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설 제각각…관점따라 해석하고 주장할 뿐

<종합일간지 사설 249건 분석>
정부 책임·안전 강조에서 특정 세력·반정부 투쟁 등장
1주기 '시위' '집회' 프레임…'진상규명' 키워드는 사라져
1·2차 청문회 활동엔 침묵…전교조 세월호 교재 등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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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 전 일이 됐다. 2014년 4월16일, 그날은 300여명의 아이들이 세월호 속에서 죽어간 참담한 날이었다. 진도 팽목항에서 울부짖는 부모들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이 슬픔을 삼키던 날. 그 슬픔은 얼마 가지 않아 분노로 변했고 사람들은 무능한 정부를 규탄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비난의 지점에는 언론도 있었다. ‘전원 구조’ 오보를 시작으로 취재 보도 과정에서 일부 기자의 경솔한 행동은 희생자 가족은 물론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언론은 그래서 세월호 참사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진 채 사건과 마주했다. 당시 재차 사과와 애도를 표하며 저널리즘 전반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가진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 책임을 떠나더라도 제대로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에 관한 총체적인 점검을 정부에 주문하는 것은 언론으로서의 기본 책무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언론은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과 해운 비리 문제 등을 지적했고,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내수 경기 침체, 특정 세력의 정치 선동 등을 이유로 세월호는 차츰 다른 프레임과 각도에서 조명됐다. 그리고 2주기가 다가오는 현재 세월호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일주일 앞둔 지난 9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찾은 한 아이가 사고 해역쪽을 바라보고 있다.(뉴시스)

지금까지도 세월호 참사의 시작과 끝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온갖 프레임이 엉겨 붙어 사건을 뒤죽박죽 만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된 데 언론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자협회보는 9개 종합일간지별로 세월호 관련 사설에서 어떤 키워드가 많이 쓰였는지 분석해 세월호 참사가 2년 동안 어떻게 변주돼 왔는지 그 과정을 돌아봤다. 시기는 ①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인 2014년 4월16일~5월31일 약 2달, ②세월호 1주기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논란이 일던 2015년 3월1일~7월31일 5달, ③세월호 1·2차청문회가 진행되던 즈음인 2015년 11월1일~2016년 3월31일 5달로, 총 1년여 가량을 들여다봤다. 이 시기 제목에 ‘세월호’가 들어간 사설이 분석 대상이 됐으며 해당되는 사설은 9개 종합일간지에서 총 249건이었다. 사진은 ②번과 ③번 시기에 각 신문사 사설에서 많이 쓰였던 단어를 ‘뉴스젤리’ 사이트를 통해 시각화한 것이다.

안전 외치던 신문들, 그러나…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2014년 4월16일부터 5월31일까지 약 2달 동안 신문사들의 논조는 대체로 비슷했다. 침몰 직후인 4월17일 사설을 보면 모든 신문사들은 세월호의 침몰을 애도하며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했고 이를 계기로 제도와 문화 속에 안전 의식이 뿌리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국민들은 무엇보다 이번 참사를 통해 대한민국은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나라가 아닌가 하는 기분을 뼛속 깊숙이 느끼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고, 국민일보도 “정부가 안전에 관한 총체적인 점검을 통해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 언론사에서 많이 쓰인 단어는 ‘사고’ ‘안전’ ‘정부’ ‘침몰’ ‘실종자’ 등이었다. 특히 ‘안전’은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많이 쓰인 핵심 단어였는데 조선일보(59회), 세계일보(36회), 경향신문(30회), 동아일보(22회), 중앙일보(16회) 등에서 많이 쓰였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발생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애도 분위기는 차츰 사라졌다. 여전히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천천히 경제에 대한 우려와 특정 세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일부 신문사에서는 ‘경제’ ‘정치적’ ‘전교조’ 등의 단어가 등장했다.


중앙일보는 4월30일자 사설에서 “숙연한 분위기가 온 나라에 감돌면서 일반 국민들도 각종 행사와 연회를 취소하고, 관광과 외식마저 중단하고 있다”며 “이러한 내수 침체가 겨우 살아나기 시작하던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는 것은 물론 영세상인과 골목상권에 치명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 소비 부진, 서비스업 활성화 등에 대한 우려는 동아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사설에서도 언급됐다.


▲2015년 3월1일~7월31일, 2015년 11월1일~2016년 3월31일 각 신문사 사설에서 많이 쓰였던 단어들.


