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 회장단 길거리로 내몬 KBS

회장단 "정연욱 기자 반드시 지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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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KBS의 현 주소를 똑똑히 봤다. 한국기자협회는 앞으로 우리의 소중한 회원인 정연욱 기자를 반드시 지켜내겠다. 반드시 지킬 것이다. 꼭 그렇게 하겠다.”(정규성 한국기자협회장)
 
“길거리에서 이렇게 기자회견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처사에 대해 KBS지회장으로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영섭 KBS기자협회장)

KBS가 부당인사 논란이 일고 있는 정연욱 기자의 제주 발령과 관련 이에 항의하기 위한 한국기자협회 회장단의 방문과 면담요청에 문전박대로 답했다.

한국기자협회 회장단은 17일 오전 기자협회보 특별기고를 통해 ‘이정현 녹취록’ 보도에 침묵하는 자사 보도본부를 비판했다가 경인방송총국에서 돌연 제주로 발령이 난 정연욱 KBS기자에 대한 부당인사에 항의하고 인사 철회를 촉구하기 위해 고대영 사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이날 정규성 한국기자협회장, 김지방(국민일보)·박성호(MBC)·임현우(농민신문)·이병도(KBS)부회장, 장필수 광주전남기자협회장(광주일보), 최유탁 인천경기기자협회장(기호일보), 이영섭 KBS기자협회장 등 10여명의 회장단은 고대영 KBS 사장에게 정연욱 기자 부당인사에 대한 항의의사를 밝힐 계획이었지만 KBS가 보안업체 직원 10여 명을 동원해 제지하면서 본관에 진입조차 할 수 없었다.


▲한국기자협회 회장단이 정연욱 기자의 제주발령에 항의의사를 밝히는 면담요청을 위해 17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을 찾았다가 보안직원에게 제지당하는 모습.

KBS는 회장단이 준비한 항의서의 수령도 거부했다. KBS시큐리티 관계자는 “문의를 해봤지만 (항의서를) 받을 담당 부서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방문은 지난달 22일 ‘한국기자협회 회장단 면담 요청 건’이라는 제하 공문을 고대영 사장에게 내용증명을 통해 통보한 이후 후속 조치로 이뤄졌다. 기자협회는 공문에서 “한국기자협회는 귀사 정연욱 기자 등 한국기자협회 회원 인사와 관련한 사안을 여쭙고자 18일(월) 비서실로 고대영 사장님의 면담을 요청한 바 있지만 아직까지 회신을 받지 못했다”며 “위 내용과 관련, 정식으로 고대영 사장님의 면담을 아래와 같이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당시 KBS는 기자협회에 “(고대영 사장은) 기자협회장과 정연욱 기자 인사에 대해 할 말이 없고, 다른 일정이 산적해 만날 시간이 없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러면서 “특히 KBS사장은 일반 기자의 인사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보도본부에서 정연욱 기자에 대한 인사가 올라왔고, 부사장이 결재했다. 사장이 일개 기자에 대한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보안업체 직원들의 제지로 본관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회장단은 결국 본관 앞 길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면담요청 조차 거부하는 KBS를 비판하면서 ‘국민의 방송’이 최근 보여준 여러 행보에 대해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또 정연욱 기자에 대한 인사 철회 및 재발방지를 강력히 촉구했다.


▲정규성 한국기자협회장 등 회장단이 17일 KBS본관 출입을 제지당한 뒤 인근 노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는 모습.


정규성 회장은 “고대영 사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이 자리에 대신 섰다. 참담한 심정이다. 사회 곳곳을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KBS가 내부 구성원의 비판조차 용납 못하는 이중적 잣대에 놓여있다. 정연욱 기자는 기자협회 회원이면 누구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간에 비판의 글을 올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곳으로부터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제주도에서 근무하게 됐다. 이것이야말로 무엇을 뜻하겠나. 이게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KBS의 현 주소”라고 밝혔다.

