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펜던트의 윤전기와 네이버의 모바일 플랫폼

[언론 다시보기] 예병일 플루토미디어대표

▲예병일 플루토미디어대표

‘STOP PRESS(인쇄를 멈추다)...our final printed edition(우리의 마지막 인쇄판) 1986~2016.’


지난 주말 영국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표지에 눈에 확 띄는 문구가 실렸다. ‘가디언’과 함께 영국의 유력지로 꼽히는 대표적 독립신문의 마지막 종이판은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불쑥 다가왔다. 한 때 40만부를 넘어섰던 발행부수가 4~5만부 수준으로 떨어지고 연간 적자 규모가 400억 원에 달하자, 이 유력지는 ‘윤전기 포기’를 선언했다. ‘인디펜던트’는 사설에서 시적이면서도 비장한 톤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윤전기는 멈췄다. 잉크는 말랐고, 신문은 더 이상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장이 끝나면 또 다른 장이 시작된다. ‘인디펜던트’의 정신은 언제나 살아있을 것이다.”(Today the presses have stopped, the ink is dry and the paper will soon crinkle no more. But as one chapter closes, another opens, and the spirit of The Independent will flourish still.)


이 문구를 접하고 전통 미디어의 ‘상징물’에 대한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SBS에 입사해 거대한 지상파 방송 송출 시스템을 처음 보았던 것과, 이후 조선일보에 입사해 지하층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거대한 윤전기를 보았던 장면이다. 그리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디펜던트’는 정말 약속대로 윤전기가 아닌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계속 꽃피울 수 있을까?”


‘인디펜던트의 윤전기’는 이제 인터넷, 더 정확히는 ‘모바일’로 바뀌었다. 언론사의 미래는 이 모바일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래서인가? 한국의 주요 신문사들이 요즘 앞 다퉈 네이버의 모바일과 제휴에 나서고 있다. 첫 스타트는 조선일보가 끊었다. 양 사가 지난달 조인트 벤처를 설립해 일자리 콘텐츠를 제공하는 ‘잡앤(JOB&)’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이달에는 매일경제가 네이버와 함께 여행과 레저 분야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다른 신문들도 어떤 콘텐츠를 가지고 네이버 모바일에 ‘입점’할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공동창업자인 안드레아스 휘탬 스미스(사진 아래)와 편집국 스탭들이 1896년 10월 인디펜던트 창간호를 펼쳐보고 있다. 인디펜던트는 지난 26일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하고 온라인 전용매체로 새 출발했다. (인디펜던트 웹사이트)

전통 미디어들은 인터넷에 이어 모바일에서도 ‘플랫폼 구축’에 곤란을 겪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네이버 모바일과의 협업은 매력적이다. 웹에 이어 모바일까지 포털에 종속될 위험이 크지만, 동시에 당장의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3월19일자 사보를 보니, ‘잡앤’의 설정자 수가 17일 현재로 116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출범 19일 만에 모바일 구독자 100만명을 확보했다는 얘긴데, 전통 미디어가 자체 앱 구축을 통해 달성해내기는 힘든 성과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협업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전략을 쓰는 셈이다.


네이버 입장에서도 미디어들의 입점 경쟁은 반가운 현상이다. 언론사들이 좋은 콘텐츠를 책임지고 만들어 제공하겠다고 줄을 서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네이버 담당자라면 언론사들을 적절히 경쟁시키는 등 이런 상황을 즐기면서, 자체 역량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쏟아 부을 것이다. 네이버는 자사의 모바일 독자들이 좋아할 양질의 콘텐츠로 플랫폼을 풍요롭게 채워가면서 모바일 생태계에서 플랫폼 이니셔티브를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네이버와 협업하는 언론사 담당자라면 ‘진지전’을 준비할 것이다. 상황상 ‘입점’하기는 했지만 모바일 플랫폼 운영의 노하우를 배우면서 ‘독립’을 꿈꿀 것이고, 잘 안 풀리면 모바일 생태계 안에서 ‘나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으로 우선 시작할 것이다. 비록 작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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