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탄핵정국에 숨은 개혁 열망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여야 정치인 모두 퇴진하라" "대통령선거·의회선거 다시 하자"


최근 브라질 상파울루 시에서 벌어진 시위 현장에 등장한 플래카드는 여야 유력 정치인의 사진과 이런 구호로 채워졌다. 호세프 대통령과 룰라 전 대통령, 테메르 부통령, 연방상원의장, 연방하원의장, 야권 대선주자 모두를 겨냥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과 사법 당국의 권력층 부패 수사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브라질 사회가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부패 수사에 환호하던 시위 현장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난 3월 중순에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꺼져가던 대통령 탄핵 추진 동력을 되살려냈다. 연방하원은 탄핵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위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4월 중순에 탄핵 안을 놓고 표결이 이루어진다. 연방하원 의원 513명 가운데 3분의 2(342명) 이상이 찬성하면 탄핵 안은 통과된다. 연방상원에서 81명 의원 중 3분의 2(54명) 이상이 찬성하면 탄핵 안이 최종 가결된다. 그렇게 되면 호세프 대통령은 2018년 12월 31일까지인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퇴출되고 테메르 부통령이 정권을 넘겨받는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권 이양이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원내 1당이자 부통령과 상원의장, 하원의장이 속한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이 연립정권 탈퇴를 선언하며 정국을 한바탕 뒤흔들었지만, 국민은 PMDB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여론조사에서 테메르 부통령이 정권을 맡으면 국정을 어떻게 운영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잘할 것'이란 답변은 16%에 그쳤다. 한 연방대법관은 PMDB가 집권 노동자당(PT)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현실을 개탄하기도 했다.


▲브라질 일간신문 에스타두 데 상파울루 온라인 캡처.

언론도 서서히 정치 현실에 등을 돌리고 있다. 한 유력 일간지는 이례적으로 1면 사설을 통해 "국정 주도권을 상실한 호세프 대통령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설의 제목을 '호세프도 테메르도 아니다'로 달아 테메르 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에도 불신을 나타냈다.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 추진 세력이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있지만, 분명한 답변은 절대로 사퇴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곧바로 응수했으나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여론조사에서 호세프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의견이 70%에 육박하고, 자진 사퇴에 찬성하는 의견도 65%에 달했다. 연방하원에서는 다수 의원이 호세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부터 14년째 계속되는 PT 정권이 그리 쉽게 주저앉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호세프 대통령과 PT는 PMDB의 연립정권 탈퇴로 공석이 된 각료직을 다른 정당에 배분하면서 새로운 연립정권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연립정권 재구성'에 성공하면 탄핵 정국을 돌파하고 국정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다.


정치활동을 공식 재개하고 2018년 대선 출마 의사까지 밝힌 룰라 전 대통령이 특유의 정치력으로 호세프 대통령을 위기에서 구해낼지도 관심이다. 룰라는 어떤 형식으로든 국정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탄핵 공세를 끝내 막아내기 어려워지면 호세프 대통령과 PT가 대선과 의회선거를 다시 치르자는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부통령과 연방 의원을 새로 선출해 정치혼란과 국론분열을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것이 문제의 해결책인지 확언할 수 없다. 그보다는 "대통령 탄핵이 유일한 솔루션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귀가 더 기울여진다. 정치 권력의 편중과 경제·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브라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좌파에서 우파 또는 우파에서 좌파로의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브라질을 바꾸는 개혁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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