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는 브라질

[글로벌 리포트 | 남미]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브라질은 지난 2013년 한바탕 혼란을 겪었다. 제1 도시 상파울루를 비롯한 지방정부들의 대중교통요금 인상에 반대하며 그 해 6월부터 시작된 시위는 시간이 흐르면서 부정부패 척결과 공공서비스 개선, 복지와 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요구하는 국민적 저항운동으로 번졌다.


1950년 이후 64년 만에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대회의 함성에 묻혀 2014년은 그럭저럭 넘어갔으나, 2015년부터는 본격적인 위기가 닥쳤다. 사상 최악의 경제 침체 속에 정치권은 대통령 탄핵 정국에 빠져들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정부 회계가 재정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경제정책 실패와 연립정권 내 불협화음이 원인이었다.


이후 연방하원이 각 정당 대표들로 이루어진 탄핵 특별위원회를 비밀투표로 구성한 사실을 연방대법원이 불법으로 규정해 제동을 걸면서 탄핵 추진력이 다소 약화했으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남미대륙에서 최초로 올림픽이 열리는 2016년은 지카(Zika) 바이러스 공포가 덮쳤다. 지카 바이러스가 선천성 기형인 소두증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전국이 발칵 뒤집혔다. 정부가 22만 명의 군인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방역작업에 나섰으나 국민의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방역요원과 군인이 한 조를 이뤄 각종 시설물을 찾아 다니면서 모기의 번식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딘 북동부 지역의 보건소 앞에서는 10시간 이상을 기다리다 지친 주민이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주요 신문에 실렸다.


브라질은 2013년부터 국가적 위기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정치권은 개혁을 요란스럽게 떠들어댔으나 바뀐 것은 없다. 정부는 경제를 살리겠다며 연일 처방전을 내놓고 있으나 진전이 거의 없다. 지카 공포의 출발점이 열악한 공공보건이라는 것은 상식이지만 그저 말뿐이다.


요즘 브라질에서 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카 바이러스가 소두증과 열성 질환인 뎅기 열병·치쿤구니아 열병 외에 기억상실증도 유발한 것 같다는 말이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도 위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과거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에게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이는 곧 리더십의 부재를 질타하는 말이기도 하다.


경제 위기가 초래한 재정난과 치솟는 물가는 사회복지정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9개 주요 사회복지 프로그램 가운데 작년에 8개의 예산이 축소됐다. 올해도 사회복지 예산 축소가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2003년부터 14년째 계속되는 좌파 노동자당 정부는 난감한 상황을 맞았다.


경고음은 여러 곳에서 들리고 있다. 정부와 집권당에서는 올해 상반기 안에 미세한 경기회복 신호라도 나오지 않으면 민심이 완전히 돌아서버릴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들린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룰라 전 대통령 정부의 정책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위기 극복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권은 사분오열이다.


최근 브라질 국가신용등급을 잇따라 강등한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재정악화와 물가상승, 통화가치 하락 등 경제 요인보다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더 큰 위기 요인으로 꼽았다.


브라질 최대 시중은행인 이타우 우니방쿠(Itau Unibanco)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일란 고우지파인(Ilan Goldfajn)은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경제 진단으로 유명하다. 그는 현재의 브라질을 1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강등된 프로축구팀에 비유했다. 2부로 떨어진 팀이 저절로 1부로 올라가는 일은 없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브라질은 1부 승격은커녕 3부로 추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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