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와 언론

[언론 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얼마 전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 시킨데 이어 이해찬 의원까지 컷오프 시킴으로서 더민주 공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 국면으로 빠져들게 됐다. 당연히 예상되었던 열혈 지지층의 반발과 친노패권이라는 보수언론의 악의적 프레임에 갇힌 악수라는 비판은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축해버렸다. 필리버스터 중단 사태 때 지지층을 위로하는 제스처로 의원들에게 축전을 보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다. 이제는 더 이상 지지층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표명으로 읽힌다.


김종인 대표의 전략은 오랫동안 보수언론이 야당에게 요구했던 ‘우클릭’ 전략과 크게 궤를 같이한다. 소위 ‘중도 우파’까지를 야권이 포섭하려면 진보적인 색채를 빼고 좀 더 보수우파적인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더민주를 비롯한 야권이 ‘중도 우파’까지를 포섭해야 집권이 가능하다는 건 아마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론으로 ‘우클릭’이 합리적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심스럽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야당의 집권을 결코 원하지 않는 보수언론이 그런 식의 주장을 이끌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스럽지만, 굳이 논리적인 이유가 필요하다면 이젠 누구나 다 아는 프레임 이론의 기초만 봐도 얼마나 잘못된 전략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굳이 여기서 더 지면을 할애해서 반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처럼 효과가 의심스러운 전략을 김종인 대표는 밀어붙이고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김종인 대표가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인지는 몰라도 결코 전략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이라고 하는 이미지조차도 본인 스스로가 정책을 제시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2012년 당시 보수언론이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 만들어낸 프레임의 결과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대선은 이명박 정권의 경제 실패와 그로 인한 빈부격차 증가로 인해 자연스레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화두가 되었다. 집권 여당의 경제실패를 의미하는 화두였기에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는 당연히 달갑지 않은 화두였지만, 당시 전반적인 분위기상 억누르거나 회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자 박근혜 캠프는 경제 민주화란 화두에 대해 일종의 전략적 카드를 제시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김종인’이란 인물이었다.


어떤 이슈든 선거에서 화두가 되면, 그 다음 수순으로 구체적인 정책들에 대한 논쟁이 붙는 게 일반적이다. 과거 무상급식이 선거에서 화두가 되었을 때, 선별적으로 할 것이냐 보편적으로 할 것이냐로 여야간 논쟁이 붙었던 것이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12년 경제민주화의 경우는 양상이 달랐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구체적인 정책들 대신 ‘김종인’이란 인물에 대한 기사가 언론을 통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보니 정책 논쟁은 실종되고 대신 ‘김종인’이 과연 경제민주화의 ‘원조’인가 아닌가라는 엉뚱한 논쟁이 붙게 된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경제민주화라는 이슈를 김종인이란 인물로 자연스럽게 등치시키게 되고, 경제민주화를 누가 잘 할 것인가라는 이슈 역시 ‘김종인’이란 인물을 누가 모셔가는가로 결정이 되는 판(프레임)이 짜여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다 아는 것처럼 박근혜 후보가 김종인 모셔가기에 성공함으로써 손쉽게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한다.


이후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이후 김종인씨와 그로 상징되어지는 경제민주화를 버리고, 새누리당 본연의 수구적 경제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결국 김종인씨는 경제민주화로서도 전략가로서도 2012년 대선만 놓고 보면 어떠한 능력도 스스로 보여주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당시 워낙 많은 언론들이 김종인씨를 경제민주화와 등치시켜놓았기 때문에 그러한 상징성은 지금까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 문재인 전 대표 역시 바로 그런 효과를 생각해서 김종인씨를 비대위 대표로 모셨을 것이다. 경제민주화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어달라고 부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김종인 대표가 갑자기 고도의 선거전략가가 되어 공천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때맞춰 일부 언론들엔 그가 소년 시절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정치를 배운 ‘정치 고수’라는 기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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