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만 앞세우는 연봉제에 얇아지는 월급 봉투

언론사 연봉제 속속 도입
개인성과 따라 차등 지급
기자실적 객관 평가 의문
상사 눈밖에 나면 하위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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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연봉제로 전환하면 손해 아닌가요?” 한 일간지 8년차 A기자는 고민이 많다. 3년 전 회사가 자체적으로 연봉제를 실시한 이후 매해 임금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올해 3살이 되는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불규칙적인 수입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는 “예전보다 사내 분위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연봉제 탓이 있다”며 “기사량 등 실적 경쟁뿐만 아니라 사내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에 신경쓰게 돼 불편하다”고 고백했다.


내근 부서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주요 일간지 온라인 부서의 5년차 B기자는 “최근 온라인 혁신이다 뭐다 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간부급부터 온 힘을 쏟고 있는데, ‘한 건 해보자’는 식으로 겉으로 실적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답했다. 간부 평가가 인사평가에 반영되고 연봉에까지 고스란히 직결되기 때문. B기자는 “총 30여명에 달하는 부서원 중 2~3명만이 최고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며 “간부가 아이디어를 내면 대다수의 직원들이 입맛에 맞는 기획안을 내는 데 급급해 이후 실제 결과물은 ‘나몰라라’하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서울신문 노사가 임단협을 벌이는 모습(왼쪽·서울신문 노조 제공)과 MBC가 올해부터 시행하는 간부연봉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노보 191호.


효율 경영 내세우며 연봉제 전환
최근 경영 효율화 차원에서 추진 중인 연봉제가 언론사에서도 이미 적용됐거나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협회보가 방송·신문·통신사를 포함한 22개 언론사의 ‘2016년 임금 체계 현황’을 분석한 결과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는 KBS와 YTN, 경향신문, 한겨레신문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연봉제를 하고 있거나 진행 중이다. 특히 한국경제신문의 경우 그동안 차장, 부장 등 간부급에 한해서만 적용되던 연봉제를 올해부터 평기자로 확대해 인사평가(S·A·B·C·D)를 통해 임금에 반영하도록 했다. 동아일보와 연합뉴스도 경력에만 한하던 연봉제를 전 사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동아는 먼저 간부들을 대상으로 시행할 방침을 논의 중이고, 임금협상이 진행 중인 연합 또한 연봉제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봉제는 성과위주로 임금이 책정되는 만큼 보다 효율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일을 안 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덜 주고 잘 하는 사람에게는 더 줘서 사기를 높이는 등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 또 조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데도 한 몫한다. 인사평가가 임금과 승진 등 개인 이득에 직격탄으로 작용하는 만큼 직원들이 보다 일에 집중하게 되고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그동안 호봉제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저연차들은 연봉제를 반기는 분위기다. 경제지 5년차 한 기자는 “지난해 메르스가 터졌을 때 사회부의 어린 연차들은 일이 많아 허덕였는데, 다른 부서의 선배들은 오후에 출근해 지시만 내리고 퇴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며 “동기들끼리 ‘차라리 연봉제로 바뀌니 억울하진 않다’는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밝혔다.

“무늬만 성과 중시” 기자들 불만
하지만 대다수의 기자들은 연봉제의 폐해가 상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기적으로 볼 때 호봉으로 오른 비율보다 연봉제로 오른 비중이 확연히 낮다는 것. 한 주요 일간지 정치부 기자는 “무늬만 성과능력주의지, 결국 회사의 임금절감을 위한 눈속임 아니겠느냐”며 불만을 표했다. 또 다른 일간지의 한 기자도 “20년 근무로 따져서 환산해볼 때 약 1억 원 정도의 임금이 차이나는 것으로 계산됐다”며 “이 때문에 연봉제 체계를 다시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호봉제보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점도 기자들에게는 불만의 요소다. 주요 일간지의 온라인부서 기자는 “작년보다 올해 임금이 더 깎일 수 있기 때문에 장기 계획을 세워놔도 불안한 마음이 있다”며 “실제로 획기적인 혁신안을 제시하려 해도 간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 오히려 회사로서도 손해 아니겠나”라며 반문했다.


실제로 한국일보의 경우 지난 2000년 기자들이 직접 호봉제와 연봉제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이후 내부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정해진 파이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 임금이 오르면 누군가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연봉제로 전환하면 150%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실제론 호봉상승분에 따라가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한국일보는 현재 운영 중인 인사평가 시스템을 2~3년 내에 인센티브 방식으로 연봉제에 적용할 계획이다. 지난 2006년부터 호봉제와 연봉제를 혼재해 적용하고 있는 국민일보 노조도 현 임금 체계를 ‘불완전 연봉제’라며 개선이 필요하단 지적을 내놨다. 기본승급분 2.5%가 있지만 호봉제와의 임금 격차를 피할 수 없다는 노조원들의 불만이 제기됐기 때문. 서울신문 또한 평균 임금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호봉제와 연봉제의 격차가 커, 노조가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다각도로 방법을 모색 중이다.

