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실시간 검색어 유지…어뷰징 사실상 방관

어뷰징 방지대책 회피 모습
사업모델 포기 않겠다는 뜻
포털 책임있는 자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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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는 비슷한 내용에 제목만 바꾼 이른바 ‘어뷰징’ 기사들이 넘쳐난다. 기사 어뷰징은 비교적 경영환경이 좋은 주류 미디어나 상대적으로 영세한 인터넷신문을 가리지 않고 일상화되고 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면 비슷한 내용에 제목만 바꾼 이른바 ‘어뷰징(abusing·동일 뉴스콘텐츠 중복 전송)’ 기사들이 넘쳐난다. 트래픽을 통해 광고 수입을 벌어들이는 언론사들이 연예·스포츠 등 가십 기사를 작성하거나 어뷰징 기사를 쏟아내는 것이다.


어뷰징은 얼마나 빠르게, 빈번히 일어나고 있을까? 본보가 지난 1일 하루 종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던 배창호 감독을 키워드로 어뷰징 실태를 조사한 결과 오전 5시14분 ‘고래사냥 배창호, 전동차에 투신…’이라는 첫 기사가 나온 이후 6시간 만인 오전 11시30분, 약 250개의 비슷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로부터 3시간 후인 오후 2시30분 배창호를 다시 검색했을 때는 기사가 100개 늘어나 총 350개의 기사가 검색됐다. 다시 3시간 후인 오후 5시30분, 기사는 그새 60개가 늘어나 있었다. 12시간 동안 배창호 감독이 지하철 선로에 투신했느니, 실족했느니 왈가왈부한 기사들이 총 410개나 쏟아진 것이다. 


문제는 410개의 언론사가 해당 기사를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닷컴을 소유한 주요 언론사 5곳을 조사했더니 이들은 평균 12개의 동일한 기사를 전송하고 있었다. 심지어 제목만 다르고 단 한 글자도 고치지 않은 기사들도 있었다. 기사 어뷰징이 비교적 경영환경이 좋은 주류 미디어나 상대적으로 영세한 인터넷신문을 가리지 않고 일상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지난 1일자 성명에서 “어뷰징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은 소위 ‘인터넷팀’이라는 곳을 조직적으로 운영할만한 인력을 갖춘 유력 언론사들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주류 미디어들은 하루 종일 검색어 기사를 쓰는 아르바이트나 인턴 기자를 고용해 적극적으로 어뷰징 기사를 양산한다. 지난해 한 경제지에서 인턴 기자로 일했던 A씨는 “평균 5~6명에서 많게는 10명 가까이 하루 20~30개의 검색어 기사를 쓴다”며 “한 기사에 동일 키워드를 3번 이상 넣고 사진까지 첨부해야 클릭수가 올라간다고 배운다”고 말했다. 기사 하단에 네티즌 의견을 집어넣으며 ‘고래사냥 배창호 감독, 무사해서 다행이다’ ‘고래사냥 배창호 감독, 목숨은 건졌네’ ‘고래사냥 배창호 감독, 타박상만 입었구나’ 등의 반응을 쓰는 기사 형식은 여기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막자며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는 지난달 28일 언론 유관단체 주도로 매체 평가위원회를 만들겠다는 안을 공동으로 내놨다. 그러나 정작 기사 어뷰징에 책임이 있는 포털이 검색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아 비판이 일고 있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는 “포털 스스로 기사 어뷰징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등 뉴스 서비스의 수준 개선을 위한 기술적 조치는 물론이고 투명하고 엄정한 운영방안 마련에 대해 진전이 없다”며 “언론사들이 직접 나서서 어뷰징 기사, 사이비 언론 병폐 등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의 그늘을 걷어낼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인터넷서비스사업자가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기까지 하다”고 지적했다. 김도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이번 양대 포털의 제안은 미흡한 부분이 많고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며 “구조가 그대로인 상태에서는 평가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단순히 평가위 구성을 제안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언론계에서는 온라인 뉴스 시장 정화도 중요하지만 포털이 왜곡된 온라인 뉴스 유통 구조를 바로잡는 책임도 함께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포털이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9일 사설을 통해 “미국의 구글 뉴스는 자체 기술로 개발한 알고리즘을 통해 개별 뉴스가 아닌 언론사 종합 평가에 따른 뉴스를 선택해 올리고 있다”며 “언론사들이 공들여 만든 뉴스로 막대한 이익과 영향력을 누려온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는 스스로의 기술력과 판단으로 사이비 언론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도 이날 사설을 통해 “포털의 실시간 검색 순위 기능에 의해 어뷰징이 확산되기 때문에 포털 또한 책임이 큰데 양대 포털은 평가위 업무를 언론 유관기관에 맡기고 자신들은 관여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자신들의 책임을 언론에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포털이 기술적으로 어뷰징 방지를 위한 대책은 수립하되 정책적 판단은 포털이 아니라 평가위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성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은 “어뷰징의 경우 군소매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형 매체도 포함된 문제이기 때문에 이들을 평가하고 기준을 적용하는 데 포털이 많은 부담을 느낀 것 같다”며 “포털은 기술적으로 더 노력하고, 평가위는 어뷰징에 대한 기준과 퇴출 등에 대한 정책적 판단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포털이 온라인 뉴스 시장을 정화하려는 취지가 분명하다면 평가위가 어뷰징 등에 있어서 언론의 문제뿐만 아니라 포털의 문제까지 계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 매체의 자격에 대한 평가를 언론 자체에 맡기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계 자체가 평가의 대상인데 이들을 대상으로 평가위를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학자든 시민단체든 공정성을 확보한 단체들이 들어와서 심사를 하는 등 평가위 구성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호 YTN 경제전문기자는 “자사 이기주의, 자사 패권주의가 엄연히 있는 상황에서 언론 유관단체를 중심으로 평가위를 구성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차라리 네이버나 다음카카오가 주도해 언론계와 법조계, 기업, 시민 등을 포함한 평가위 구성안을 내놓는 것이 책임 있는 모습이다.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포털이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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