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과 다른 '언론의 길'

[언론 다시보기] 예병일 플루토미디어대표

▲예병일 플루토미디어대표

알리바바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최근 약 3000억원에 인수했다.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업체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112년 역사의 홍콩 유력 영자지를 품에 안은 것이다.


‘IT기술과 미디어 콘텐츠의 결합’. 여기에 또 하나의 사례가 추가된 셈이다. 2년 전에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존과 워싱턴포스트가 결합을 통해 이미 ‘소기의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미디어 산업 진출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6월에 중국 최대 경제지인 제일재경일보의 2대 주주가 됐고, ‘중국판 유튜브’로 불리는 동영상 업체도 인수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운영하는 중국의 2대 뉴스 포털 사이트 시나닷컴 인수에도 관심이 크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두 결합 사례의 공통점은 흥미롭다.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각각 세계 경제규모 1위와 2위인 미국과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이다. 그들이 인수한 워싱턴포스트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역사로 보나 현재의 명성으로 보나 최고의 유력 신문들이다. 미국과 중국에서 모두 ‘대표 IT기업’이 ‘대표 신문사’를 인수해 테크놀로지와 콘텐츠의 융합에 의한 시너지를 노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이 언론사를 품은 이유는 명확하다.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해 자신의 생태계를 ‘완성’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e커머스, 그리고 킨들이라는 디바이스나 금융서비스 제공이라는 현재의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종합 IT 미디어-콘텐츠 서비스 기업’이 되려 하고 있다. 유력 언론사 인수를 통한 기업의 신뢰도 제고 효과도 노리고 있다. 인수되는 미디어 입장에서도 경영난과 불투명한 미래라는 난제를 해소할 수 있다.


이렇듯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해볼 만한 시도인데, 하나 문제는 남는다. 공동체 시스템 차원의 정치적인 문제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가 아닌가. 대형 IT기업에 인수된 언론사가 계속 언론 본연의 기능을 지속할 수 있을까. 당장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경우 중국 정부에 대한 신문의 비판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런 ‘IT기술과 미디어 콘텐츠의 결합’에서 아직 눈에 띄는 사례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데, 사실 그 원인도 정치적인 이유와 관련이 있다. 한국의 대표 IT기업이나 IT 창업자라고 미디어에 대한 생각이 다를까. 들어보면 당연히 관심들이 있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 정치 풍토에서 만일 유력 IT기업이 언론사를 인수하면 즉시 보수, 진보 양측으로부터 “너는 누구 편이냐?”는 질문이 쏟아질 테니, 정치 리스크가 본업을 뒤흔들까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쨌든 이래저래 결국 미디어는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콘텐츠 기업’과 ‘언론’이라는 두 가지로 ‘가는 길’이 더욱 명확히 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둘은 ‘길’이 다르다. IT기술을 기반으로 유익하고 흥미로운 콘텐츠와 정보를 제공하면서, 그 과정에 쌓이는 빅데이터를 제품과 서비스 판매에 활용하는 ‘콘텐츠 대기업의 길’. 그리고 매출과 이익은 크지 않지만 민주주의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언론의 길’.


두 길은 다르니, 서로 남의 길을 힐끗 쳐다볼 필요도 없고 부러워하거나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어느 길을 갈지 결정하고 그 길을 묵묵히 갈 일이다. 그 과정에서 불투명한 미래라는 난제를 타개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그 방법의 단초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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