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후보에 비판적이면 기득권 언론인가?
‘30년 구독자인데 계속 이런 논조를 유지한다면 절독하겠다’라는 이메일들이 간간이 날아오곤 했다. 논설위원으로 일할 때다. 박근혜 정부 초부터 ‘국정원 댓글부대의 대선 개입 사건’과 ‘서울시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노무현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증거용 외교문서 공개’ 등이 있었다. 때문에 정권 초기 ‘6개월 권언밀월’도 없이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자주 썼다. 그러면 저런 이메일이 날아왔다. 물론 지인들이 “너무 세게 쓰는 거 아니냐”고 걱정도 했는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때나 전두환 정권 때처럼 남산이나 남영동 대공분실
가짜뉴스와 개방형 저널리즘
사람들은 우리 언론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한다고 믿는다. 적어도 언론이 객관적으로 진실에 접근하려 애쓰고는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도 대중이 언론에 대해 그런 허상을 갖도록 유도해왔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 국민은 언론이 엉뚱한 기사를 내보내면 ‘오보’라 한다. 실수했다는 의미이다. 사심(私心) 가득한(?) 뉴스에도 ‘왜곡’이라고 한다. 정파나 이념에 의해 치우쳤다는 지적이다. 지금은 여기에 ‘가짜’가 추가되었다. 이리되면 자칫 저널리스트는 ‘기레기’가 아니라 반사회적 애물단지로 낙인찍힐 지도 모르겠다. 과한 표현일 수는 있으
독자는 뉴스와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요즘 독자는 뉴스와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혁신’이라는 과제와 맞닥뜨리고 있는 미디어가 자신에게 던져봐야 하는 질문이다. 혁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답은 “소셜 미디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이다. 점점 페이스북 같은 소셜 플랫폼을 통해 뉴스를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의식적’으로 뉴스를 찾아서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인터넷 생활’ 중에 ‘우연히’ 뉴스를 만나는 사람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변화의 모습은 한국과 미국이 다르면서도 비슷하
세월호 보도와 언론사의 생존 전략
탄핵 후에도 광장에선 매주 토요일 촛불이 켜지고 있다. 맨 처음 발언엔 여전히 세월호 유가족들이 마이크를 잡고 있고 이야기를 듣는 집회 참가자들의 눈시울은 거의 예외 없이 붉어진다. 탄핵은 되었으나 광장의 분위기는 탄핵 이전과 달라지 게 거의 없다. 그런데 언론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너나 할 것 없이 세월호 인양을 적극적으로 보도한다. 참사 당시 정부의 보도자료에 근거하여 현장과 동떨어진 보도를 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상금을 원하는 이들로 묘사했던 언론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언론의 극적인 변신을 보자니 두 가지 생각이 든
탄핵 후에도 광장에선 매주 토요일 촛불이 켜지고 있다. 맨 처음 발언엔 여전히 세월호 유가족들이 마이크를 잡고 있고 이야기를 듣는 집회 참가자들의 눈시울은 거의 예외 없이 붉어진다. 탄핵은 되었으나 광장의 분위기는 탄핵 이전과 달라지 게 거의 없다.그런데 언론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너나 할 것 없이 세월호 인양을 적극적으로 보도한다. 참사 당시 정부의 보도자료에 근거하여 현장과 동떨어진 보도를 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상금을 원하는 이들로 묘사했던 언론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언론의 극적인 변신을 보자니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탄핵 이후, 기자들은?
헌법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대통령의 위법 행위보다 위법 행위가 밝혀진 이후에도 헌법 수호나 법치 의지가 안 보인다는 점에서 불가피하다고 보았던 것 같다. 탄핵은 대통령이 저지른 행위에 책임을 묻는 것 못지않게 그런 오류가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그 논리를 원용하면, 다시 이런 악폐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능하고 위법한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을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질서를 청산해야만 한다. 촛불 시민들의 ‘이게 나라냐’와 ‘탄핵 이전
우리가 저널리스트에게 바라는 것
지난해 여름, 파리에서 에드위 플레넬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20세기 초의 위대한 르포기자, 알베르 롱드르의 계보를 이어받았다고 평가받는 프랑스 최고의 탐사저널리스트로 1985년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침몰에 프랑스 정보기관이 개입한 사실을 밝혀내 당시 국방장관, 샤를르 에르뉘의 사임을 이끌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2008년 프랑스 최초의 인터넷 유료 독립 매체인 메디아파르트를 창간한 그는 현재 이 매체의 대표이자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온라인 매체의 유료독자는 지난해 12만명에 육박했다. 불과 60명가량으로 구성된 소규모…
헌재는 존재가치를 입증할 것인가
신문과 방송 뉴스를 보기 괴롭다. 어느 결엔가 헌법을 수호하자는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자는 ‘반탄집회’는 같은 반열이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80%에 달하지만, 언론은 두 집회를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진영논리로 뭉개졌다. 이것조차 문화적 상대주의인가. 친박세력이 ‘군대여 일어나라’거나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고 발언하면 고스란히 인용 보도하는 것이 ‘객관적 보도’인가. 박 대통령측 법률대리인 김평우 변호사가 ‘내란’을 언급하거나 헌재 심판 불복을
가짜뉴스에 대항하는 힘
2017년 지구촌 저널리즘의 첫째 화두는 무엇이 될까? 다들 모바일 실시간 방송, 이에 따른 기획 아닌 즉흥적인 모바일 콘텐츠의 개발…. 이렇게 예상했다. 하지만 지구촌 저널리즘의 최대 화두는 현실정치와 맞물리며 엉뚱하게도 ‘가짜 뉴스’로 굳어지고 있다. 미국에 이어 올해 전국적인 선거를 치루는 나라들-한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이 나라들에서 번져나갈 허위보도와 혐오성 막말 파문에 지구촌 언론들은 긴장하고 있고 그 시작은 불행히도 대한민국이다. 가짜뉴스와 관련한 국회 토론회 소식을 전하는…
‘미움 받는 자’의 숙명과 대선 검증
TV드라마를 보다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기자라는 직업이 ‘멋있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멋있지는 않아도 좋으니 심하게 나쁘지 않게만 나오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남의 약점이나 캐며 돌아다니는 사이비 기자, 권력이나 자본에 야합해 작은 떡고물을 챙기는 구악 기자가 종종 드라마에 등장하곤 해서다. 반면 사회정의를 위해 고민하는 기자는 최소한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주 제법 실제보다 그럴듯하게 묘사되는 의사나 검사 등과 비교된다. 전직 기자로서 가족들 보기에 민망해 드라마 PD나 작가들에게 “