“작년보다 연봉 깎일 수도...”
연봉제는 연차별로 따로 책정되기도 한다. SBS는 차장까지 호봉제, 부장부터는 연봉제를 적용한다. 연봉제도 매해 올라가는 기본승급분이 있지만 호봉제보다는 확연히 적다. 1:1로 임금협상을 하는 TV조선은 전 직원이 연봉제로, 그동안 기자들마다 임금 상승률 적용을 달리해 연차별 격차를 줄이고자 노력해왔다. 조선일보도 지난달 13일 차장 대우의 평균 연봉 대비 2%, 15년차 미만의 평기자는 연봉의 7% 인상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15년 임금협상에 합의했다. 2006년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적용하고 있는 조선은 기본승급분이 없기 때문에 지난해 높은 평가를 받더라도 올해 낮은 평가를 받으면 연봉이 깎일 수 있다.


특히 경력기자들은 연봉제와 관련해 말 못할 고충이 많다. 현재 뉴시스와 동아일보, 연합뉴스 등은 경력 공채로 들어온 직원들에 한해 연봉제를 적용하고 있다. 중앙일보(JTBC)는 인사평가(A·B·C)를 기반으로 하는 전원 연봉제이지만 경력 입사자의 경우 저마다 다른 기준이 적용돼 동기들끼리라도 연봉이 천차만별이다. JTBC의 한 경력 기자는 “전 직장 연봉의 15%를 추가로 받는다는 조건 때문에 선배가 지방지상파에서 옮겨온 후배보다 더 못 받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체계적 평가 기준 절실
인사평가를 기준으로 임금을 책정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자라는 직업적 특성상 실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들다는 것. 주요 일간지의 한 기자는 “시청률과 발행부수가 그나마 객관적인 지표인데, 어떻게 이것만 보고 그 사람의 취재력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며 “양적 평가보다는 ‘어떤 기사를 썼는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하는 게 기자라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면 되는 것 아니겠냐’는 무사 보신주의가 만연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주요 일간지의 온라인 부서 기자는 “결국 광고나 행사 등 ‘얼마나 땡겨왔나’에 따라 실적이 정해질 수 있고 ‘얼마나 말을 잘 듣느냐’에 따라 승진과 임금 등이 정해질 수 있는 만큼,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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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연봉제 ‘직원 길들이기’ 우려”
MBC, 보직자 연봉제 도입…“충성경쟁 유도” 비판


연봉제가 ‘직원 길들이기’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사평가에 따라 임금이 차등 지급 되는 구조인 만큼 얼마든지 연봉제를 ‘회유책’으로 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MBC ‘간부 연봉제’가 논란이 된 이유다. MBC는 지난해 7월 “보직자가 적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성과 기반의 인사제도를 강화하겠다”며 올해부터 보직자 대상 연봉제를 도입했다.


노조는 ‘보직자 길들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김재철 사장 이후 보직자의 처우는 인사평가제도와 임금, 수당 등 모든 측면에서 우대조치 일색으로 바뀌어 왔다”며 “보직자와 비보직자의 임금 격차를 확대해 경영진의 말을 듣게 하려는 꼼수”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MBC는 그동안 간부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을 펴왔다. 지난 2010년 직위수당이 2배 인상된 데다 2012년 파업 이후부터 평일 시간외수당 지급, 2014년부터 임금피크제 일시 중단 등 보직자 처우 우대 정책이 이어져 온 것. MBC 한 기자는 “더 많은 급여를 차등적으로 지급해 충성경쟁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편적인 연봉제 사례는 아니다”며 “더 큰 문제는 보신주의가 심해지고 간부끼리도 대화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회사는 망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평가 과정에서도 간부에게만 특혜를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MBC 인사평가는 S, T, O, N, R 등 5단계로 구성되는데 올해부터 간부 평가에선 R등급이 빠졌다. ‘R’은 세 번이면 징계받을 수 있고 저성과자 교육 대상자가 되는 등급이다. 사실상 간부들에게 인사평가 불이익에서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MBC는 “경쟁이 심화된 방송환경에서 더 좋은 콘텐츠를 개발한 인재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호봉제보다 연봉제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간부 연봉제 논란과 관련해) 아직 시행 단계 전이라 (내부에서) 검토 중이다”고 설명했다


기자의 경우 일반 기업처럼 업무성과를 수치화·객관화해 인사평가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결국 정량적 기준이 아닌 정성적 평가가 이뤄져 평가 자체의 공정성이 지켜질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한 언론사의 인사평가는 리더십, 업무능력 등 주관적 평가항목으로만 구성돼 있다. 평가자에게 잘 보인다면 업무능력과 상관없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A언론사 한 기자는 “부서별로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막내라거나 미혼자니까 낮은 등급을 받으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하소연했다. B언론사의 기자는 “그나마 객관적인 평가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게 기사 조회 수나 작성한 기사 개수, 협찬·광고 영업 등에 불과하다”며 “하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기자가 지녀야 할 업무능력과 직결되는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모 언론사 노조 관계자는 “이미 많은 언론사가 연봉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노사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인사평가 항목과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이런 노력과 시행착오 없이 무턱대고 연봉제를 도입한다면 기자는 사내 평가에 목메는 일반 직장인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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