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폐쇄와 웃지 못할 코미디

[언론 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

지난 2월 13일자 주요 일간지 1면은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장식했다. 홍 장관은 그 전날인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개성공단 자금 핵· 미사일 개발에 쓴 자료 있다”고 핵폭탄급 발언을 했다. 그 주장은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 내내 인터넷을 화끈하게 달궜다.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격 중단’에 충분한 명분이었다.


홍 장관은 13일 오후에는 KBS의 ‘일요진단’에 출연해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등 70%가 당 서기실 등으로 상납되는 것을 여러 경로로 확인했으나, 정보자료라 공개할 수 없다”고 했고, 14일에 방송됐다. 장삼이사의 실없는 농담이 아니라, 교수 출신 통일부 장관의 무게 있는 발언이었다. ‘받아쓰기만 하는 언론’이란 비판을 받더라도 주요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홍 장관이 1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증거가 있는 건 아니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홍 장관의 12일 발언’은 널리 알려져 이미 시민들의 머리  속에 ‘개성공단 폐쇄는 잘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뒤였다. 개성공단 입주 중소기업인들이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에 뒷돈을 댄 반역자처럼 됐으니, “다 망하게 생겼다”고 피눈물을 뿌릴 때 시민들은 공감할 수 없었다. 홍 장관이 허위 정보나 불완전한 정보로 여론을 호도·왜곡하는 선전선동에 주류 언론을 활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은 ‘합리적인 의심’이 된다. 문득 정부의 대국민 사기극으로 밝혀진 ‘평화의 댐’이 떠오르기도 했다.


통일과 국가안보를 다루는 박근혜 정부의 발언들이 슬립스틱 코미디 같아서 헛웃음이 나오는데 그 와중에 홍 장관은 다시 한 번 입장을 바꿨다. 지난 2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연설에서 홍 장관이 부인했던 발언을 반복해 발언한 덕분이다.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 것도 북한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해 북한으로의 외화유입을 차단해야 한다는 엄중한 상황 인식에 따른 것”으로 “우리가 지급한 달러 대부분이 (중략)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세종 간 화상 국무회의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런 발언은 국제적인 문제도 야기한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의 지적처럼 홍 장관과 통일부 보도자료, 박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한국 정부는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유엔안보리 대북제제 결의 제2094호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이 된다. 이 유엔 결의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도움이 되는 금융과 현금의 제공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의 발언들이 진실이라면 국제사회를 향해 거짓말을 해온 것이 되고, 또 관련된 발언들이 진실이 아니라면 대국민 거짓말이 된다.


지난 19일 원·달러 환율은 1230원대로 치솟으며 원화 가치가 추락했다. 2010년 6월 30일 이래 최고로 원화가치가 낮아졌다. 남한 정부가 북한을 시원하게 응징하고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왜 그럴까.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15일 평가한 내용을 잘 새겨야 한다. 무디스는 “개성공단의 폐쇄(closure)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조시켜 한국의 국가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국가의 자본수지와 경상수지, 재정수지를 훼손해 채무 상환을 어렵게 하고 외국인 직접투자를 낮추며 공공 및 민간 영역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지난해 12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될 경우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안보 없는 경제발전도 없겠지만, 경제발전 없는 안보도 존재할 수 없다. 


국방·안보 현안은 관련 정보를 독점한 정부의 발표를 신뢰해 보도할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벼룩을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것은 아닌지를 부족한 정보 속에서라도 언론이 잘 들여다보고 비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