁이란 점에서 뜨거운 전우애를 확인하고 전국기협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투쟁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지난달 19일 보도, 그리고 전국기협 성명을 둘러싸고 회사가 특별감사를 벌이고 있다. 방송편성규약 제6조 3항을 보면 기자의 양심과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뉴스 제작을 우리는 거부할 권리가 있다”며 “과거 통합진보당 관련된 사람 몇 명이 성주 집회에 나타났다는 게 뉴스거리가 되나. 취재 기자들은 현장에서 바로 안다, 뉴스가 안 된다는 걸. 보도 며칠 전부터 같은 주제로 뉴스를 하라고 강압적 지시가 내려왔고 그 반복적인 지시가 바로 ‘보도지침’이다. 보도지침이 별 게 아니다. 말도 안되는 지시를 계속적으로 강제하면 그게 지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별감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온갖 편성규약 다 어겨가며 불이익 주려하고, 정작 법, 룰, 규정 위반한, 여기 3층, 4층 책상머리 앉아서 이래라 저래라 말도 안되는 지시를 내리고 말 안들으면 툭하면 징계하겠다 감사하겠다는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그리고 그걸 조장하고 특별감사 요청한 고대영 사장이다. 감사는 지금이라도 당장 편성규약 위반으로 본부장, 국장 등 보도책임자들 특별감사를 시작하라”고 부연했다.

정규성 한국기자협회장은 “얼마 전 정연욱 기자를 지키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다. 정 기자는 기자협회 회원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열린공간인, 기자협회보에 내부 비판의 글을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곳으로부터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제주도로 인사조치가 됐다. 사회 곳곳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KBS의 이중적 잣대를 그대로 보여준 셈”이라며 “오늘 진실 보도, 사실 확인, 현장기자의 의견은 무시한 채 왜곡보도를 강요하고 이제는 징계와 또 특별감사라는 이름으로 여러분을 억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심대히 위반하는 거다. 한국기자협회는 여러분과 늘 함께 하겠다. 힘내시라. 한국기자협회장 이름을 걸고서라도 여러분을 꼭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조승호 방송기자연합회 정책위원장은 “언론이 세상을 바꾼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백악관에서 엄청나게 압력을 넣고 위협을 가할 때 워싱턴포스트는 흔들렸다. 보도국장이 한 마디를 했다. ”나는 우리 기자들을 믿는다.“ 이 한 마디로 워싱펀 포트스는 끝까지 취재했고 결과적으로 세상을 바꿨다. 그런데 지금 KBS는 어떤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 사실에서 악몽의 데자뷰가 떠오른다. 2년 전 세월호 사건 때 현장에 있던 목포MBC기자들이 서울에 얘기했다, 해경과 어민의 말을 종합하면 배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갇혀있다고. 서울MBC는 경기도 교육청이 발표했다면서 전원구조 오보를 냈다. 우리가 부끄러운 기레기 소리를 듣게 된 바로 그 오보가 나갔다. KBS가 MBC의 전철을 똑같이 밟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명박근혜 정부 이후 8년째 대한민국 언론은 후퇴, 후퇴,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도 힘을 내야 한다. 열악해도 울분을 토하고 문제제기를 계속하는 기자들이 있는 한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전국에서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 모여든 KBS기자들의 모습을 본다. KBS가 단기간은 위축될지 몰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굳게 믿는다”고 전했다.

도건협 언론노조 대구MBC지부장은 “KBS 이번 사태 경과를 보면 저희와 똑같다. KBS와 MBC사장이 원한 건 취재한 팩트가 아니라 자기들이 정해놓은 프레임 그대로 보도를 하라는 거다. 너희들은 개돼지다. 생각하지도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얘기”라며 “징계나 소송이 무서운 게 아니다. 제가 겁나는 건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성주 군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공영방송이 그렇게 했을 때 우리가 시민들한테 외면당하는 것. 심지어 80년대 광주에서처럼 성난 시민들이 MBC와 KBS를 습격하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국기자협회가 이런 싸움에 나서준 것에 고맙고 진심을 다해 열렬히 지지한다. 그냥 격려만 할 수가 없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은 최소한의 것이어서다. 그걸 위해서 다들 열심히 싸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네트워크 부 소속인 이영섭 KBS기자협회장은 이와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19일 문제의 리포트 전 주말에 근무를 했다. 연합뉴스에서 ‘외부세력이 있다'는 (이재복)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의 한 마디를 전한 보도가 나왔고 보도국장 등은 코멘트를 따라고 했다. 대구총국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 시도를 했지만 통화가 안 됐다. ’왜 연합에 뜬 분 통화가 안 되나. 경위서를 쓰라고 해라’라는 말까지 했다. 취재를 시도하는데 연결이 안 되면 경위서를 써야하는 건가”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비애가 느껴진다. 이렇게 가야할 사안인가. 징계든 뭐든 간에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안다. 우리가 옳고 정당하다는 게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난다. 옳은 길을 가서 후회는 없을 거 같다. 명확하게 옳기 때문에 그대로 가면 후회는 남지 않을 거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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