이영섭 KBS기자협회장은 “기자협회보에 쓴 글 때문에, 기자가 글을 썼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제주로 발령 받아야 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라면 모두가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KBS지회에서도 정연욱 기자에 대한 부당인사가 원상회복될 수 있도록 계속 피케팅 시위를 하고 있다. 여러 방법을 통해서 원상회복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걸 약속드린다. 함께 싸워주시고 지지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박성호(MBC) 부회장은 “요즘 KBS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서 MBC 기자들 사이에서 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KBS경영진이 MBS경영진을 너무 따라하는 거 같다, 고대영 사장이 김재철 전 MBC사장을 흉내를 내는 거 같다는 얘기”라며 “MBC에서는 회사에 대해 비판적인 웹툰을 그렸다고 해서 PD를 해고했다가 대법원이 원직복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외부 매체 인터뷰에서 회사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길 했다고 해서 두 명의 기자에게 정직을 내렸다가 이 역시 부당징계라고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바 있다. 아마 정 기자도 법적인 절차를 밟는다면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시청자가 주인인 제1의 공영방송 KBS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나. 더욱이 또 다른 공영방송인 MBC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익히 보셨다면, MBC가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보셨다면 지금 KBS 벌어지는 일들을 그렇게 가볍게 볼 수가 없다”면서 “빨리 고대영 사장께서도 구성원과 외부의 신문방송 동료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시고 원상회복 해주셨으면 좋겠.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 드리는 말씀”이라고 말했다.  

이병도 부회장은 “원래대로라면 국민의 방송, 공영방송 KBS에 여러분들이 오신 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되지만 오늘 정연욱 기자의 부당인사 때문에, 이런 일로 오셨다는 점, 건물 안에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하고 노상에서 서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하지만 펜은 가끔 굽을지언정 꺾이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기자협회가 똘똘 뭉쳐서 여러분들의 온 성원을 다 한다면 결코 펜이 꺾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계속 싸워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현우 부회장(농민신문)은 “인사는 조직을 움직이는 하나의 시스템인데 KBS 시스템이 좀 망가지는 게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며 “이런 문제가 하루 빨리 해결돼 국민들이 KBS를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다시 되새길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회장단이 고대영 사장에게 전하려 했던 항의서 전문은 아래와 같다. 이날 김지방 부회장(국민일보)이 낭독했다. 

<항 의 서>


공영방송을 자부하는 KBS는 국민의 시청료를 주요 자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KBS 스스로도 핵심가치를 <우리의 중심에 시청자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그 중심에 과연 시청자가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면 언론의 기본 사명감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을 밝히는 것, 그리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은 언론인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진실을 밝히고 원인을 규명해야 될 대한민국 기자들은 오히려 국민들을 혼란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기레기라는 오명과 함께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 후 늦었지만 대한민국의 언론인들은 재난보도준칙을 만들고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모든 매체와 언론인들은 지금도 힘을 합쳐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최근의 KBS만은 이를 역행하는 듯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가 KBS 보도에 개입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언론사 마다 관련 내용을 대서특필했음에도 가장 많은 진실을 알고 있었을 KBS만은 정작 침묵으로 일관했다.

참다못한 KBS 보도국 기자들이 잇달아 성명을 냈고 정연욱 기자는 7월 13일자 기자협회보에 <침묵에 휩싸인 KBS…보도국엔 ‘정상화’ 망령> 제하의 원고를 특별 기고했다.

그런데 KBS는 기자협회보의 특별기고 이후 정연욱 기자를 제주총국으로 전보 발령을 냈다. KBS는 인사체계상 현 소속 부서 근무기간이 6개월을 넘지 않은 경우 인사 발령을 낼 수 없다. 그런데 당시 정연욱 기자는 경인방송센터로 발령 받은 지 6개월이 안된 시점이었다. 특별 기고로 인한 부당 인사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기자협회는 이와 관련 7월 18일 <KBS는 정연욱 기자 보복인사 철회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전화와 내용증명을 통해 고대영 사장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사장은 책임이 없어 할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번 정연욱 기자의 부당 인사 의혹과 관련해 KBS가 인사 경위를 명확히 밝히고 무리한 부당 인사의 철회와 함께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한다.

KBS경영진은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다가가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그것이 KBS가 말하는 가장 신뢰받는 창조적 미디어로 가는 실천방안 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기자협회는 다시한번 촉구한다. KBS가 지금이라도 정연욱 기자의 부당 인사를 철회하고 소통과 화합으로 시청자들의 신뢰를 쌓아 국민이 사랑하는 KBS로 재도약하기를 바란다.

2016년 8월 17일
한국기자협회 회장단 참석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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