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훈장' 불방 수순? "박정희 내용 삭제 지시"

사측 "불방 아닌 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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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박정희 정부 시대에 대한 평가가 담긴 KBS프로그램 ‘훈장 2부작’이 불방의 수순을 밟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시사제작국 간부들은 두 달 가까이 데스킹을 보면서 박정희 당시 국개재건최고회의의장이 5·16쿠데타 직후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총리에게 보낸 친서 등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의 삭제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훈장 2부작’은 ‘훈장을 통해 본 대한민국 70년의 역사’를 주제로 KBS탐사보도팀이 지난 2013년부터 준비해 온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은 행정자치부와의 정보공개청구 소송 등을 거쳐 대한민국에서 수여된 훈장 70여만건의 내역을 단독입수했고, 이를 통해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대한 평가가 포함된 ‘간첩과 훈장(1부)’, ‘친일과 훈장(2부)’ 등을 제작해왔다.


▲KBS 프로그램 '훈장'이 불방의 수순을 밟고 있는 모양새다. 사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 (연합뉴스)


KBS ‘훈장 2부작’ 제작진은 지난 26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훈장 2부작 사실상 불방 수순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KBS역사상 유례없는 두 달 가까운 시간동안 데스킹을 받으면서도 제작진은 방송을 내야한다는 일념 아래 성심성의껏 데스크의 의견을 최대한 받아들였다“며 ”결론은 참담하다. 1,2편 모두 방송을 기약할 수 없다. 아직 방송일조차 정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제작진은 ‘간첩 조작 사건의 수사관들이 훈장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됐다’는 내용의 ‘간첩과 훈장(1편)’의 데스킹이 마무리돼 이달 20일 방송 예정이었지만 돌연 특집이 잇따라 편성되면서 기약 없이 방영이 미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산가족생방송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관련한 특별대담 편성으로 한 주 미뤄졌던 방송일이 ‘시청자 칼럼 우리 사는 세상 4천회 특집’의 갑작스런 편성 등으로 계획된 불방의 수순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제작진의 입장이다. 이대로라면 당초 예정됐던 7월 말 기준으로 석 달째 방송이 못 나가고 있는 셈이 된다.

‘친일과 훈장(2부)’이 처한 상황은 좀 더 심각하다. 현재 제작진과 간부의 관련 논의가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총 6차례 데스킹을 거치면서 원고의 상당 부분이 수정됐지만 시사제작국 간부들은 “‘수정’차원이 아닌 ‘새로운 프로그램’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제작진의 입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간부들 요구의 핵심은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이 대부분인 약 3분의 1 가량을 삭제하라는 것이다.


제작진은 ”역대 집권 기간이 가장 긴 박정희 정권 부분을 빼고 훈장을 통해 본 광복 70년을 얘기할 수 있을까“라며 ”제작진이 양심을 저버리거나,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 한, 2편은 불방될 것이 명확해 보인다“고 토로했다.

특히 지난 29일 재차 올린 성명에서 제작진은 시사제작국 간부가 삭제 지시를 내린 부분 중 일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 아베 일본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전 총리에게 보낸 친서라는 사실을 밝혔다.


성명에 따르면 시사제작국 탐사제작부장은 박 전 대통령이 기시 전 총리에게 한일 수교협상과 관련해 보낸 친서 중 “귀하에게 사신을 드리게 된 기회를 갖게 되어 극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인사말 등의 삭제를 지시했다. 이 친서를 직접 촬영해 공개하는 것은 국내 언론 가운데 KBS가 최초였다.  

제작진은 “인사말을 넣은 것은 이 부분이 당시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대변해 주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며 “(부장이) 빼자는 논리는 ‘외교 관례상 의례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외교문서 등에 통상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은 ‘귀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정도 아닌가...(중략)...친서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의 최고 권력자와 일본의 막후 실력자’ 사이의 대등한 위치보다는 ‘사병과 장교’, ‘제자와 스승’ 관계 정도로 느껴졌다”고 부연했다.  

제작진은 “그러나 부장의 의견을 수용해 관련 부분을 삭제했다. 그 다음 요구는 무엇이었나? 일본인 훈장 관련 내용 전체를 다 삭제하는 것이었다”며 “원고 수정을 요구하고 나서 나중에 ‘데스크가 필요 없으니 내용 자체를 다 삭제하라’는 요구가 타당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김형덕 시사제작국 부장은 앞서 지난 26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수신료 현실화를 위한 공영방송 역할’을 주제로 한 전사적인 편성 조정으로 순연됐을 뿐이다. ‘계획된 불방수순’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면서 “제작진은 방송 목표일을 앞두고 정당한 지적에 대해 끝까지 수용을 거부하고 그것이 마냥 일방적인 글을 게시해 책임을 데스크에게 돌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부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서에 대해서는 “2009년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는 이유로, 6.25전쟁의 전쟁영웅에게 수여된 무공훈장 수여가 적절했는지 따지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라고 강변했다.

김 부장은 이어 29일에도 사내 게시판을 통해 “‘간첩과 훈장’은 주간 편성회의에까지 방송 예정일자가 보고된 사안”이라며 “‘일본인 훈장 부분을 '처음에는 수정, 나중에는 빼라'고 했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어 “박정희 의장의 밀서를 처음으로 공개한다는 주장도, 누구나 인터넷 검색만 해보면 그 내용까지 알 수 있는 것”이라며 사실왜곡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해당 게시글에서도 구체적인 방영날짜를 언급하진 않았다.


이에 사측을 통해 문의했지만 "게시글 내용 외에 더 얘기할 게 없다"는 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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