동아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은 특정 세력이 정치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이용하고 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5월8일자 사설에서 ‘엄마의 노란 손수건’이라는 인터넷 모임 회원과 전교조의 사례를 들어 “일부 좌파 세력은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2008년 광우병 사태 때처럼 정치 투쟁의 불쏘시개로 활용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고 비판했고, 서울신문도 5월9일자 사설에서 “세월호 참사에 온 나라가 비통해하는 상황을 빌미로 일부 단체와 세력들이 이념적·정파적 의도에 따른 정치 선동적 행태를 보여 우려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위·집회·폭력 VS 진상규명
시계를 1년 후로 빠르게 돌렸다. 세월호 인양이 결정되고 1주기가 다가오던 2015년 4월, 세월호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언급되고 있었다. 여전히 진상규명은 제자리걸음 상태였지만 더 이상의 갈등을 끝내고 ‘세월호 이후’를 이야기하는 사설이 등장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통령을 거부한 유가족을 질타하거나 1주기 추모집회를 비판하고, 특조위의 활동을 지적하는 사설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4월17일자 사설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유가족들이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한 것을 두고 “대통령은 그를 지지하건 반대하건 상관없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며 “대통령을 끝내 거부한 유족들은 대한민국과 등을 지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4월20일자 사설에서 1주기 추모집회와 관련해 “폭력시위로 변질됐다”면서 “희생자 가족들을 반정부 폭력시위로 끌어들여 일반 시민들과 이간질하는 불순한 세력을 용납할 수 없다. 희생자 가족들도 이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7월13일자 사설에서 특조위 활동에 대해 “특조위가 그동안 한 일이 무엇인지 의문”이라며 “내년 4월 총선 등에 맞춰 세월호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이 있지 않은지 의심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신문사별로 쓰이는 단어도 상반되기 시작했다. 일부 신문사에서는 ‘시위’ ‘집회’ ‘천막’ ‘폭력’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특히 ‘시위’는 조선일보(30회), 중앙일보(16회), 동아일보(9회)에서 많이 쓰였고, ‘폭력’이라는 단어는 조선일보(9회) 중앙일보(9회) 세계일보(8회)에서 여러 번 등장했다. 반면 이들 신문사에서 1년 전 많이 쓰였던 ‘안전’이란 단어는 1/4~1/10 가량으로 사용 횟수가 쪼그라들었다. 이 시기 한겨레(19회), 한국일보(14회), 경향신문(12회), 국민일보(10회) 등에서 많이 쓰인 ‘진상규명’이라는 단어도 조선일보, 중앙일보에서는 2~3회 사용되는데 그쳤다.

세월호 청문회는 사라졌다
세 번째 시기인 2015년 11월부터 2016년 3월은 세월호 1·2차 청문회가 있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한국일보(10회), 경향신문(9회), 한겨레(6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신문사에서는 ‘청문회’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관련 사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특조위가 진상조사를 내팽개쳤다거나 단원고 교실을 재학생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 전교조의 세월호 교과서를 문제 삼는 사설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이 시기 부각된 단어는 ‘전교조’ ‘교과서’ ‘교실’ ‘특조위’ 등이었다.


세계일보는 3월25일자 사설에서 전교조의 세월호 교재와 관련해 “정치 투쟁 성격이 짙다”면서 “상처를 헤집어 증오를 부추기는 행동은 교육적으로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전교조가 참교육을 빙자한 반교육적 행태를 하면 할수록 자신들 위상만 떨어질 뿐”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일보도 11월5일자 사설에서 “특조위는 사실상 존재감을 상실했다. 1년6개월여 전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거의 드러난 데다 특조위 활동에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아서일 것”이라며 “실제로 검찰이 규명하지 못한 ‘숨은 진실’을 밝혀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활동을 서둘러 조기에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청문회를 다룬 3월29일자 사설에서 “청문회에서 나온 증언과 의혹 제기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검찰 수사와 재판기록, 국정조사특위 자료가 15만쪽에 달하지만 여전히 미흡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며 2주기가 다가옴에도 여전히 국가 대개조론, 진실규명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도 같은 날 “2차 청문회에서 새로운 의혹들이 드러났다”며 “추가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는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은 세월호 참사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세월호 참사에는 미심쩍은 구석들이 많은데 언론이 주목하지도 않을 뿐더러 편파보도를 한다고 느낀 까닭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언론이 할 일은 단순하다. ‘기억’하는 것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은 기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기억하기 싫은 것”이라면서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세월호의 이슈화를 배제하고 희석시킨 것이다. 진정 편파·왜곡 보도를 막기 위해서는 기자 개개인의 노력보다 경영진과 정치권력이 언론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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