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만 강요하는 엇나간 디지털 전략

디지털 전략 앞세워 속보 압박
"우리가 통신사 기자인가" 불만
디지털 기획 주력 언론사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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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강원도 횡성에서 진도 6.5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대형 오보가 나왔다. 기상청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지만 디지털 시대 속보 조급증이 이를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횡성 규모 6.5 지진’. 지난달 18일 강원도 횡성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뒤이어 여러 언론사가 같은 속보를 쏟아냈다. 하지만 오보였다. 훈련용 문서를 언론사에 보낸 기상청의 실수였다.


언론들은 지진 발생 보도는 해프닝이었다며 기상청을 질타했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언론에 있었다. 기상청 문서에 적힌 지진 발생일은 ‘2016년 5월19일’로 미래시점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보고 확인전화 한 통만 했다면 무더기 오보를 막을 수 있었다.


잇따라 보도한 언론들도 간단한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고 속보경쟁에 매몰됐다. 횡성지진 오보는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 속보 조급증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다.


뉴스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하지만 속보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디지털 퍼스트는 곧 속보’라고 오인하는 언론사도 생겨나고 있다. 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속보에만 매달리다 ‘디지털’과 ‘좋은 콘텐츠’ 모두 놓칠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또 속보를 강요받는 현장기자들의 불만도 쌓이고 있다.


종합일간지 A기자는 “얼마 전부터 회사가 속보를 강조하고 있는데, 속보가 적은 부서 데스크는 편집국 회의에서 압박을 받는다고 들었다”며 “기자 한 사람당 매일 내야 할 속보 개수를 정해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기자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속보가치 없는 보도자료나 정치인·지자체장의 의미 없는 기자회견 워딩을 속보처리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속보압박을 받는 신문기자들은 그전보다 취재시간이 부족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질 좋은 기사를 생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종합일간지 3년차 B기자는 “오전엔 단신 속보와 좀 더 살을 붙여 온라인용 기사를 쓰고, 오후엔 지면까지 막아야 하는데 자세히 취재할 시간이 있겠느냐”며 “퀄리티 높은 기사를 쓰고 싶은 욕심이 있어도 빨리 올리라고 재촉하니 힘이 빠진다. 결국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하거나 통신사 기사를 우라까이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B기자는 “우리가 통신사 기자인가”라며 “속보에 매달릴 시간에 많은 취재를 한다면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빨리, 많이가 아니라 깊이 있는 기사를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일부 언론사에선 기자 인사평가 항목에 속보 개수·조회수 반영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종합일간지 C기자는 “요즘 온라인에 부담이 없는 기자는 없다. 달라진 환경만큼 이제 신문기자가 현장에서 속보를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불필요한 속보까지 강요하면서 이를 인사에 직접 반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인력·인프라 투자, 적절한 보상 없이 밀어붙이는 속보 전략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종합일간지 9년차 D기자는 “온라인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투자나 보상 없이 기자들을 쥐어짠다고 디지털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라며 “빨리 쓰는 것보다 디지털 환경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게 우선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언론사가 속보를 강조하는 이유는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노동력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 온라인담당 E기자는 “긴 기사보다 한 줄짜리 속보의 조회수가 높을 때가 많다”며 “카드뉴스, 동영상은 품이 많이 든다. 부족한 인력 속에서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조회수가 나오는 속보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언론사 페이지 트래픽이 감소하면 온라인 광고단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속보에 연연하는 이유로 꼽혔다.


종합일간지에서 디지털부서를 담당했던 F부장은 “데스크가 어떤 기사를 속보로 먼저 내보낼지 판단하기보다 관성적으로 빨리빨리를 외치는 경우가 많다”며 “속보 강조는 단순히 데스크의 실적을 위한 생색내기 수단으로 전락하기로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선 속보보다 디지털에 맞는 콘텐츠 제작에 몰두하는 언론사도 늘고 있다. 중앙일보는 내달 본격적인 통합뉴스룸 운영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전재 계약을 재개한다. 기자들의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해 단신, 속보 등은 통신사 기사로 처리하기 위해서다. 대신 사진과 동영상이 들어간 롱폼 기사(스토리텔링형 장편 기사), 분석기사에 공을 들인다는 방침이다.


속보를 강조했던 세계일보도 전략을 바꿔 디지털 기획기사에 주력하고 있다. 채희창 세계일보 디지털미디어국장은 “속보는 기자들에게 부담만 주고 기사 쓸 시간을 뺏을 뿐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기자들에게 속보 대신 디지털 기획을 요청했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좋은 기획들은 반응도 좋다. 두 달에 한 번 디지털기획상을 선정해 200만원을 지급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채 국장은 “앞으로도 속보를 강조할 생각이 없다”며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차별화된 콘텐츠다. 단순 속보는 트래픽에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기자로서의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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