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돈 참 쉽게 벌더라
서초동의 검찰청에 터를 잡고 여러 사건들을 취재하다 보면 간간이 기자인 나를 돌아볼 때가 있다. 검찰청에 불려 나와 조사를 받는 유명 인사들을 새벽녘까지 기다리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라고 자조할 때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월급쟁이로서 나를 자각할 때는 역시나 ‘거액’의 뇌물을 ‘합법으로’ 받아 챙기는 ‘있는 분’들을 지켜봐야 할 때다.검찰은 최근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수사를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검찰의 핵심 수사 인력이라 할 수 있는 중앙지검 특수1부가 지난해 9월부터 꽤나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사
책 하나로 세상이 바뀌겠는가,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삶을 바꾼다는 게 가능할까. 여러 해 동안 같은 주제로 질문을 던져보고 있다. 책의 효용과 의미에 대해 유보적이거나 회의적으로 변해가는 세상, 확신에 찬 대답을 듣기는 당연히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최근 가장 신념 가득한 어조로 대답한 사람이 있었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김석희(63)씨다.그는 인도의 간디 예를 들었다. 1904년 간디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더반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딴 인도 지식인이 영국 식민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그…
은행의 배당은 달라야 한다
12월19일 삼성전자가 특별배당금 성격으로 작년 대비 30~50% 배당 증대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공시했다. 현대자동차도 연이어 배당 확대를 예고했다. 이게 신호탄이었다. 대기업들의 배당 확대 선언에 국민은행, 우리은행이 맞장구를 치며 배당 확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이다. 이윤은 주주가 댄 돈에 근로자들의 노동이 더해지면서 발생한다. 그래서 기업의 이윤이 급여와 배당이라는 형태로 분배되는 것은 당연하다. 급여는 임직원들에게, 배당은 주주에게 주어지는 대가다. 기업의 이윤은 급여와 배당으로 전부 나가는 것이 아
이케아 그리고 집
한때 우리에게 내 집은 ‘성공’과 ‘노후 대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내 집을 마련해 집들이를 한다는 것은 ‘잔치’였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어느새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빚쟁이’와 같은 말이 됐고, 최근엔 집을 그저 잠시 거주하는 곳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아졌다.한때 투자와 투기를 연상시켰던 ‘집’이란 단어는 이제 ‘스위트 홈’과 더 가깝다. 집을 사기도 어렵고,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2030세대는 그래서 ‘현재의 필요’와 ‘삶의 질’에 주목한다. 머나먼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다가 좌절하기보다는 당장 가까이 있는…
일본 미생(未生)들이 투표를 포기한 이유
14일 끝난 일본 총선에서 아베 정권이 압승했다. 전체 475석 가운데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325석(자민 290석·공명 35석)을 쓸어담았다. 연립여당의 의석이 ‘3분의 2(317석)’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이는 2012년 집권 이후 우경화 노선으로 주변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온 아베 총리가 이제 평화헌법 개헌까지도 밀어불일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대부분의 언론은 제1야당인 민주당이 표심을 끌어당길만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것을 선거 참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故 김기원 교수님을 기리며
진보경제학계의 중진학자인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가 지난 7일 지병으로 향년 61살의 일기로 타계했다. 고인은 생전에 많은 경제 기자들에게 좋은 인터뷰 상대였다. 특히 필자에게는 스승과 같은 분이었다. 김 교수의 타계가 안타까운 것은 단순히 개인적 친분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사회가 그 분의 가르침을 꼭 필요로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좌·우, 진보·보수의 진영논리에 의해 질식하기 일보직전이다. 모든 정치·경제·사회 문제가 저열한 편싸움 속에서 해법을 못찾고 표류 중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강조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직성
바르가스 요사, 잉카와 우주인 그리고 인간
3년 전인가 멕시코 과달라하라 도서전에서 노벨 문학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혼자 피식 웃었다. 이 페루 출신 작가의 치정이랄까, 불륜이 떠올라서다. 먼저 노벨상을 받았고 올해 초 세상을 떠났던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와의 해프닝이었다. 1976년 멕시코 한 극장에서 마르케스는 요사에게 주먹을 날렸다. 여덟 살 많은 마르케스의 부인을 찾아가 수작을 걸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페루 출장을 다녀왔다. 기자에게는 우선 요사의 나라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역시 잉카 문명과 나스카의 나
왜 그들은 당연히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일까
학창시절 내가 제일 부러웠던 건 ‘어떤 것’을 하지 않으면서도 ‘아무 꾸중’도 듣지 않던 친구였다. 당연히 해 왔어야 할 숙제를 내지 않았는데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친구의 변명에 선생님은 그냥 넘어갔다. 마땅히 했어야 할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시험 성적이 바닥이었는데도 선생님은 친구에게 ‘공부를 하라’고 꾸짖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 친구는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하지 않았는데 불이익이 전혀 없었다.십여년 시간이 흐른 요즘도 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한숨을 쉴 때가 많다. 물론 그 때처럼 부러운 건 아니다.…
단통법과 복합할부금융
1차선 외길 도로에서 택시 두 대가 맞닥뜨렸다. 멈춰선 택시는 어느 쪽도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미터기 요금은 차곡차곡 올라가고 택시는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양쪽 택시에 탄 승객만 속이 타들어간다. 마침내 두 택시는 서로 조금씩 차선을 벗어나 비켜가기로 했는데 때마침 나타난 교통경찰이 차선을 벗어나는 순간 딱지를 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최근 논란이 된 두 가지 이슈를 빗댄 이야기다. 바로 복합할부금융과 단통법. 내막을 설명하자니 하도 복잡해서 비슷한 상황을 우화로 연출해 보았다.단통법 논란은 이동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가 보조금…
아직도 바라만 보니? 난 예술한다
# 덩그러니 맞닥뜨린 하얀 캔버스. 선을 그렸다 지워가며 바닥이 뚫어질세라 스케치를 하고, 비로소 채색에 들어간다.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색은 하나도 없다. 파란색에 검은색을 조금 섞고 하얀색을 더 섞자, 오묘한 푸른빛 회색을, 흰색에 빨간색 여기에 연한 노란색을 한 방울 더하자, 뭐라 표현하기 애매한 정도의 따스한 분홍색으로 변신한다. 어디서도 본적 없는 이름도 없는 갖가지 색의 향연을 즐기며 ‘붓질’을 하는 동안은 이른바 ‘멍 때리기’의 연속이다.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 공간에 흐르던 음악 소리가 들리면서 잠시 접어놨던 고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