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신의 한수'에 현장 기자들은 전율했다

이세돌-알파고 대국 취재
온라인중계·기사마감 분투
구글 상업주의 우려 목소리

  • 페이스북
  • 트위치

“이세돌 9단이 오히려 알파고처럼 두네요. 자충수를 감수하면서 알파고의 수를 이끌어냅니다.” “이세돌 9단의 흑돌이 찌그러진 느낌이네요. 알파고가 좋아 보입니다.” 15일 열린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5국. 중앙일보가 선보인 ‘디지털 라이브’에서 기자, 전문가들이 실시간으로 대국을 설명한 내용이다.


지난 9~15일 서울에서 열린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지상파, 보도채널, 종편 등을 통해 전파를 탔다. 신문은 일주일 내내 대국 관련 기사를 큼지막하게 실었고, 여러 언론사는 자체 웹사이트에서 대국을 생중계했다. 중앙일보, 한겨레 등은 온라인 생중계뿐 아니라 기자들이 직접 나서 대국 상황을 해설하는 문자중계도 선보였다. YTN 등에선 기자가 실시간으로 대국을 분석하기도 했다.


▲김동민 YTN 기자, 김창금 한겨레 기자, 서정보 동아일보 기자, 정아람 중앙일보 기자, 이홍렬 조선일보 기자, 엄민용 경향신문 기자.(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

특히 바둑을 모르는 독자들이 쉽고 흥미롭게 대국을 관전하도록 활약한 기자들이 눈에 띄었다. 동네바둑으로 내공을 키우거나 공인 아마 4~6단을 보유한 기자들, 한때 프로를 지망했던 ‘미생’들도 주목 받았다. 이들은 대국 현장 취재와 온라인 해설, 기사를 마감하느라 누구보다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디지털 라이브’ 문자중계에 참여한 정아람 중앙일보 바둑담당 기자(아마 6단)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문자중계는 회사 차원에서도 첫 시도였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며 “현장 취재하며 중계하다 보니 더 쉽고 생생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바둑담당 기자들은 이번 대국이 바둑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엄민용 경향신문 기자(바둑기자단 간사)는 “구글이 막대한 자본과 엄청난 천재들을 앞세워 첨단과학으로 만든 인공지능과 인간이 싸운 것이다. 이 9단이 알파고에 졌다는 것보다 그가 4국에서 알파고에 이긴 것이 더 대단한 일 아닌가”라며 “이 9단이 4패로 이번 5번기에서 패배했지만, 바둑을 사랑하는 이들의 낭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동양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로 외형이 넓어져 바둑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국을 중계한 김동민 YTN 스포츠부장(아마 6단)은 “바둑은 손으로 나누는 대화라는 뜻인 ‘수담(手談)’으로 불린다. 그만큼 인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알파고의 바둑은 아름답지 않다”며 “알파고가 바둑이 지닌 고유의 정신을 흔들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바둑의 정석을 벗어난 새로운 수에 대한 생각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바둑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5번기 제4국이 열리고 있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 마련된 미디어 해설실에서 취재진들이 대국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뉴시스)

아쉬움과 우려도 공존했다. 정아람 기자는 “알파고는 이 9단을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알파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안일하게 대응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바둑에는 ‘기도(棋道)’라는 하나의 문화나 정신이 있는데 알파고가 이 9단을 이긴 것을 수리적 계산만으로 ‘정복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창금 한겨레 기자도 대국 준비 절차의 아쉬움과 구글의 상업주의를 언급했다. 김 기자는 “이번 대결은 전통 바둑 대국과는 달리 인간과 기계라는 전혀 다른 형식이었다. 이 9단의 의지가 강하긴 했지만 바둑계에서도 심사숙고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며 “구글은 이번 이벤트로 자신들이 인공지능기술 분야의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자들은 대국을 바라보는 외신기자들과의 인식 차이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는 “1국 다음 날 한국 언론엔 1면부터 3~4면에 걸쳐 관련 기사가 나왔다. 이를 본 한 외신기자는 연신 흥미롭다면서 신문을 사진으로 찍어가기까지 했다”며 “마치 휴대폰 신제품 출시 행사장 같은 분위기였다. 바둑에 대한 문화적 차이가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정보 동아일보 기자(아마 5단)는 “외신기자들은 바둑이 아니라 구글 행사를 취재하는 것이다. 특히 외신 독자들은 바둑을 잘 모른다”며 “이 9단이나 알파고가 이겼다는 것에 동양권처럼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일주일간 수없이 쏟아진 대국 보도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창금 기자는 “바둑 고수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맞붙는 것인데 언론이 인간 대표, 기계 전체의 대결이라고 표현해 대국의 의미를 왜곡하고 과장한 측면이 있다”며 “바둑만 인간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외신들의 접근방식이 오히려 더 정확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저널리즘 측면에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달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